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과 가족농은 함께 할 수 없을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IT분야 전문가들이 농업을 하면 어떤 모양이 될까? 공대생들이 농업에 뛰어들면 농대생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카이스트 출신 공대생들이 농업분야에서 창업(만나CEA)을 했다고 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농업기계가 아니고 시설에서 직접 채소를 생산하는 농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서울대생들에게 "경운기를 몰 줄 아느냐?"는 질문을 날린 후 농업계를 가장 가슴 뛰게 한 뉴스였다. 이들은 농업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농업생산에 직접 뛰어들다니. 궁금증이 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CEA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다. 다음카카오의 투자전문회사인 케이벤처그룹에서 농업회사법인 만나CEA에 1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33%를 사들였다는 뉴스였다(2015년 10월). 이 소식은 최근에 불고 있는 IT기업의 농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우리 농업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이미 카카오파머를 통해 농산물 유통에 관심을 보인 카카오였기에 이 투자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전문기업인 카카오는 농업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 것일까, 이들은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본 것일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통주로 유명한 기업에서도 온실에서 잎채소를 생산하고 샐러드 박스를 유통하는 농업회사법인 미래원의 주식 37%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밖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농업을 둘러싸고 있는 전후방 산업이 아니라 농업생산 그 자체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정부 보조금 중심이던 농업에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그 성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 카카오는 왜 잎채소를 생산하는 농업회사법인에 투자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만나CEA가 시도하는 아쿠아포닉스 농법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이 농법이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관심 가질만한 기술로 판단되지는 않았다. 유통이 목적이라면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농업법인을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을까. 농산물 유통이 대리운전과는 분명히 다른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오래지 않아 실마리를 찾았다.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였다. 만나CEA가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자회사인 팜잇을 통해 채소 생산시설 신축에 필요한 5억 원을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공모하는 계획이었다. 이 뉴스를 보자마자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바로 떠올랐다.
1. 만나CEA는 아쿠아포닉스 시설과 생산기술을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판매한다. 결국은 아쿠아포닉스 자체보다는 보편적인 스마트팜 기술이 주력이 될 것이다.
2. 자회사 팜잇은 투자를 유치하여 농장을 신축하고, 농산물을 생산한 후 만나CEA에 판매한다. 투자를 유치해 농업생산시설을 늘려나간다.
3. 만나CEA는 농산물을 카카오의 채널을 통해 유통한다.
4. 카카오는 투자한 농업법인을 통해 직접 생산하고, 자사의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로 유통단계를 축소한다. 여기에 자사의 강점인 빅데이터 분석을 접목하여 생산과 소비를 정확히 예측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한다.
이런 정도의 비즈니스 모델이면 대기업이 충분히 참여할만할 것 같았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카카오 정도라면 이 정도의 그림을 그리지않았을까. 만나CEA는 투자, 생산, 유통이 모두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25%의 수익을 배분한다. 상당히 구미를 당기는 수익률이다. 크라우드펀딩 방식이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팜잇은 직영농장을 계속 늘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만나CEA는 스마트팜 기술개발 및 설비 유통, 기술 서비스, 농산물 유통 등 농업생산 전후방 산업을 동시에 구축해나가게 될 것이다.
자본, 기술, 유통, 인력, 그리고 단순한 지배구조 등이 동시에 받쳐줄 때 농업은 어떤 혁신일 일어날까. 카이스트 출신의 공대생들과 다음카카오의 역량이면 뭔가를 만들 것 같은 감이 왔다. 머리 속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농업의 혁신일까?
