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Oct 09. 2018

주산지 안갯속으로 떠난 청송 여행

빗속에서 만난 사과의 고장, 내 고향마을

청송, 사람들에겐 사과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교도소를 먼저 떠올리기도 하지만요.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왕산을 먼저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청송, 그곳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소멸해가는 지자체 중 하나이기도합니다. 1980년 대 6만 명이 넘던 인구는 지금은 2만 명 대에서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마을 뒷편의 과수원. 아주 예전엔 고추밭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온 땅에 사과나무가 심어졌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한 학년에 60명씩, 2-3개 반이 있는 경우도 있었죠. 면소재지뿐만 아니라 오지의 분교에도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기 전에 분교들이 문을 닫았고, 어린 학생들로 붐비던 그 초등학교는 오지마을의 분교보다 학생 수가 더 줄었습니다.


드론으로 찍은 과수원


고향을 가면 주산지를 들릅니다. 가까워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아침 일찍 가는 편이죠. 이 먼 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촬영지였다고 주변에 설명하며 우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 영화를 봤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피식 웃음이 나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TV에서 하는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채널 돌리다가 마주친 정도랄까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정자가 있었던 주산지의 왕버들나무


사실 이 주산지를 유명하게 만든 건 아마추어 사진가들입니다.  <SLR클럽>이라는 사이트의 1면을 장식하는 풍경이 항상 있습니다. 주산지는 날만 잘 맞으면 대충 찍어도 올라가는 그런 멋진 앵글입니다. 물안개가 좀 껴주면 확률이 더 높아지고, 뱃사공이 지나가 주면 따놓은 당상이 됩니다. 그럼 한동안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양 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죠.


주산지는 전형적인 계곡형 저수지입니다. 이 왕버들나무와 주왕산이 사람을 끕니다.


주산지, 창녕 우포늪, 팔당 두물머리, 남도의 매화, 녹차밭, 지리산 일출과 운해,..... 그러다 보니 풍경을 잘 찍는 건  그리 큰 의미를 두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흔해서 희소성이 떨어지니 말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정도, 그 시간에 나도 가봤다는 정도,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긴 난망합니다. 그래도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가진다는 건 기분이 참 좋은 일이긴 합니다.


백석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가 됐다.


이외에도 청송에는 가볼 곳이 참 많습니다. 도시 문명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시골, 정말 시골입니다. 도시에 면한 어설픈(?) 시골과는 차원이 다른 시골입니다. 태백산맥에 면해 있지만 웅장하지 않고 아담한 비경이 자랑인 국립공원 주왕산, 물기가 말랐을 때 새하얀 흰색을 띠고 물결무늬가 인상적인 유네스코지질공원에 들어가는 백석탄, 겨울이면 세계 빙벽등반 대회가 열리는 얼음계곡, 제가 소풍을 가던 방호정 계곡 등 아기자기한 경관과 느린 시간을 선물합니다.


물기가 말랐을 때 흰색을 띠고 있어 인상적이고,  물결 무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어쨌든 크게 의미 없는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기여합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계속 회자되게 해서 끊임없이 방문하게 한다는 거죠. 혹시라도 제 사진 보고 제 고향 청송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신다면 저야 영광이겠죠. 최근에는 주왕산 인근에 콘도까지 생겨서 가족단위로 방문하기가 더 좋아졌습니다.


아직도 예전의 정취가 남은 마을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집 앞 골목길입니다.


처음 집사람과 고향을 들어갈 때 너무 산골이라 놀라고 또 끝없는 과수원을 지나면서 놀랐습니다. 제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지만 경기도 사람이 볼 때 끝도없이 펼쳐지는 하얀 사과꽃이 무척 낯설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당시는 수도권에서 고향에 가려면 예닐곱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덕분에 세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입니다.


고추를 막 이식한 고추밭(좌), 담배를 말리던 황초굴(우)


그렇게 편리해졌지만 고향을 더 자주 찾아가지는 못합니다. 제가 더 바빠졌다는 핑계를 대지만 이젠 젊을 때와는 달리 서너 시간의 운전도 힘에 부치다 느낄 때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골길을 달릴 때는 속도를 줄여 보면 참 좋습니다. 위 사진처럼 둘러보면 멋진 장면을 눈에만 담지 말고 핸드폰 속으로라도 옮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어차피 시골길에 정차해도 차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으니 말입니다.


드론으로 찍은 고향마을. 청송군 현동면


청송, 너무 먼 것 빼고는 아쉬울 게 없는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한번 방문해 보세요. 10월 중하순에 가시면 길거리에는 온통 빨간 사과가 지천이겠네요. 여유를 가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좀  나눠보세요. 한두마디만 하면 도회지 나간 자식자랑을 할테죠.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맞장구를 쳐주면 더 좋쵸.


젊은이들이 떠나간 쓸쓸한 시골에 남겨진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여유가 된다면 한세대가 저물어가는 긴 여운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아쉬움을 이렇게나마 남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 막히는 고산 트래킹, 숨 넘어가는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