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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되긴 부족한 기억의 단편
by 에코타운 Sep 10. 2017

인제 운이덕, 삶은 가파르다.

메밀꽃이 필 무렵, 드론과 함께 찾은 강원도 인제

제가 여행 블로거는 아닌데 이전에 쓴 대관령 안반데기 사진이 다음(Daum)에 소개되면서 방문객이 많이 늘었습니다. 평소에는 한가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평소엔 페북에만 공유하고 말았던 사진을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강원도 인제, 남자들은 참 오기 싫어하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제 나이 또래는 말이죠.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아낙네들이 부르는 한 맺힌 노랫가락을 이렇게 비틀어 부르곤 했었죠. 그 인제와 원통이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였습니다. 군 복무를 이곳에서 한다면 일단은 한수 접어주곤 했었죠.


드론으로 본 운이덕의 고랭지 채소밭. 산 정상을 따란 밭을 만든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니 어지간 한 곳은 다 가본 저지만 이곳만은 아직까지 미지의 탐험 지역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드론(DJI 팬텀 4 프로)으로 우리나라 고랭지를 다 방문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농업 연구기관에 근무할 때 고랭지 채소밭의 토양보존 연구 현장을 방문하면서 받은 깊은 인상 때문이었죠.


양배추 양탄자, 양배추는 배추가 만들어 녹색과는 다른 녹색을 만든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방문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말이죠. 그런데 그게 그냥은 되나요? 계기가 필요했죠. 그게 드론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우리나라 농촌을 담고 싶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농촌을 붙잡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죠.


인제 내린천의 래프팅


젊은이들에게 인제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듯했습니다. 도로가 좋아지면서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아진 게 가장 크게 작용했겠죠. 또 내린천의 빠른 물살과 함께 하는 래프팅, 원대리 자작나무 숲 트래킹, 소양강 댐의 끝자락에 붙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등 젊은이들을 끌어당기는 매력 덩어리의 지역으로 인식되는 듯했습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 이보다 더 적당한 표현이 있을까요?


운이덕에서 내려다 보면 내린천이 바로 보인다.


20년 전 고랭지 채소밭을 방문했을 때 첫 느낌은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였습니다. 그 당시 방문했던 지역은 정선이었습니다. 일단 차량 접근 자체가 어려웠고, 다 스러져가는 집 한두 채가 널지막히 떨어져 있습니다. 애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읍내에 자취를 하다가 주말에만 집에 들른다고 하더군요. 초등학생들이 말입니다. 그런 곳이었습니다.


운이덕, 작은 마을이 있고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다. 고도가 좀 높다는 것 빼고.


지금은 여느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은 마을이 있고, 개량된 농가주택이 자리 잡고 있어 고랭지 농사가 소득이 높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죠. 태양광 설치의 최적지이기도 하니 고랭지는 핫플레이스(hot place) 가 된 건 분명하죠.


드론으로 바라 본 운이덕의 양배추 밭

가까워졌다지만 인제가 멀긴 멉니다. 두세 시간은 차를 타고 가야 하니 말이죠. 소양호의 끝자락을 돌아 내린천에서 래프팅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운이덕으로 올라가는 마을에 다다릅니다. 사실 예능프로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곳이긴 하지만, 이곳은 아직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입니다. 대관령 안반데기와는 다른 곳이죠.


운이덕을 오르는 고갯길, 강심장이 필요하다.


고갯길을 오를 때는 액셀을 밟는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경사가 무척이나 급합니다. 돌고 돌고 돌아도 계속 올라갑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죠. 예전에 길이 좁고 비포장일 때 트럭은 어떻게 다녔을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서자 평평한 고원지대를 마주칩니다. 제가 그리던 광활한 그런 고원지대는 아니었습니다. 몇 농가가 밭떼기를 붙이며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고원이었습니다.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며 길을 이어갔습니다.


운이덕으로 가는 길


그런데 농장 인근에 소형 버스가 한대 서있어서 저 차는 어떻게 올라왔지라며 좀~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슬리퍼 신고 에베레스트를 오른 셀파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그 연유를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죠. 고추밭에서는 좀 익숙한 외국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시절 운이덕에는 양배추 철입니다. 이 양배추가 끝나면 이젠 김장배추를 심겠죠.


농담 삼아 우리나라 농촌문화와 전통은 동남아 며느리들이 지킨다고 하곤 했는데, 고랭지의 채소밭도 그런 모양입니다. 이미 세상은 뭐가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져 버린 듯합니다. 한 가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이미 너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차를 가지고 갈 땐 주의가 필요하다. 밑에 세워놓고 걸어갈 것을 추천한다.


그 당시 (참관한) 연구과제는 승수구와 초생대 등 고랭지 농경지 토양침식 방지 기술이었는 데, 많이 개선되기도 했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도 말처럼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요. 고랭지 채소밭은 아무래도 경사도가 급하다 보니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토양 침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곧 양배추를 수확할 때가 오겠네요. 토양이 비에 씻겨 간 흔적들이 선명합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흙탕물이 도랑을 타고 개천으로 흘러들고, 다시 강으로 호수로 흘러듭니다. 표토가 유실되면 밭은 점점 더 자갈밭이 되어 가고, 농사는 더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개선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이 넓은 밭을 가꾸는 농부들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절로 듭니다. 요즘은 동남아 며느리들이 할런가요?


이곳은 아직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편의시설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는 길은 더 험하고 가파릅니다. 차를 돌릴 만한 공터도 없습니다. 주민들의 낯선 시선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이곳에도 커피숍이 들어설 날이 있겠죠.



제겐 이번 여행은 12년 된 SUV와 이별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것,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 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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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이성에 대해 논하기를 좋아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찾아가는 몽상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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