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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Oct 06. 2017

교배에서 분자육종까지, 육종의 기초

작물 육종,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과학의 이해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종자가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아직도 눈에 선한 장면들이 있다. 대개의 육종가들은 여름이 되면 피부가 새카맣게 변한다. 정말 민망할 정도로 새카맣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박사까지 어렵게 하고 나서 왜 저렿게 땡볕에서 하루 종일 작물의 특징을 기록하는 일을 개미처럼 하는지를.... 나는 하얀 가운을 입는 화학실험실을 전공으로 택했다. 훨씬 뽀대나 보였다는 게 솔직히 크게 작용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모든 게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농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농민들에게 의미 있는 결과를 전해주는 것은 나보단 그들, 육종 연구자들이었다. 농민들은 항상 새로운 씨앗을 찾았다. 병해충에 강하고 비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아 풍성한 수확을 안겨줄 그런 씨앗을 찾았다. 농업에 대해 알아가면서부터  검게 그을린 육종가들의 얼굴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왜 농업의 메이저(major) 분야를 택하지 않고 마이너(minor)인 농업환경화학 분야에 남았는지 후회도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잘 모르는 육종(breeding), 새로운 씨앗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리해보기로 했다. 육종 연구자들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경의를 전하며....



육종이란?


옥수수 생산량은 육종가들에 의해 80년 전보다 거의 10배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쌀, 감자, 수수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육종가들 덕분에 수량성이 높은 씨앗 덕분에 인류는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육종(育種)이란 뭘까?


육종이란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작물을 개선(진화 또는 변형)하는 것을 목표로 작물을 분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육종가는 식량, 섬유(fiber), 사료, 산업용 작물을 더 많이, 영양이 더 풍부한 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씨앗을 만드는 전문가이다. 육종가들이 이룬 성과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구를 굶주리지 않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옥수수는 1만년 전 teosinte라는 품종으로부터 분리육종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 (C) CropLife Internat'l‏


육종은 약 1만 년 전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행해졌다. 과거에는 농민들이 수량이 높은 씨앗이나 맛이 좋은 과일을 골라 다음 해에 다시 사용하는 분리육종이 일반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농민과 함께 과학자들이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일을 한다.


껍질이 얇고 매운맛이 일품이 '청양고추', 흰마름병에 강한 벼 종자, 수량성을 높인 콩, 냉해 저항성이 큰 보리, 신선함이 오래가는 사과 등 수많은 품종이 전통적인 육종방법에 의해 개발되었다. 육종은 단지 수량이나 맛만 향상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이 작물의 다양한 형질을 개량한다.

1. 수량 (가장 중요한 인자이긴 하지만 무작정 수량인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한 가장 높은 수량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2. 병과 해충에 대한 저항성
3. 폭염, 가뭄, 서리, 염해 등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성
4. 영양학적 가치
5. 수확 용이성
6. 육종기술의 효율성
7. 맛, 색, 질감 등


이렇게 다양한 특징을 가진 작물을 만드는 게 전통적인 분리육종 방법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가능하더라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현대 육종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종자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럼 육종에 사용되는 방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작물 육종의 종류


전통육종. 서로 가깝거나 또는 멀지만 유전적으로 비슷한 특징을 가진 두 품종 간 교배를 통해 원하는 형질을 가진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방법으로 교잡육종(interbreeding)이 여기에 속한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두 품종의 콩(pinto bean)을 교잡하여 키가 크고 강한 품종의 콩(pinto bean)을 만들었다. 새 품종의 콩은 쉽게 쓰러지지도 않고 추수가 쉬우며, 꼬다리가 잘 떨어지지 않아 버려지는 콩의 양을 줄일 수 있다.

(그림) 전통적인 교잡육종을 설명하는 도식, (C) 농업생명공학정보센터


여교배(Backcrossing). 서로 다른 두 품종의 교잡으로 만들어진 자식세대(progeny)를 다시 부모 세대와 교잡시키는 육종방법이다. 완두콩을 예로 들어보자. 한 품종의 완두콩은 수량성이 높고(A), 다른 품종은 노균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다(B). 만약 육종가가 수량성이 높고 노균병에 강한 완두콩을 새롭게 개발하고자 한다면, 먼저 두 특징을 가진 완두콩을 A, B를 교배하여 자식세대(C‘)를 만든다. 자식세대가 모두 노균병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이 품종을 다시 수량성이 높은 부모세대(A)와 교배한 후 노균병에 강한 특징을 보이는 품종을 다시 선발한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부모세대처럼 수량성은 높지만 노균병에도 강한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 있다.


동종교배(Inbreeding). 작물 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부 식물은 자가수분을 한다. 자가수분을 통해 자식세대를 만들 경우 부모세대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대가 만들어진다. 자가수분을 통해 부모세대의 특징을 고정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 목적으로, 또 하이브리드의 부모세대로서 유용하다.


