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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n 14. 2016

농업의 본질은 커뮤니티 비즈니스?

라오스의 캐슈너트(Cashew Nut) 프로젝트

캐슈너트,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작물이다. 대부분은 맥주를 마실 때 안주로 먹던 주전부리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태국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땅콩처럼 생긴 견과류가 들어간 팟타이를 먹어봤을 것이다. 모양은 올쳉이처럼 생겼고 맛은 땅콩과 비슷하지만, 이 작물은 과수나무에 달리는 열매의 씨앗이다. 지방이 많은 견과류와는 달리 캐슈너트은 탄수화물을 10% 정도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질감이 연하고 땅콩처럼 딱딱하지 않아 부드럽게 씹힌다. 수프나 고기 스튜를 만들 때 넣으면 견과류 고유의 고소함과 캐슈너트 특유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요리에 색다른 식감과 맛을 선사한다.

이 나무는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주로 나이지리아, 인도, 브라질 등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아열대 지방에서 대규모로 재배된다. 평균 생산량은 0.58 MT/ha이고 전 세계적으로 연간 280만 톤 정도가 생산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이 최대 생산국이다.


새벽 6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 시간 만에 빡세 공항에 내렸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이었다. 볼라벤 고원이 태양의 흐름을 막고 있는 듯했다. 공항 밖에서는 ADB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하얀색 SUV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에는 ADB-IFAD의 마크가 선명했다. 마중 나온 자동차는 우리 일행을 공항 인근의 시눅 카페로 안내했다. 커피의 고장에서 먹는 커피 맛은 어떨까.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시눅 카페 원점에서 한잔의 커피와 함께 쌀국수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맛? 좋았다. 라오스 커피가 특색이 없다는 편견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라오스의 시눅 제국을 만들었던 그 시작에서 마시는 커피는 새로웠다.


이른 새벽 빡세 거리는 한산했다. 황량하리만치 한산했다. 비노스 부국장은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순식간에 도시를 빠져나가자 잠시 메콩강이 보였다. 그러다 자동차는 서서히 산 중턱을 향해 나아갔다. 경사가 가파르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높은 고도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중간에 소나무도 보이고 지금까지 보던 저지대 밀림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숲도 보였다. 들판에서는 점점 더 많은 커피나무가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온통 커피나무만 보였다.


신기하던 풍경도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원지대라 그리 덥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커피 농장과 그린카다몬 시험재배지를 둘러보고 고원 너머의 저지대를 향했다. 날씨는 다시 열대지방으로 돌아섰다. 볼라벤 고원에서 보았던 구름은 오간데 없고 뜨거운 태양과 메콩강 지류가 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농경지나 산림 주변으로 커다란 웅덩이가 보였다. 비노스 부국장은 베트남전 때 떨어진 UXO의 폭발로 생긴 흔적이라고 했다. 가끔씩 길에서 마주치는 하얀색 UN 차량에는 UXO 마크가 선명했다.


프로젝트 지역을 들를 때마다 비노스 부국장과 싱 박사는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성과를 자랑하고 싶어 했다. 굉장히 신이나 있었다.


라오스의 참파삭에서 자라고 있는 캐슈넛


우리가 방문한 콩 군(Khong District)은 라오스 최남단인 참파삭 주에 위치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평야지이거나 약간 경사진 지역으로 메콩 강과 참파삭 평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시판돈 - 4000개의 섬 -으로 알려져 있는 메콩강 퇴적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가장 낮은 지역은 해발 80m이고 가장 높은 지역은 282 m (Phoukeo 산)이다. 건기가 되면 땅이 바삭 마르고 우기가 되면 메콩강 물이 넘쳐흐르지만 침수되지는 않는다.


