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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ug 14. 2016

전통은 박물관에서 싹 틔우지 않는다.

우리에겐 한 가지 믿음이 있다. 과거의 전통은 현재보다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환경에서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경박한 기술보다는 더 진한 감동을 줄 것 같은 기대를 품고 있다. 특히나 식품, 그중에서도 막걸리 등 전통주 분야가 특히 강하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전통을 지키고 싶어서, 전통을 살리고(?) 싶어서 말이다.


전통은 박물관에 살지 않는다.


식물의 원산지를 찾을 때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게 있다. 그 식물이 자라는 지역에서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느냐 이다. 한두 품종만 있는 곳보다는 수십, 수백 종의 다양한 변이가 있는 곳이 원산지 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반면에 외래에서 들어온 도입종의 경우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떨어진다. 자연계에선 독불장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원산지에 다가갈수록 유전적 변이는 더 커진다.


우리나라에는 콩을 이용하는 음식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된장, 고추장, 두부, 청국장, 콩나물, 떡, 팥죽 등 다양한 종류의 콩들이 다양한 요리에 이용된다. 반면에 미국에 가면 콩 요리는 매우 단조로워진다. 생산량은 엄청나지만 다양성은 매우 떨어진다. 콩 - 주로 대두 - 은 식용유를 만들거나 사료로 대부분 사용된다. 오히려 콩을 채소로 먹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미국 입장에서 콩은 도입종이다. 콩의 원산지인 만주와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콩 요리를 보는 게 당연한 것이다.


충북 영동에 있는 와인 저장고


다양성이 생명이다.


언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식 영어가 옛날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어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고, 신대륙을 찾아간 미국이나 호주 영어가 현대에 맞게 더 진화한 언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주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훨씬 더 고어에 가깝다. 영국 본토의 언어는 일반적으로 더 현대적 상황에 맞게 진화(?) 했다.

  

동의하기 어렵다면 연변에서 온 조선족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된다.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100년 전의 조선사람들이 보았다면 현대의 한국인과 연변 조선족 중 누구의 말투에 더 익숙할까?


우리의 언어 역시 우리 인식과는 달리 원산지에 가까울수록 더 빠르게 변해 간다. 이게 더 자연스러운 경우이다.


백세미와 정성


그렇지만 예외인 분야도 있다. 전통주, 즉 주로 막걸리를 만드는 장인들이다. 이 분들은 우리 옛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게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전통을 과거의 어느 시점에 존재했던 고정불변의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방법론을 주장하는 전통파들은 고문헌 속의 문구를 진리처럼 받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전통주가 기록된 문헌을 보면 백세미라는 것이 있다. 쌀을 백번을 씻는다는 말이다. 개량한복을 입은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쌀을 백번 씻는 것을 강좌 초기에 가르친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런데 백세미는 뭐고 정성은 뭘까? 이런 접근에 대해서 신주류파들은 미신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비아냥 거린다. 백세미는 도정기술이 없던 시절에 쌀의 호분층을 깎아 내기 위해 했던 것일 뿐인데, 백미가 대세인 시절에 백세미라니? 백주 대낮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치부한다. 현미의 바깥층(호분층)은 단백질이 많아서 술을 만들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근데 요즈음은 10분도 이상의 백미를 먹으면서 도정 시 호분층을 충분히 깎아내기 때문에 쌀을 씻는 과정은 전혀 불필요하다.


