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4차 산업혁명의 의미와 가능성 (2)
미국에서 농업 GDP 비중은 1.12%에 불과하지만, 노동인구 중 15%가 식품산업(food and fiber)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 농부들은 1950년에 비해 262% 더 생산하지만, 들어가는 총자원(비료, 노동력, 종자)은 오히려 2% 더 감소했다(1).
2015년 우리나라 농업 GDP는 2.3%로 1980년 15.1%에 비해 거의 1/6.7로 줄어들었고, 농가인구 비중 역시 2015년 5%로 1980년 34%에 비해 1/6.8로 줄어들었다.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중은 1998년 19.6%에서 2015년에는 38.4%로 증가했다(2). 2015년 우리나라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5.6세였다. 이에 반해 미국 농민의 평균 연령은 37세였다(2013년). 우리나라에서 농업의 노화 현상이 뚜렷하다.
비교 범위가 같지 않으니 미국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식품산업 노동인구는 대략 18만 명(2013년) 정도이다. 농림어업인구 대비 12% 수준이고 전체 제조업 대비 4.4%에 불과하다(4). 이 부분 역시 미국과 비교하는 게 적당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식품산업 인구 비중은 많이 낮은 것 같다. 농기계와 농자재 등 농산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농업의 문제는 농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업을 둘러싸고 있는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은 게 오늘날 위기의 한 원인이 아닐까,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더 멀어고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원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업은 농민만의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둑을 둘 때 한쪽에서 패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변화를 모색한다. 사람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막히는 부분에서 씨름하기보다는 통하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어려운 논쟁도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런데 유독 농업분야에서만 그렇게 유연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 처음 오신 분들은 1편(스마트 농업, 먼저 온 미래)을 먼저 참고를 바랍니다.
스마트팜이 더 발전하면 그걸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냥 스마트농업이라 하면 되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필요할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엇이 4차 산업혁명일까?
모호한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를 그들의 스토리 라인에 끌어들인다. 대량생산 방식에 최적화된 컨베이어 벨트는 로봇과 3D 프린터로 대체된다. 소비자는 만들어진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신발을 실시간으로 주문한다.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는 더 이상 생산의 제약 요소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토대가 된다.
그럼 농업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까. 농업용 로봇, 식물공장, 드론, 아니면 스마트팜? 획기적이긴 하지만 혁명이라 부르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냥 진화된 스마트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한 가지 그래프가 눈을 사로잡았다. IoT 디바이스가 증가하는 그림이었다. 농업분야 IoT 디바이스는 연간 20%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2035년이면 지금보다 농장 데이터는 20배 더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2). 그래서 미래농업을 IoT 농업 또는 디지털 농업이라고도 부른다.
데이터가 늘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산단계부터 유통, 최종 소비자 단계까지 데이터가 모이면 어떤 일이 새롭게 생겨날까? 지금까지 데이터는 우리가 마주한 경제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예측까지는 어려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1단계 카오스가 아니라 2단계 카오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발 하리리는 <호모사피엔스>에서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농산물과 식품의 수급 역시 2단계 카오스에 더 가깝다. 그런데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카오스의 세계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베르누이의 예측처럼 "특정인의 사망 같은 단일사건의 발생 확률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수많은 비슷한 사건들의 평균 결과는 매우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큰 수의 법칙).
무작위로 뽑은 표본들의 평균은 표본들의 개수가 증가할수록 집단 전체의 평균에 더 접근할 개연성이 높다.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던 2단계 카오스 이벤트의 예측이 가능한 농업, 이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농업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산업혁명과는 달리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기존 정보혁명에 IoT 디바이스 증가가 더해져 일어나는 변화, 즉 정보의 양적 변화로 초래되는 혁명처럼 느껴졌다. 양적 임계점에 도달하여 질적 변화가 초래되는 혁명일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변화일 것이다.
더 많은 IoT 센서, 인공위성과 드론에 의한 이미지 영상, 슈퍼마켓의 바코드와 RFID부터 가정의 냉장고까지 유통정보, 생산단계부터 소비단계까지 농산업 전 가치사슬(value chain)의 정보가 클라우드에 축적된다. 단기적으로는 개별 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팜이 주도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처럼 개별화된 소비자 농업으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임계점을 넘어선 데이터 량과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다. 정보는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보자.
묘목상에서 '라즈베리' 묘목 판매 데이터를 입력한다. 인공지능은 이 데이터를 다른 데이터 - 라즈베리 재배면적, 과일 소비 트렌드, 수출입 동향, 국제과일 가격 등 -와 결합한다. 이를 바탕으로 라즈베리 묘목이 자라서 시장에 출하될 때쯤(3년 후) 과일 가격 변화를 분석하여 위험신호를 정책부서에 보낸다. 정부에서는 과수 대신 대체작목을 농가에 추천하고, 라즈베리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사전에 마련한다. 그리고 라즈베리에 대한 건강기능성 연구비를 증액한다. 기업에서는 라즈베리 음료에 대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TV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라즈베리를 이용한 요리의 노출을 증가시킨다.