이 지역 농민들은 논벼와 함께 밭벼를 재배하고 있는데, 밭벼는 동후아사오(Dong Hua Sao) 국립보호림의 보존을 위협하고 있다. 화전농법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쌀 생산량은 1 ton/ha로 농민들의 자급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빠듯하다. 라오스 정부 문서에 따르면 해마다 55%의 농가는 3-6개월 정도는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와있다.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난망한 지역이다. ADB의 캐슈너트 프로젝트는 이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높일 수 있을까? 의심의 눈초리로 세심하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라오스에는 원래 캐시 나무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베트남에서 기증한 나무가 있었는데, 3개 주에 나눠 심었다. 열매가 생산되기는 했지만 경제적인 생산규모가 되지 못해 결국은 버려졌다. 또다시 베트남 정부에서 묘목을 기증했고, 이번에는 ADB와 IFAD에서 SNRMPEP 프로젝트의 한 사업으로 캐슈의 상업적 생산을 지원했다. 2010년에 처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 데, 초기에는 8개 마을을 포함하고 있는 하악사이콤 쿰반의 250 농가가 참여하여 500 ha 면적에 캐슈 나무를 심었다.


이 프로젝트에 사용된 토지는 기업에게 임대되었지만 사용되지 않던 부지였다. 공산주의 국가답게 국가ㄱ 다시 회수해서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프로젝트에서 지원하여 밀림의 수목을 밀어내고 경지를 정리하여 농가당 2 ha를 분양하였다. 농가들은 177톤의 유기질비료를 받았고 펜스를 설치하기 위해 1,500 롤의 철조망을 제공받았다. 또한 중력 방식의 관개시설도 일부 지역에 시범 설치되었다. 이렇게 캐슈를 재배하기 위한 마중물은 부어졌다.

ADB 수석컨설턴트인 싱 박사가 농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로젝트에서는 10 ha 면적에 베트남에서 기증된 묘목 원주를 심었고, 묘목생산포를 설치하여 100,000주의 삽주 묘목을 생산하였다. 이는 연간 250 ha의 면적을 추가로 식재할 수 있는 규모이다. 묘목생산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이 지역은 새로운 캐쉬 재배단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특이한 것은 묘목을 키우는 일을 기업이 담당하게 한 것이다. 기술을 가진 베트남인 사업가를 참여시켰는 데, 기업에는 직접 지원을 해주는 대신 묘목을 일정기간 동안 구매해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싱 박사는 프로젝트가 끝이 나더라도 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묘목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접근방식은 SNRMPEP 프로젝트 전반을 관통하는 방법론이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이 지역의 캐슈너트 재배 면적은 1,000 ha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라오스 정부에서는 사업성과가 좋으면 정부의 지원을 통해 재배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아직까지 베트남에 비해 재배면적이 작아 가공산업이 자리잡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생산된 캐슈는 베트남 중간 상인이 수매하는데, 시장 가격은 낮게 형성된다. 비노스 부국장과 싱 박사는 생산된 캐슈를 1차 가공할 수 있는 기업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민간의 투자로 캐슈 재배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캐슈 과일이 땅에 떨어져 있다. 캐슈열매는 지금은 그냥 버려진다.


해외 농업투자를 고려하는 사업가라면 이와 같이 ODA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 농업생산 기반이 만들어진 지역에 참여하는 게 투자의 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장을 직접 소유하면서 농업생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생산된 농산물의 가공과 유통에 참여하여 생산자와 기업 간 상생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전략이 더 효과적으로 보였다. 개별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비해 투자 위험은 낮추고, 농산물 생산량을 늘리는 데 필요한 자금의 소요도 크게 낮출 수 있다.


그렇지만 어려움도 있다. 이런 정도의 사업을 기획하려면 우수한 인적 네트워크와 주민들과 친화력을 가진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이런 곳일수록 지역 밀착형 전문가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런 쪽으로 준비된 전문가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해외농장을 개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들은 농업의 본질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ADB의 프로젝트 지역을 돌아보면서 농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배웠다. 비노스 부국장과 싱 박사는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중앙집중적인 하향식(top-down) 방법론보다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그곳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상향식(bottom-up) 방법론이 특히나 신선했다. 농업 생산보다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내게 크나큰 수확이었다.


해외농업개발에서 우리가 가진 장점은 뭐가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땅에 머물고 있는 농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농업은 땅이 아니라 '관계'이다는 것을 언제나 깨달을까, 국제 농산물 시장에 대한 정보의 흐름이라는 것을 언제나 인식할까. 우리는 너무 근시안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는가, 많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곳 라오스에서.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서 그 벽을 더 크게 느꼈다.


ADB :  아시아개발은행
IFAD : 국제농업개발기금
SNRMPEP : ADB와 IFAD 등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장기 농촌개발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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