마이클 하트는 <다중>에서 "극단적 자본주의,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농민은 살아 남지 못한다"라고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농민은 토지를 비롯한 생산시설을 소유하고 무엇을 재배할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자영업자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집단농장에 소속된 농업인을 농민이라 하기는 어렵다. 생산시설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고 생산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없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끝판왕인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농장을 경영하는 농업인을 농민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생산시설을 소유한 자영업자이지만 자기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만나CEA의 경우는 어디에 속할까. 만약 현재의 투자모델을 지속한다면, 팜잇의 직영농장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농민이 아니라 노동자다. 농장은 계속 늘어나지만 농민은 줄어든다. 이건 하림의 사업모델과는 또 다르다. 하림의 수직계열농장은 형식상 농민의 소유이다. 그렇지만 팜잇의 농장은 그냥 회사의 소유다. 수직계열 농장의 확장이 자기결정권이 없는 농업인의 증가를 초래했다면 팜잇의 농장은 농업 노동자의 증가만을 가져올 것이다. 농업에 투자를 고심하고 있는 기업들의 농업투자가 늘어날수록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농업은 때깔 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겠지만, 그곳에 농민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변화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농업에 대한 민간기업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농업생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우리 사회는 이런 논란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졌는가? 또 다른 의문이 일었다.
농업의 기업화에 대한 저항은 극단적으로 나타났었다. 동부팜한농은 동부팜화옹(주)를 설립하고 330억 원을 들여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 간척지에 15 ha에 이르는 거대한 유리온실단지를 준공했다(2012년 말). 토마토를 생산해서 일본에 수출하는 전문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동부팜한농은 이 시설을 통해서 스마트팜 생산기술을 선도하는 회사로 도약하고자 하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농민들의 반대로 결국 제대로 사업을 해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화옹지구의 최첨단 유리온실에서 생산된 토마토는 시중에 나와보지고 못하고 젖소들의 먹이로 사용되었다. 결국 동부팜한농은 LG화학에 5,150억 원에 인수되었다(2016년 초).
이 일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 분야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헌법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헌법 12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사를 짓은 농민만이 농경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역사에서 토지제도가 사회구조를 결정하고 변혁을 촉발하는 요인이었다는 고려하면 타당한 사회적 합의였다. 그렇지만 근래 들어 이 경자유전의 원칙은 끊임없이 도전받는다. 농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로 줄어들고, 농업인 수가 6% 이하로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농업의 규모화를 위해 영농회사법인과 농업회사법인에 비농업인이 투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당연히 부작용도 속출했다. 틈이 없으면 만들고, 틈이 생기면 비집고 들어와 넓히는 자본의 속성대로 경자유전의 원칙은 조금씩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업 자본이 농업생산에 직접 뛰어든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농업의 전후방 산업인 유통과 농자재 분야에 주력했다. 농업은 빵집과는 달리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기는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카오와 만나CEA의 예에서 보듯이 기업들이 농업회사법인에 투자를 통해서 직접 생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이주량 박사는 "농업 생산은 농민이 담당하고, 기업은 농업 전후방 산업을 담당하는 체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기업이 투자를 통해 농업생산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 소농 및 가족농 중심의 농업기반이 무너지고, 농업생산의 자본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엔은 2014년을 가족농의 해로 지정했었다. 가족농이 지역의 고른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생물다양성과 자연생태계를 보전하여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근간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90% 이상의 농장과 70~80%의 농경지가 가족농에 의해 경영되고 있고, 80%의 농산물이 가족농에 의해 생산된다. 가족농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경제시스템이 무너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변화는 점진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기업이 할인마트를 통해 골목상권에 진출하고 프랜차이즈를 통해 골목 빵집에 진출하면서 유통업이 수치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재래시장과 재래상인이 가져가던 이윤의 상당 부분이 자본의 이익으로 전환되었다. 대기업 자본이 허락하는 만큼 최소한의 이윤과 사업 영역만 영세상인에게 주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이주량 박사)."
농업 생산수단을 기업이 소유하는 것은 유통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가족농의 붕괴는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지방의 균형발전과 생태계의 조화, 식품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혁신도 필요하다. 농민들이 싫어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푸념마저도 이제는 불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농업은 더 이상 자본이 없이는 하기 힘든 업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농업의 자본화는 바람직한가, 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금 과한 우려일 수는 있지만, 동부한농팜의 사례에서 보았던 사회적 갈등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업의 참여가 농민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업과 농민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농업은 기로에 서 있다. 농업인가, 농민인가라는 화두에 이제는 답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