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과 가족농에게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농업인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다. 농산업 전반에 대한 흐름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주 간단하게 GMO 논쟁도 살짝 다루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분이 강의장을 조용히 걸어 나갔다. 표정이 밝지 않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강의에 대한 평가를 아주 신랄하게 쓰고 갔다. 그때 느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 이 정도의 반응이면, GMO를 찬성한다고 했으면 바로 드잡이라도 했겠구나'라고. 그 이후로는 GMO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을 정중히 사양하고 있다. GMO는 내가 다루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GMO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더러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GMO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나 역시 GMO 쌀과 일반 쌀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일반 쌀을 고를 것이다. GMO가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좋을 것이야 뭐 있겠는가. 그렇지만 위험한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 둘 사이를 구분하는 것 마저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코페르니쿠스라면, 갈릴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끔 그런 쓰잘데 없는 상상도 해본다.
논쟁에 휘말릴 용기도 없는 서생이 그럼 왜 이런 예민한 주제를 이야기할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결국은 에너지 낭비만 초래하기 때문이다. 뜻하는 바도 이룰 수 없다. 짧은 승리 후에 남은 긴 공방. 유기농과 GAP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노력과 열정에 비해 받아 든 성적표는 빈약하다. 흥분하기 전에 이유가 뭘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명절을 맞아 집에 찾아온 동생과 마주 앉았다. GMO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동생은 물리학과 출신으로 과학적으로 깐깐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축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의 중립적인 대답을 기대했다. 그런데 의외로 강경했다.
"GMO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저는 먹지 않습니다. GMO 표시를 해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게 일반적인 국민들의 인식일 것이다. 동생에게 GMO에 대한 과학계의 견해를 소개했다. '싫어할 수'는 있지만 '위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학계의 견해를 소개했다. 동생은 나의 설명에 동의했을까?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 단지 내 이야기에 반박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GMO를 좋아할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GMO에 대한 토론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견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것이고, 위험할 수 있는 것은 싫은 것이다."
싫고 좋고의 가치판단은 개인의 취향으로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아도 싫어할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유기농이 내 몸에 더 좋다는 증거가 없어도 좋아해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모든 가치 판단이 '내 몸'이라는 이기심이 먼저일 필요는 없다. '공정무역 커피'가 내 몸에 더 좋아서 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반면에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는 과학적인 검증의 영역에 속한다. 내가 GMO 식품을 꺼려하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지, 우리 몸에 위험하기 때문은 아니다. 뭐~ 항상 그렇듯이 이 역시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내 견해도 수정한다.
어쨌든 대개의 GMO 논쟁은 이런 과정으로 흐른다. 그러다 보니 GMO 이야기를 하면 필연적으로 안전성부터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안전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이는 과학적인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통계학의 영역이다.
먼저 통계적인 가설검정 방법에 대해 집고 넘어가자.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통계학은 틀린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증명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즉, 나의 주장이 어떤 조건에서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뿐, 내가 옳다는 증명을 통계학이 해주지는 않는다. 이는 가설검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GMO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귀무가설(H0) : GMO 식품을 먹으면 위험하지 않다. (μ1= μ2, GMO 식품과 일반식품은 차이가 없다.)
대립가설 (H1) : GMO 식품을 먹으면 위험하다. (μ1≠ μ2, GMO식품과 일반식품은 차이가 있다.)
여기서 귀무가설을 부정할 수 있으면 대립가설을 채택하게 된다. 즉,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식품과 GMO 식품이 안전성에서 차이가 있느냐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으면 과학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논쟁만 유발하게 된다.) 동일한 조건에서 두 품목을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를 검정한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가설검정을 거치더라도 100% 확실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확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낮지만 존재한다. 그러니 과학자들에게 "GMO를 먹어도 안전한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좀 과하다. 그 질문은 "GMO가 포함된 식품을 먹는 것은 위험한가?"라고 바꾸는 게 더 바람직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마지막에 있다.)
그렇다고 과학적방법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 우리가 먹는 항생제부터 모든 유용한 물질들에 대한 위해성검증, 더 나아가 과학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학문이다. 귀무가설이 참인데 기각하는 것을 '제1종 오류'라고 하고, 귀무가설이 거짓인데 기각하지 않는 것을 '제2종 오류'라고 한다. 통계적 유의수준(α)이라는 설명이 이때 따라붙는다. 그러니 과학에서 '완벽'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천 년 혹은 만 년 후까지 걱정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기도 하는 데 호소력은 크지만 의미 있는 논점일 수는 없다.
