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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Nov 27. 2016

오로라헌터, 작정하고 떠난 여행

노르웨이 트롬소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었다. 노르웨이 트롬소에서 한 시간 거리의 스벤스비(Svensby), 금요일 새벽 1시경에 비행기가 이륙했으니 딱 22시간 만이었다. 3번의 비행기, 렌터카, 그리고 카페리까지 육해공을 아우르는 이동수단을 모두 이용해 겨우 외진 곳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에어비엔비(Airbnb)를 통해 예약한 별장형 오두막이었다.


피곤함도 잊은 채 삼각대에 오두막(Canon 5D Mark II)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카메라 세팅에 들어갔다. 멀리 강 건너 보이는 산을 시범 삼아 찍어 보았다. 셔속(Shutter speed)을 내려도 사진은 어둡게만 나왔다. 도대체 어디까지 셔속을 내려야 할까. ISO를 올리고 셔속을 점점 더 늦추어 가자 선명하게 산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던 산이 마치 대낮처럼 뚜렷하게 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함께.


숙소의 문을 열고 나가면 보이는 풍경이다. 오로라를 찍기에 이만한 위치는 없었다.


셔속 30s, F2.8, ISO 800. 최종적으로 카메라 세팅을 마쳤다. 오두막에서 30초 보다 셔속을 더 늦추기 위해서는 벌브(B) 모드를 사용해야 하는 데, 계속적인 촬영을 위해서는 이 정도에서 타협해야만 했다. 이제 오로라만 나타나면 된다. 기다리는 동안 여장을 풀고 벽난로에 불을 집혔다. 온기가 집안에 퍼져나갔다.



밤 9시경이 되자 드디어 오로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Kp 지수 2로 비교적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집주인의 예상처럼, 오로라가 나타났다. 그렇지만 "저게 오로라야?"라면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희뿌연 띄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만을 반복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녹색의 광채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사진 속에 나타나는 영상은 분명 녹색이었다. 선명한 녹색이었다. 이게 다 일까? 왜 눈에는 선명한 녹색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직도 밝은 달빛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은하수처럼 뿌연 안개, 가끔은 녹색을 가볍게 띠는 안개를 따라가며 셔터를 눌렀다. 30초가 지나고 화면을 확인하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찬란한 빛의 향연을 볼 수 있을까? 혹시 위치를 잘못 잡은 것은 아닐까? 걱정도 들었지만 카메라에 찍힌 오로라로 일단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날, 오로라는 봤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둘째 날은 날씨가 흐려 오로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강하게 끼어 있었고 간간히 눈이 흩뿌렸다. 행여나 날씨가 개일까 가끔 창밖을 쳐다봤지만, 결국 오로라 관찰을 포기했다. 우린 이미 봤으니.... 최소한 기본은 했다는 안도감은 있었다.



셋째 날, 시내 관광안내센터에서는 Kp 지수가 3으로 밤에 강한 오로라가 예상된다고 알려줬다. 우린 트롬소에서 이른 저녁 후 일찍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카메라를 세팅하고 가슴 조리며 밤이 깊어 지길 기다렸다. 일곱여덟 시가 넘어갈 무렵부터 서서히 오로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로라 빛의 세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어느 순간에 온통 하늘이 녹색의 찬란한 빛으로 뒤덮였다. 달빛이 사라졌음에도 산의 윤곽과 흰 눈이 육안으로 구분될 정도로 오로라는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마치 물결치는 커튼처럼 파도처럼 화려하게 움직였다. 때로는 붉은색을 띠기도 하고, 선명한 녹색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 온통 하늘이 녹색으로 뒤덮였다. 잔물결처럼 파르르 떨다가 선녀들의 치맛자락처럼 산들산들 일렁거렸다.


주름진 녹색 커튼이 허공을 가르며 하늘로 뻗어나갔다. 거대한 빛 구름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바람 한점 없는 하늘에서는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하늘에 물감을 흩뿌리는 듯했다.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정적이 깨지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몇 시간을 쳐다봐도 질리는 줄 몰랐다. 단지 몸이 얼어와 벽난로 앞을 가끔 찾았을 뿐이었다.



서울-(비행기)암스테르담-(비행기)오슬로-(비행기)트롬소-(렌터카)(카페리)스벤스비, 오로라헌터의 여정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아직 남은 일정도 있었지만 그건 뭐 어때도 상관없었다.


우린 오로라를 봤다. 오로라 같은 오로라를 봤다. 어두운 세상을 온통 환하게 비추는 오로라를 봤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할까? 그나머지 세상사는 그저 덤처럼 느껴졌다.




* 본 여행은 2016. 11.18-11.21일까지 트롬소에 머물면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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