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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r 31. 2018

고소한 청춘마당, 연남방앗간

청춘들이 만들어 가는 고소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어반플레이의 연남방앗간. 경의선이 지하화하면서 생긴 공간에  들어선 공원, 일명 연트랄파크에 위치한 작은 카페다. 그렇지만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조금은 특별한 카페이다.



서울 OO센터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좋은 곳을 소개하여 주겠다고..... 청년 벤처기업인들이 하는 무슨 방앗간이라나.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궁금하긴 했지만 커피 한잔 하러 그곳까지 가야 하나, 순간 고민이 들었다. 나의 갈등을 눈치챘는지 전화기 너머로  약간 노기와 서운함이 베여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볼 만한 곳입니다. 형님을 제가 아무 곳에나 모시겠습니까?

이럴 땐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게 좋다. 세상에 별 미련 없는 양반이 관심을 가지라면 이유가 있을 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다. 홍대입구역에 내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도심 아파트 사이로 바람 통로 같은 길이 나타났다. 한 때는 경의선이 지나갔던 그 길이다.


기차가 지나다닐 땐 어떤 모양이었을까? 철길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었을 집들은 이런저런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으로 바뀌었고, 유물로 남겨진 철로만이 이곳이 기찻길이었음을 느끼게 했다. 굉음을 내고 철마가 지나갔을 그 길에는 따뜻한 봄날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이 평화롭게 거닐고 있었다.


연트랄파크 중간쯤에 여느 집과 조금은 달라 보이는 양옥집이 보였다. 벽에는 연남방앗간이란 문패가 느낌 있게 붙어 있었다. 예전엔 대문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철거되고 작은 마당과 정원이 바로 보였다. 그 정원을 따라 몇 계단을 오르자 익숙했던 양식의 현관문이 나왔다. 입구에는 책꽂이가 내부 거실과 바깥 세계를 구분 짓고 있었고, 그 책꽂이에는 여러 종류의 소주병이 놓여있었다. 군데군데 참기름 병도 함께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찌든 기름떼가 예전엔 모두 기름병으로 사용되던 것들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그 책꽂이를 돌아 거실로 들어서자 바로 느낌이 왔다. 이 친구들이 무엇을 추구하는 지를. 수원 "화성"바로 옆에도 이처럼 70년대 양옥 주택을 개조한 카페가 있지만 이곳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소품 하나하나가 가진 사연이 느껴지는 듯했다.


거실에 서서 한바퀴 둘러보자 예전엔 방귀 좀 뀌던 집안이겠구나, 라는 게 바로 느껴졌다. 높은 천장과 꼬리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샹들리에, 2층으로 이어지는 두꺼운 핸드레일과 단단한 나무계단.  고풍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름 육중한 장식장. 1970년대 여기 산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경의선의 기차소리가 거슬렸을까?", 시간여행을 떠난 듯 생각에 빠져든다.


청년창업가들은 공간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다. 옛집을 리모델링했지만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였다. 벽은 예전의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고, 붙박이 장롱은 선반으로, 문짝은 천장에 붙여 기이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오래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거실에는 예술가가 만든 매화를 전시했다. 앙상한 매화가지는 화사한 꽃을 피울 망울이 막터지려던 참이었다. 또한 벽장에는 참기름 방앗간에서 사용하던 체,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 오늘날 어반플레이를 있게 했던 참기름 샘플러가 놓여 있다.


방 하나하나에도 서로 다른 콘셉트를 담았다. 소그룹 모임을 하기 적당한 방, 출판사의 책을 전시하기 위한 방, 이 집이 만들어지던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방.... 이 특별한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젊은이 다운 발랄함을 공간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후~훅~ 가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참기름이다. 리셉션에는 참기름 탭(tab)과 판매용 참기름 병들이 놓여 있고, 책장에는 오랫동안 참기름 병으로 사용됐던 소주병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직접 참기름을 짜지는 않지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은 듯했다.

그야말로 옛날식 지붕이다


그들은 참기름을 말한다. 참기름을 연구하고, 시장통에서 참기름을 만드는 장인과 함께 한다. 참깨 품종과 기름 짜는 온도, 방법을 들려주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참기름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고소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시장통에서 커다란 솥에 참기름을 볶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까맣게 묵은 기름 떼가 앉은 압착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전통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생해내고 있는 듯했다.



이 공간을 만든 청년들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무슨 꿈을 꾸는지를 들으면서 그 상상력이 부럽게 느껴졌다. 이 공간은 아마도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시장에서 참기름 짜던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다. 서울 센터장의 촉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들과 함께 하면 어떨까, 신나지 않을까? 안동 참깨로 만든 참기름으로 시작하겠지만, 전 세계의 세사미(sesame) 오일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참기름 토핑을 얻은 아이스크림은 어떨까? 청년들이 뿌려대는 참기름은 그 옛날 연예인이 뿌려대는 "챔기름"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느끼한 세상을 더 고소하게 만들지 않을까, 난 그들의 상상력에 투자하고 싶어 졌다. 연남동 숲길 끝자락 이층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잔에 지나 간 세월을 추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고소한 참기름 향이 느껴질 것이다. 다시 오는 청춘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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