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길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카길과 몬산토 이야기가 화제로 등장하면 필연적으로 도덕적 논쟁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카길에 대해 중립적이든 약간의 호의가 섞여 있는 표현이든 논쟁은 조건반사적이다. "카길이 주는 장학금은 기업에 대해 호의를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라는 반박이 금세 따라붙고, "카길과 몬산토가 좋은 회사 맞나요?"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사람들은 글로벌 농식품 기업에 대해서 근원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 기업들 때문에 개도국 농업이 파괴되고 극빈자들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TV에서 방영되는 수많은 다큐 프로그램들은 문제의 심층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대개는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기업의 마크를 공격한다. PD들은 "00 기업이 들어와서 우리의 삶이 파괴되었어요"라는 멘트를 따려고 지속적인 질문을 한다. 시청자들은 보는 멘트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사실 대부분의 개도국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와 관련된 부정부패와 사회적인 문제는 쉽사리 건드리지 못한다. 다큐에서 다루기엔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다음엔 입국이 금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공격할수록 기업들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지출하는 홍보 비용도 증가한다. 이건 미디어 업계가 좋아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기업에 대해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있다. 어떤 기업은 좋은 기업이고 어떤 기업은 나쁜 기업으로 간주한다.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들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때로는 조작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마케팅과 광고를 들이붓는다. 장래에 자기 회사에 들어올 우수한 인재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고,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을 소비할 잠재적 고객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확신과는 달리 소비자들이 가지는 기업의 이미지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홍보 전문가가 만들어 내는 긍정적 이미지이거나 시민운동가들이 만들어 내는 부정적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 진실은 돈의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복잡한 사실(fact)의 조합일 것이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는 집단이다. 그 어떤 바람직한 가치도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생존하기 위해 기업은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또는 경계(?)에서 모든 일을 다한다. 명심하자. 그 법은 국민들이 뽑은 국회가 만든다. 기업은 소비자의 이미지와 법의 한계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생명체이다. 소비자의 이미지는 미래의 생존환경이고 법의 테두리는 현실의 조건이 된다.
그러니 기업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종업원 월급 꼬박꼬박 주고, 탈세하지 않고 잘 돌아가는 기업이면 충분히 좋은 기업이고, 아무리 선한 가치를 표방하더라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나쁘 기업이다. 임금을 주지 못하는 사회적 기업은 좋은 기업이라 칭하기 어렵다.
카길은 비공개기업으로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지 않다. "글로벌 포츈 500대 기업" 중 28위에 해당하는 대기업이다. 만약 공개가 되었다면 9위에 속할 것이라 추정하는 데, 도요타 자동차 다음이 될 것이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13위이다. 그러니 커도 너무 크다. 농업과 식품을 중심으로 성장한 회사가 이 정도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매출액 1조 원(10억 달러) 넘어가는 식품회사는 20개사가 채 되지 않는다.
카길은 매출액 1,365억 달러(약 142조 원), 순익 23억 달러(약 2조 4000억 원), 68개국에서 14만 3,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130개 국과 거래하고 있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다. 8,000개의 곡물창고를 가지고 있고 600개의 항구에 접안 시설을 갖추고 전 세계로 식량을 실어나른다. 이런 초 일류 기업의 목표는 7년마다 2배의 성장이다(2). 이런 목표가 현실화된다면 한 기업이 지구를 다 먹여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코트디부아르에서 내전이 발생하면서 세계 코코아 시장은 비상이 걸렸다. 이 지역에서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70%가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급이 불안해지자 세계 시장에서 코코아 가격이 급등했다. 카길에게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었다. 정정이 불안정한 아프리카 대신 베트남을 대안 생산기지로 삼고자 투자를 개시했다.
코코아 재배 기술을 베트남 농민들에게 전수했고, 코코아의 생산-가공-유통에 이르는 전주기적인 가치사슬을 만들었다. UNDP와 같은 국제기구나 ODA 사업으로 추진했다면 족히 반세기는 걸렸을 일이었다. 세계 코코아 시장은 생산지역이 대륙별로 분산되면서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카길은 이를 통해서 상당한 이익을 실현했다. 대륙의 이쪽저쪽을 함께 컨트롤함으로써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고,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카길과 같은 글로벌 농식품 기업이 WTO와 FTA로 체제의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기업인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기업은 전 세계적인 식량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를 만들고, 글로벌한 식품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기업들이 있어서 현재의 경제성장과 70억이 넘어가는 인구 부양이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작용 분명하게 있다. 이런 규모의 기업이 움직이면서 아무런 부작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게다.
카길과 관련되어서는 생각보다 그렇게 비난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놀랐다. 제3 세계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받는 일반적인 비난 정도를 받고 있는 듯하다. 2005년에는 일부 개도국 농장에서 노예노동이 발생한 것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이는 애플이 중국에서 아이폰을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환경에 대해 비난받는 것과 유사하다. 카길이 더 많은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항상 당사국 정부에 있다. 현장에서 보면 부실한 법 규정과 부정부패의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될 경우가 많다. 기업의 말단 조직에서 법 규정을 넘어서는 투자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대개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이 부정부패 시스템 속에서 사라지는 데 이는 당사국의 문제로 기업이 다루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식품 오염 사건 역시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다. 그렇지만 일류 식품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자발적인 정보공개와 리콜을 이행했다.
2000년대 초 환경운동 단체에서는 브라질에서 콩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그린피스는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생산한 콩을 카길 등 글로벌 곡물기업들이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카길 역시 이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점점 더 환경파괴적인 농업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이런 환경파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항상 새로운 구매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규모의 글로벌 기업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열대우림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기업에게 너무 큰 도덕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국은 이 역시 글로벌 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불완전함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자리와 수익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거의 들어와 있지 않는 라오스를 보더라도 엄청난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생산성이 낮은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생계형 농민들이 벌이는 일이었다. 차라리 대기업이 들어와서 체계적인 관리 농업을 하는 게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더 유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종종했다. 그렇더라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기업의 농업진출처럼, 대기업이 농업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우리나라 NGO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GMO 종자나 식품 때문이다. 카길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다뤄볼 예정이다.
(1) Cargill Expands in Rotterdam Botlek Area. (http://goo.gl/tAO8iL)
(2) '곡물업계 거인' 카길의 페이지 회장… 아시아 언론 최초 인터뷰 (http://goo.gl/07YjS6)
(3) Fed Up With Cargill, We're Taking Our Demands To Its Customers (http://goo.gl/ujV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