하이브리드 육종(Hybrid breeding). 특징이 크게 차이가 나는 두 품종의 부모세대(inbred)를 수분시켜 안정적인 특징 및 잡종강세를 가진 자식세대를 만드는 육종방법이다. 잡종강세 육종이라고도 하며 옥수수가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로 만들어진 옥수수 종자는 높은 수량을 가진다. 하이브리드 종자의 특징은 다시 자가수분을 할 경우 F1의 우수한 특징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세대 품종(P1, P2)를 이용하여 우수한 자식세대(F1) 하이브리드 종자를 만든다. (C) https://goo.gl/bwWfMJ


돌연변이 육종(Mutation breeding). 돌연변이는 자연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가 우수한 형질을 지닌 것으로 판명되면 이를 새로운 종자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연적인 돌연변이를 찾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화학약품이나 방사선을 이용해 돌연변이를 촉진하기도 한다. 전북 정읍에 방사선육종센터가 있어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작물의 특성(예: 크기, 색, 병저항성 등)과 관련된 유전자 지표를  재배시험없이 실험실에서 예측하는 분석 프로세스, (C) 종자산업진흥센터


분자마커를 이용한 선발(Molecular marker-assisted selection). 이 방법을 줄여서 분자육종이라고 한다. 육종방법으로는 교배, 여교배, 하이브리드 육종 등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하지만 선발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전통육종에서 자식세대의 선발은 육종가의 눈에 의해서였다. 그렇지만 분자육종에서는 부모세대가 가진 유전자가 자식세대에 들어있는지를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판별한다. 병저항성 등 육안으로 잘 구별되지 않는 특징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육종기간을 절반 정도까지 단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값비싼 유전자 분석장비가 있어야 하고 또 분자마커라고 불리는 작물별로 특징적인 유전자들에 대한 라이브러리의 구축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과 여러 대학연구소에서 유전자 마커를 만들고 있다.


종자산업진흥센터에 설치된 DNA 자동추출시스템 (C) 종자산업진흥센터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원하는 특징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식물에 직접 집어넣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물을 유전자변형작물(GMOs)이라 부른다. BT 면화,  제초제 저항성 옥수수 등 산업적으로 생산되는 여러 작물들이 이 기술로 만들어진 종자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전통육종이 가까운 친척끼리의 유전자 교환만 가능했다면, GMO 기술을 이용하면 생물 간 모든 경계를 허물어 뜨릴 수 있어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을 뜨겁게 일으키고 있는 기술이다.

(그림)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육종 (C) 농업생명공학정보센터


유전자편집(Gene editing). 크리스퍼유전자가위(CRISPR-Cas9)와 같이 육종가들이 특정한 유전자를 직접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면도날처럼 정확하게 식물의 특별한 형질을 제거하거나 집어넣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병충해에 강한 상추,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콩, 병에 강하고 잘 자라는 야생 담배 등을 개발하였다.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작물은 GMO로 포함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어서 더 관심을 끌었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논란에 대해서는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유전자가위의 원리를 설명하는 모식도 (C)MRS Bulletin



도전과제


세계의 인구는 늘어나고 있고 식성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양소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그런 반면에 또 육류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동물사료 생산에 대한 압박도 거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전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관건은 우리가 가진 농경지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기후변화와 토양유실 등 농업환경 조건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육종가들은 좀 더 생산성이 높고 영양이 뛰어난 작물을 개발해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화화는 환경에서도 충분한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종자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 육종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물과 토양을 보존하는 작물 : 물과 토양은 가치가 높고 공급량이 제한된 자원이다.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물과 토양을 보존하는 종자의 수요는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2. 다양성을 보존하는 작물 :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을수록 다음에 닥칠 병해충 대발생이나 자연재해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대규모 상업 영농에 따른 획일적 생산의 부작용을 유기농 등 친환경적인 재배방법의 확산을 통해 다양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3. 영양성분이 더 높은 작물 : 칼로리 대비 영양소가 높을수록 자원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칼로리의 소비는 줄이고 필요한 영양소의 섭취는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작물의 수요가 작동할 것이다.

4. 단위 면적 당 더 많은 생산 : 작물 재배지를 더 늘리기는 어렵다. 이는 숲과 야생지역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 양적인 수요를 충족하는 게 중요한 이유이다. 생산량을 늘릴 수록 새로운 농경지 개발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

5.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작물 : 높아지는 온도, 불규칙한 수분 공급 등 기후변화로 인해 초래되는 환경변화에 더 잘 견딜 수 있는 작물의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육종의 미래


예전에 비해 밀, 콩, 귀리, 땅콩 수량은 5배가량 증가하였다. 작물 육종은 더뎌보이지만 빠르게 진보하는 학문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기술 및 유전공학 혁명을 통해 더 우수한 품종을 더 빨리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생물공학의 발전은 육종가들이 원하는 특정 유전자의 도입 또는 억제를 더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수확을 거두고, 영양과 맛이 더 뛰어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분자육종 기술을 통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작물을 더 빠르게 선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GMO 기술은 사회적인 논란을 촉발하고 있고,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술의 변화와 함께 육종가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과거의 육종가가 포장에서 종자를 교배하고, 식물의 성장을 기록하던 연구자라면, 현재의 육종가는 개별 식물 특징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빅데이터 연구자로 변해가고 있다. 이 말은 육종가들은 이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다루는 직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지식의 생산과 공유, 분석을 통해 육종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종자산업이 미래산업이라는 뻔한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농업에서 종자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주역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 가능한 새로운 종자를 적기에 만들 수 있느냐는 인류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작게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기도 하다. 산업으로서 규모가 크던 작던 종자산업은 중요하다.  그럼 우리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을까? 역시 아쉬움을 표하는 것 이외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Crop Science Society of America (https://www.crops.org/about-crop-science/crop-breeding)의 "Crop Breeding"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참고) 전통작물 육종과 유전자 변형 기술, 박효근, Biosaf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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