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Oct 15. 2016

과학자라고 더 많이 아는 것도 없다

 "한반도는 천일 염전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황교익 선생의 블로그 글이다. SNS에서도 우리나라 천일염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또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은 한물간 주제이지만 위 글을 보면서 몇 년 전에 보았던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2000년 대 후반, 아마도 광주에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였을 것이다. 내가 참여한 행사장 바로 옆에서 천일염 산업화에 대한 워크숍이 열리고 있었다. 그때는 농림부가 농림수산식품부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MB정부 들어오면서 농업만 다루던 부처에서 식품산업까지 가져오면서 농식품부로 확대 개편되었다. 농식품부는 식품산업과 연관된 어떤 성과가 필요할 때 이기도 했다.



천일염은 그중 한 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였다.


페루 마라의살리나스의 소금밭 @pixbay


주변에 식품을 다루는 연구자들이 천일염에 대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끔 천일염의 우수성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가장 쉬운(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다른 나라 유명 소금과 비교하는 것이다. 사실 소금이 거기서 거기(?)이지만, 유명 브랜드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행사장에서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연구과제 발표가 있었다. 서해안의 갯벌에서 만들어지는 소금이 미네랄 함량에서 다른 대부분의 나라 소금보다는 우수하고 게랑드 소금에 필적한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홍보자료도 뿌리고 다른 행사에서는 외국 연구자 불러다가 비슷한 발언을 하게도 했다.


당연한 수순이다. 이 모두가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가 보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천일염도 우수하네' 정도의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동료 연구자들의 일을 내가 반박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내 연구분야도 아니고.....



소금계에도 역시 악이 등장한다.



세상 일이란 게 그렇듯이 영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악이 필요하다. 악이 없는 영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메시아의 도래나 슈퍼 영웅의 부활을 기다린다. 이것 외에 할리우드의 뻔한 스토리와 영웅에 열광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까지 악은 주로 중국발이었다. 값싼 공업용 소금이 식용소금으로 포대갈이를 한다는 뉴스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소금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식품업계 사람들은 그때까지 소금이 식용이 아니라 공업용 원료로 산자부에서 광물로 관리했다고 항변한다. 사람이 먹는 걸 공업용 원료로 취급하면 우리가 마치 로봇이라도 되는 것처럼. 먹는 식품을 광물로 관리하면서 국내 소금산업이 침체되었다는 논리가 따라붙었다.


이런 배경이 농식품부가 출범하는 동력 중 하나로 사용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소금은 식품산업을 농업분야로 끌어 오는 데 일등공신 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소금은 이래저래 용도가 많았다. 배추를 절이고 재수 없는 방문객에게 뿌리는 용도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였다. 최소한 그 당시는 그랬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 농식품부는 소금산업에 대해서 뭔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만 했다.


라오스의 자염 생산시설, 내륙의 우물을 퍼올려 소금을 생산한다.



과학이 들러리를 설 때가 왔다.


천일염에 대한 성분 분석이 이루어지고, 세계 여러 나라의 소금과 비교분석이 이루어졌다. 갯벌에서 나온 천일염에는 당연히 일부 무기물질이 높은 농도로 함유되어 있는 게 관찰되었다. 그때부터 이 무기물질은 우리 몸에서 중요한 영양소로, 체내 대사작용을 조절하는데 필수적인 물질로 격상된다.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천일염이 중요해지기 전부터 그래 왔던 사실이다.


나트륨 이외에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미네랄들은 우리 몸의 대사 조절이나 효소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원소들이 소금을 통해서 섭취될 필요는 없다는 말은 생략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무기물질이 부족한 암염을 먹는 사람들은 심각한 대사장애를 격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이런 무기물질은 독성물질의 원료이기도 하고, 그 원소 자체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물질 이기도하다. 이 역시 생략된다.


다시 황교익 선생님의 블로그로 돌아가 보자.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염전을 만들이게 적합하지 않은 기후대와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염전이 일제시대에서나 들어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염전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대 - 강수량이 많고 증발량이 적은 - 를 가지고 있고, 토질이 염전을 하기에는 점토와 실트의 조성이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자염 방식이 자리 잡았다. 이런 자연적인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염전 바닥에 장판이나 타일을 깔고 어렵게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염전 바닥은 썩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청정 갯벌 소금이 될 수 있냐고 항변한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 역시 주변 연구자들의 발표와 언론에서 방송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는 어찌 보면 나의 전문분야와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행히도 그걸 지지하는 데 까지 가진 않았다. 이유야 여럿이지만....   나 역시 왜 천일염을 옛날 선조들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현장을 잘 모르는 얼치기 과학자의 한계였을 것이다.


과학자라고 남들보다 더 아는 것도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부지런히 현장을 방문하면서 의문을 가져야 하는 문제들을 너무 간과하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과학계를 떠난 이후에야 되돌아본다.




천일염, 앞으로도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올해는 신안 출신 직원의 부모님이 하시는 염전에서 천일염을 여러 포대 구매했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천일염을 계속 먹을 것이다. 약간 보관을 해서 간수를 빼고 먹으면 쓴맛이 덜해지니 그 정도의 수고도 할 것이다.


상업적으로는 여러 후처리 방법 - 죽염, 구운소금, 등 - 을 사용해서 소금에 가치를 더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상품의 기능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도 함께 구매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천일염이 가장 좋다는 강조는 좀 덜했으면 한다.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악이 필요하지만, 과학이 마블(Marvel)의 창작물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차라리 우리나라의 좋지 않은 기상조건에서 어떻게 천일염을 만들어 내는지, 그런 스토리텔링이 되면 더 좋겠다 싶다. 그저 그런 소금이지만 그 스토리까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가치에 스토리가 더해지면 더 좋지 않을까.


어쨌든 과학과 스토리는 구분했었으면 어땠을까.



천일염 논란이 지나고 나서 우리가 최소한 이 한 가지 사실은 깨달았으면 한다. 스토리에서 상상력과 자신의 주장을 담을 수 있지만, 과학적 논쟁의 영역에 뛰어들 때는 객관적이어야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