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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Sep 30. 2018

숨 막히는 고산 트래킹, 숨 넘어가는 풍경

동티벳 여행 : 우유해와 오색해에 이르는 길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슴설레게 하는 사진이 큰 영향을 줍니다. 누구나가 그 풍경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니 말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가 가지 못하는 곳,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비켜나 있어 이국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이라면 충분히 가슴설레죠.


제게는 그곳이 바로 동티벳이었습니다.  호수와 설산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봤습니다. 언젠간 여러분들도 그 풍경 속에 들어가는 꿈을 이루시길 바라면서, 제 이야길 좀 풀어볼까 합니다.


야딩 트레킹의 시작점 낙융목장. 빙하가 녹아 내린 물로 만들어진 고산습지이다.


"동티벳이란 말은 정확한 행정상 지명은 아닙니다. 티벳(티베트)은 중국의 시짱(西藏) 자치구로 행정상 불려지며 동티벳 지역은 이 시짱(西藏)자치구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편의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동티벳으로 불려지는 것뿐, 현재 중국의 행정구역상은 쓰촨성(四川省)에 속한 곳입니다(1)."



낙융목장에 이르는 길


오지니 당연히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평소에 등산을 많이 하지 않는다면 꽤나 힘든 길이 될 겁니다. 야딩풍경구에 들어가는 등산객들은 대개 르와(日瓦)라는 도시에 머무릅니다. 해발 2800미터 정도 되는 곳이죠. 놀랍게도 이 작은 마을에 할리데이인 익스프레스(Holiday Inn Express)가 있습니다.  그만큼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겠죠. 당연히 좁은 계곡 사이로 수많은 숙박시설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야딩풍경구까지 가려면 무조건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엄청나게 긴 줄을 경험하지만 엄청난 대수의 버스로 순식간에 처리합니다. 과연 대국의 위용이 느껴지는 시스템입니다. 여느 중국 관광지처럼 입장료도 꽤나 나갑니다.  


미니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달립니다. 해발 3천 미터에서 출발한 버스는 굽이굽이 돌고 돌아 순식간에 4천 미터로 오릅니다. 4천 미터의 산 중턱을 따라 한 시간쯤 달리면 다시 3천 미터대로 내려옵니다. 이곳이 야딩풍경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많은 민박들이 있습니다.

 

낙융목장에서 바라본 仙乃日神山(시엔나이르, 6,032m) 설산과 진주해


물론 여기가 끝은 아닙니다. 다시 2-30분을 걸어가면 소형 관람차를 탈 수가 있습니다. 이 관람차가 트래킹 시작점인 낙융목장(해발 4200미터)까지 데려다줍니다. 고산습지와 아름다운 계곡을 벗 삼아 걷는 길도 좋습니다만 시간과 체력을 조정해야겠죠. 사실 이쯤 오면 체력의 상당 부분을 소진합니다.


낙융목장의 고산습지, 광활하다.



고산습지를 걷다


트래킹이 시작되면 희박한 공기부터 적응해야 합니다. 몇 걸음 내디디면 금방 숨이 찹니다. 낙융목장에 관람차로 도착한 후 습지 위로 깔아 놓은 데크를 따라 한 시간 정도를 걸었는 데도 아직 평지인 습지 가장자리를 못 벗어납니다. 눈으로 보는 풍경도 광활하지만 실제로 걸으면 더 멀게 느껴집니다.


사실 체력이 부담된다면 고산 습지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빙하가 녹은 물은 너무 맑아서 푸른빛이 돕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수생식물들이 자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중국도 자연보호에 꽤나 많은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사람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데크가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낙융목장에서 우유해로 가는 길


아직까지는 너무 상쾌하고 좋습니다. 사진을 찍고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들에 핀 꽃과 장족들의 산채에 눈길을 줄 여유도 있습니다.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 줄 여유도 있고요. 우람한 주목나무 숲을 보며 생태계의 다양성도 느낍니다.


