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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ug 28. 2016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

우리는 그레샴의 법칙 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굳이 이 표현을 다시 설명한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또 우리 생활에서 그 말의 의미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서 그 부분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해봤다.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은 소재의 가치가 서로 다른 화폐가 동일한 명목가치를 가진 화폐로 통용되면, 소재가치가 높은 화폐(Good Money)는 유통시장에서 사라지고 소재가치가 낮은 화폐(Bad Money)만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16세기 영국의 재무관이 었던 그레샴은 이 현상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멋들어진 표현으로 설명했다.


한데 이 표현이 화폐 유통시장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경제 및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사용된다. 지금 상식으로 보면 이해가 어렵지만, 금화와 은화가 유통되던 옛날에 만들어진 격언이 오늘날까지 끈질긴 생명력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레샴 경과 16세기 화폐들 (출처 : www.coinbooks.org)


이 법칙은 튜더 왕조 시절 영국의 재무관이었던 Thomas Gresham 경 (1519–1579)의 이름을 따서 1858년 Henry Dunning Macleod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 16세기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영국의 재무관으로 일하던 그레샴 경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영국의 실링(shilling)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여왕의 아버지였던 헨리 8세는 은화의 40%를 일반 금속으로 대체해서 제조했다. 세금을 늘리지 않고 정부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상인들은 은으로만 된 좋은 실링은 따로 빼서 두고, 금속이 섞인 질 나쁜 실링만을 유통했다. 그러자 결국 시장에서는 좋은 은화는 사라지고 나쁜 은화만 남아 유통되었다.


하지만 이 법칙에 대한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서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역사적인 기원은 생략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위키피디아를 참고 바란다.)



이 법칙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할란 클리브랜드는 하와이대학교 총장을 역임할 때 행정업무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정작 중요한 학사업무는 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이 표현을 사용했다. 기업들의 규모가 커지거나 공공기관의 규모가 커지면 불필요한 행정업무가 필연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작 그 조직의 존재 목적을 위해 일할 시간은 거의 할애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생긴다. 이 역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예로 볼 수 있다.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가 시작되면 정보 비대칭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은 중고차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흔히 레몬이라고 불리는 질 나쁜 중고차만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경제학에서는 레몬 시장의 문제라고 한다.


시장에서는 짝퉁 상품이 판을 치면 정당하게 생산된 제품이 설자리를 잃게 되고, 소프트웨어 역시 불법복제가 만연하면 소비자들은 결국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화를 지원하고 악화를 걸러내는 일들을 시장기능 활성화를 위해서 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뉴스 기사 댓글의 순기능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터넷 여론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측에서 악화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악성 댓글로 댓글의 여론 형성 기능 자체를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인터넷에 적절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이므로 불법 소프트웨어 시장과는 달리 당분간은 댓글의 순기능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양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만 악화를 만드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레샴의 법칙은 오늘도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레샴 법칙의 나라>라는 책도 나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치 혐오증도 이 법칙이 적용된 예로 볼 수 있다.


한데 실물 경제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치 및 사회적인 영역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게 하려면 시민들의 끈질긴 관심이 필요하다. 쉽게 지치지 않고 진리를 찾고 추구하려는 뚝심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포기하면 결국 악화에게 우리 사회를 내어 줄 것이다.


* 위키 피디아에서 인용 및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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