이런 사전 예측과 최적화가 가능해진다면 농민들은 안정적으로 농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각 경제 주체들은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를 사전에 예측해서 품종과 목표 시장을 설정함으로써 또한 부가적인 수익을 만든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스마트팜 기술이 농업 생산 활동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농업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농업"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농업, IoT 센서의 증가, 빅데이터의 결합, 그리고 이를 통해 산업 규모의 '생산-소비'의 최적화가 이루어지는 농업, 이 정도면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마다 겪는 품목별 과잉과 품귀가 해소되고, 기상재해로부터 좀 더 지속 가능해지고, 대량생산과 소비자농업 간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며, 수출과 수입의 이상적 배분으로 식량안보와 삶의 질을 동시에 만족하는 글로벌 농업가치사슬을 만들어 가는 것. 먼 미래의 상상이긴 하지만 농업 데이터 혁명은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럼 우리는 이런 미래를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열망과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팜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좀 더 적확하게 말하면 아주 초기단계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반도체, ICT, 로봇 등 타 산업분야의 높은 기술 수준 때문이다. 부족한 기술보다는 오히려 농업의 문제를 농산업 내에서만 해결하려는 인식, 가장 오래된 산업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오래된 관성이 더 큰 장애일 것 같았다. 이미 세상은 융복합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지만 우리 농업은 여전히 잰걸음이다.
우리 농업계에서는 빅데이터 분석 기업을 농산업체로 인정할 수 있을까? 농민들은 농장경영 소프트웨어를 채택하고 정보 제공에 동의할까? 과연 투자 대비 효과는 충분할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규모의 경제에서 좌절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농업의 문제를 농업 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20년이 더 지났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실패했던 방법을 더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 문제를 만들었을 때 우리들이 하였던 생각과 같은 생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농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기업체는 대부분 영세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할 기술 -드론, 농업용 로봇, 스마트팜 등 - 은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 국산화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ICT 기업이나 데이터 분석 기업을 과연 농산업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의 문제이다. 농업에 새로운 가치관과 기술을 가진 가진 외부(?)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느냐라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런측면에서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농업분야의 4차 산업혁명 기술 적응도는 낮은 편이다. ICT 사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기술 자체가 제한인자는 아니다. 농업분야의 첨단기술 대부분은 산업분야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기술의 응용이기 때문이다. 샘물은 넘쳐흐르지만 마실 국자가 없는 형국이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수요의 창출이다. 첨단 제품을 받아주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술은 발전할 수 없다. 사실 우리도 IoT와 데이터 비즈니스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OOO이라는 벤처기업에서 만든 적재로봇과 자율주행차는 농산물집하장(APC)에서 과일박스의 이동과 적재를 담당한다. 아마존의 최신 물류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과일상자에 RFID 칩을 심어 출하정보를 취득하는 사업까지 계획했었다. 이를 통해 과일의 출하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수급조절까지 가는 사업모델을 구상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농업계로 들어온 벤처기업가의 꿈은 더 이상 뻗어가지 못했다. 어느 APC도 그들의 시스템을 채택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으로 적재로봇이 일부 APC에 들어가긴 했지만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초기 수요를 받쳐줄 시장이 없었다.
오늘날 애플(Apple)이 있게 하는 데는 중요한 사람이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바이트샵’이라는 컴퓨터 매장을 운영하던 폴 테렐(Paul Terrell)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프로토타입 컴퓨터 50대를 구매하기로 한다. IT 제국 애플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많이 받는 요구 중 하나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농업 현장에서 테스트 해보고 싶은 데 어떡하면 되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뚜렷한 대책은 없다. 농업시설과 장비는 대개 정부보조와 함께 설치된다. 그러므로 정부보조에 선정되지 않은 장비를 농가나 농업법인에서 채택할 유인은 크지 않다. (사실 지금의 체계는 스피드가 필요한 미래농업에는 전혀 맞지 않다.)
또한 그 정부보조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공급대상 품목에 선정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민간에서 개발된 첨단장비가 정부의 추천 리스트에 쉽사리 선정되긴 또 쉽지 않다. 현장에서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업계의 배타성도 한몫한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기관에서 민간 기술기업을 위한 테스트베드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니 이 부분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농업의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할까? 넘어야 할 난관이 끝도 없이 보였다.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벤처는 거품을 먹고 자란다는 설이 있다. 정상적인 경제상황에서는 분명 비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거품을 일으키지 않으면 단기간에 기술혁신과 새로운 산업의 육성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도 나왔을 것이다. DJ정부 시절 닷컴기업 열풍이 불었다. 수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고 지금의 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그 당시 만들었던 거품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어느 정도는 동의할 것이다.
이렇 듯 초기 시장을 견인하는 데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면 기반이 되는 기술 시장 형성을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농장용 데이터 센서의 전국적인 설치, 관측용 드론을 활용한 생육정보 수집망 구성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또한 농장부터 유통, 소비자단까지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농업빅데이터센터를 우선 구축하는 것도 좋은 접근 전략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농업 ICT 분야로 첨단 기업들의 기술개발과 투자가 과감하게 이루어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농업을 둘러산 산업생태계가 풍성하게 만드는 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전망이다.
농업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우리는 다시 기로에 서있다. 우리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알파고로 촉발된 사회적 관심을 어떻게 농업 혁신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지, 농업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이고, 우리 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이미 우리에겐 훌륭한 대안이 있다. 바로 농업이다. 미국은 1.12%의 GDP에 불과하지만 고용의 15%를 담당하는 농식품산업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농식품산업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서는 안된다. 농업의 혁신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을 미래기술의 테스트베드(test bed)로, 청년창업의 플랫폼으로, 국토의 균형발전과 풍요로운 생태계의 보고로, 기후변화와 미래의 식량위기를 준비하는 버퍼(buffer)로 만들어 나갈 수는 없을까. 우리 내부의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를 진출하는 채널로서 농업이라는 산업을 새롭게 포지셔닝할 수는 없을까. 상상하면 언젠가는 이루어 진다.
(1) John Deere continues to invest in new technologies, including software.
(2) e-나라지표 및 the global economy.
(3) Why IoT, big data & smart farming are the future of agriculture(2016.12.), BI intelligence estimates.
(4)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 2015년도 식품산업 주요지표(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