낙융목장으로 하산하는 사람들


그런데 평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할 때쯤 이미 체력이 고갈된 느낌이 듭니다. 웃음기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듯 한 걸음 뗄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립니다. 군데군데 주저앉은 사람들은 휴대용 산소통에 코를 대고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고산 트래킹을 고산습지 탐사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래도 아직 여분의 체력이 남아 있어 과감히 경사지를 따라 오릅니다. 후회하게 될 결정이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


입구부터 눈길을 사로잡던 시엔나이르 (仙乃日神山,  6,032m)  설산과 진주해가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주저하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힘차게 길을 나섭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잦아들고  거친 숨소리만 남았을 때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립니다.


시엔나이르 설산


멀리 시엔나이르 설산에서 흘러나 온 물줄기는 거대한 폭포가 되어 숲 사이를 흐른 후 다시 진주해로 수직 강하합니다. 폭포의 울부짖는 소리는 옅은 공기에 막혀 들리지 않습니다. 가깝게 느껴지지만 그 소리가 들리기엔 너무 먼 탓이겠죠. 광활한 지형은 실제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합니다.


시엔나이르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사실 적당히 오르다 포기하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자존심 때문에 꾸역꾸역 오릅니다.



숨막히는 풍경, 숨쉬기 힘든 고도


해발 4,500 미터 정도 올랐을 때 이미 기진맥진한 걸 느꼈습니다. 걸음을 떼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우유해를 바라보면서도 그곳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길을 걸으며 그만 내려갈까 만 번은 고민 합니다.


트래킹 코스는 고도가 높다는 것 빼고는 평범합니다. 이정도면 평범한 거죠.


4,500 미터쯤 오르면 오색해에서 흘러나온 물을 만납니다. 발 아래 계곡에는 우유해에서 흘러나온 물이 흐릅니다. 이 두 물줄기는 합쳐진 후 진주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경이롭게 보였던 주변 설산도 동네 뒷산처럼 보입니다. 이미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죠. 부실한 체력은 풍경을 더 익숙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색해에 이르는 길. 보이는 것 보다 길은 더 멀게 느껴집니다.


우유해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많은 중국 트래킹 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들어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데크에서 이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저들도 나처럼 지친(?) 거겠죠.


우유해


저도 그 물에 손을 담가 봤습니다. 얼마나 차가울지 기대를 하고 말이죠. 하나둘 세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냉기를 참으면서 말이죠. 열다섯을 셋을 때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손에 감각이 사라지는 듯 시리움이 뼈속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유해, 그리고 오색해로 오르는 사람들(우)


결국 목표로 한 4,600미터 대까지 오르긴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숨 쉴 힘도 다 사라져 버린 듯했습니다. 삼각대를 펼쳤지만 제대로 설 수가 없어 포기했습니다. 눈을 들어 풍경을 보니 거대한 설산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오색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해발 4,600미터에 위치한 오색해(五色海), 물색이 다섯가지 색으로 보이진 않지만 주변 설산과 어우러져 신성한 느낌을 준다.


오색해에서 바라본 설산들.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하산, 저녁 먹을 힘도 남지 않았다.


내려올 때는 더 이상 풍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시간 내에 출발했 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만 남습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으려면 올라가면서 힘이 조금 남아 있을 때, 그나마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을 때 찍어야 합니다. 미루면 건지는 게 없습니다.


당연히 어찌어찌 내려오긴 했는 데, 밑에 다다랐을 때는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됐습니다. 체력관리에 실패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매번 체력을 길러야지 하면서 게을렀던 대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일행의 산소통을 얻어 겨우 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다시 관람차를 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 버스를 타야 합니다. 가볍게 올랐던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란 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 버린 듯했습니다. 풀려버린 다리는 흐느적 거리며 제 의지를 비켜납니다.


4천 미터 고도로 나있는 길과 숙소가 있는 르와


시엔나이르(仙乃日神山, 6,032m), 샤뤄뚜어지(夏諾多吉神山, 5,958m), 양마이용(央万勇神山, 5,958m), 세 개의 설산을 뒤로하고 황급히 르와로 향합니다. 버스는 사정없이 달립니다. 갈 때 와는 달리 까마득한 계곡이 이번에는 발아래 보입니다. 천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깊이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멀미를 하는 듯 비닐봉지를 찾습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땐 저녁 먹을 힘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행은 어떠하던 이걸로 충분하다는 싶었습니다.


(1) 2018년 동티벳 투어의 개요 (다음카페 차마고도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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