GMO에 대해서 반대하는 단체는 수도 많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리지도 않는다. 또한 "Top 10 Reasons to Avoid GMOs" 등의 글에서 보듯이 GMO를 피해야 할 이유도 수없이 많다. 그린피스 마저도 GMO에 반대한다. <모든 생명은 GMO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책을 낸 최낙언 박사마저도 'GMO가 위험한 게 아니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지 GMO는 오히려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GMO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GMO를 가장 잘 아는 과학자들은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고 있을 뿐, 외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 107명이나 모여서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희귀하다(1). 객관적으로 봐서 GMO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몬산토보다는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이 수백 배(?)는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GMO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나 식품전문가 최낙언 박사처럼 GMO의 위해성 논쟁이 틀렸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그분들도 딱히 GMO가 대안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현실을 인정하자는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GMO 농작물 재배 현황"을 살펴보면 콩은 이미 80% 정도가 GMO이고 옥수수는 30%를 넘어서고 있다. 70% 이상의 식량과 사료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선택의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GMO와 관련한 곡물(옥수수, 콩)의 자급도는 10%도 안 되고 있다. 즉 옥수수는 연간 소비량의 거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콩 역시 소비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곡물을 생산/수출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중남미(브라질/아르헨티나) 정도로서 모두 80-90% 이상을 GMO만을 파종하고 있는 상황으로 Non-GMO에 대한 프리미엄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조만간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도 구매하기가 어려운 시기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BioSafety).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있는 주요 곡물인 옥수수의 49%, 대두의 76%는 안타깝게도 GMO이다(2). 전분당, 올리고당, 식용유 등 주요 식품원료에 이미 GMO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의도적으로 non-GMO 농산물을 수입하려고 해도 점점 더 쉽지 않은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향신문의 <‘완전표시제’ 시행되면 GMO 유해성 논란 종식될까(3)>라는 기사에는 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럼 니들이 다 먹어라...난 싫다." 인상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GMO의 위해성 논란은 GMO 완전표시제로 옮겨 갔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GMO 표시제도를 유럽의 기준만큼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 논쟁의 쟁점은 위에서 인용한 기사(3)와 글(2)에 이미 잘 나와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주장하고 우리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GMO 종자를 만드는 대표 기업으로 몬산토는 항상 '안티 GMO 그룹'의 공격 목표였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의 대사처럼 "난 한 놈만 패"를 실천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 최근 독일의 바이엘사에 74조 원에 인수되었다(2016.9.). 포츈 랭킹 165위의 업체가 189위의 업체를 인수한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국의 캠차이나가 스위스의 신젠타를 52조 원에 인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농업분야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15년에는 미국의 1·2위 화학업체인 다우케미컬과 듀폰이 합병을 했다. 듀퐁은 이미 바이오 기업으로 변신을 완료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농업을 포함하는 바이오산업분야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기업들의 성장성 둔화와 수익성 감소를 인수합병의 배경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글로벌 기업마저도 수익성 측면에서 주주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큰 규모를 더 키워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농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큰 흐름이다. 그런데 이것만 있을까. 나는 소농과 가족농이 만들어 내는 다양성이 또 하나의 흐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두 개의 흐름은 경쟁하면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이미 존재조차 희미해져 가는 소농과 가족농의 가치를 인식할 때 가능한 일이다.
몬산토와 듀폰과 같은 바이오기업, 카길과 ADM과 같은 메이저 곡물기업들이 만들어가는 규모의 경제를 우리가 감히 대적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소농과 가족농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농산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게 유기농산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GMO일 가능성은 낮다.
그런 농산물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소기업들과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끈끈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농사펀드, 공씨아저씨네, 록야, 장안농장, 쌈지농부, 소녀방앗간, 흙살림, 에코맘 등 수많은 작은 거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살림, 아이쿱 등 여러 생협도 좋은 대안이다. 그들이 흥할수록 우리의 자연환경은 훨씬 더 높은 다양성을 띄게 된다. 다양성이 높을수록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더 높아진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더 풍요로워진다.
끝으로 과학자들은 "GMO 식품을 먹는 것은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GMO가 포함된 식품의 섭취가 위해하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지만 GMO는 자연에 대한 일시적인 승리일 뿐이다. 작용에는 필연적으로 반작용이 따른다. GMO가 위태로운 것은 획일화된 재배환경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생태적인 다양성을 옥죄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우리 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환경'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