영양군 두들마을에서 제공하는 감향주와 반찬들


그렇다면 정성은 뭘까? 술을 만드는 것은 생물학적인 과정이다. 미생물 생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는 미생물 활성에 대한 조절을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성을 기울여서 청결하고 또 좋은 환경조건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물론 이 정성이라는 것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발효 미생물의 수를 단순화하고 최적의 생육조건을 잘 알고 있는 현대에서 이 정성이라는 의미는 다르게 해석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누룩과 국균 논쟁


막걸리 양조에서 전통파와 신주류파들이 가장 심하게 부딪히는 곳은 단연 발효 미생물 분야이다. 전통 누룩파들은 누룩을 사용하지 않은 막걸리는 전통주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일본에서 개발(?)한 균을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국균으로까지 격상된 아스퍼질러스 속 균들이다. 단일 균을 사용하는 것이 발효 효율이 높고 맛을 제어하는 데 우수한 성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대신 누룩의 다양한 균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 미묘한 맛을 만드는 데는 불리하다. 물론 아주 잘 만든 술의 경우이다. 많은 경우는 더 좋지 않은 술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술 산업 측면에서는 단일균의 사용이 더 유리하다.


도대체 어느 게 더 전통에 가까울까? 아님 전통주의 활성화를 위해서 어느 접근방법이 더 유리할까? 화석화된 문헌을 따르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길일까, 가끔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그런데 이 논쟁은 너무 날이 쓰여 있다. 이런 막걸리도 나오고 저런 막걸리도 나오면 더 좋은 일일 텐데, 국균을 쓴 막걸리는 일본 막걸리란 말인지, 가끔은 헷갈린다. 사실 이 균들도 그 누룩 속에 들어 있었던 균들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전통주, 막걸리를 살리려면 전통을 버려야 한다. 우리 술, 막걸리와 약주가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나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떡하면 그럴 수 있을까? 화석화된 고문헌을 잘 따르면 그 길에 다다를 수 있을까? 소규모로 만드는 술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격이 비싸고 생산량이 적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 조차 모를 것이다.


우리 전통주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그 어떤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까? 단일균을 이용한 발효기술이 보편화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의 국균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여러 균주들이 양조에 활용되면서 각 양조장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전통 누룩을 이용하는 소규모 양조장도 여전히 성업 중일 것이다. 대중적인 우리 막걸리와 약주를 맛본 사람들이 더 개성 있는 술에 대해 알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술은 식물과 언어의 발상지가 그렇듯이 다양성으로 넘쳐날 것이다.


맥주는 우리 술, 막걸리는 세계인의 술


우리의 식단은 다양화됐다. 농경이 중심이던 시절의 막걸리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술이었다. 현대 도시 생활 속에서 막걸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약주와 청주는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삶의 양식, 먹거리와 입맛은 완전히 달라졌다. 음식은 자극적이고 식품은 다양하고 또 풍족하다. 이는 전통주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우리 술이 직면한 문제이다. 이런 소비자의 기호 변화를 충족하지 못하는 어떤 제품도 시장에서 외면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것도 “one of them” 일 뿐이다. 포도주와 맥주, 위스키, 소주, 일본의 사케 등 수많은 술들 중에서 선택되길 기다리는 술이다. 어떤 발효균을 쓰고 어떤 감미료를 사용하는지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경기대학교 조효진 교수는 “맥주는 우리 술, 막걸리는 세계인의 술”이라고 외치고 다닌다. 우리 것이라고 고집하는 순간 그 대상은 쪼그라든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런다고 현재의 맥주 열풍이 쉬이 사그라들지는 않겠지만 막걸리의 원산지 다운 다양성을 만들어 가는 데는 분명 효과적일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옛것을 고집해서는 지킬 수 없고, 다양성을 배척해서는 활성화될 수 없다. 그런 행위야 말로 진정으로 전통의 숨통을 옥죄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우리 술의 진짜 문제는 오랜 경험과 폭넓은 식견을 가진 전문가의 목소리보다 편협한 어중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맥주와 포도주의 새로운 점들을 받아들여 우리 술을 더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가려는 열린 자세이다. 전통은 그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진화해 갈 것이다. 포도주와 맥주, 10년만 들고 파보자. 지금은 그럴 때이다. 도약을 위해 움츠릴 때이다.


* 난 전통을 살리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통은 변해갈 뿐(진화 또는 퇴화)인데 죽었다고 전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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