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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ug 06. 2018

고레섬, 아프리카 노예와 마지막을 함께한 섬

슬프지만 아름다운 중세로 시간여행

고레 섬(Gorée Island). 이 섬 이름을 들으면서 바다의 고래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한국어 사용자입니다. 이 섬이 유명한 것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단 어두운 역사 때문에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섬이 되었습니다.

 

고레섬 선착장


길이 900미터, 폭 350미터, 아담한 크기의 고레 섬은 행정구역 상 세네갈 다카르(Dakar) 시에 속합니다. 다카르 해안으로부터 불과 2km 남짓 떨어져 헤엄치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바다에서 바라 본 노예의 집. 붉은 색이 밑면에 칠해져 있고 바다로 통하는 작은 문이 나 있다.


15세기 포르투갈 항해자에 의해 처음으로 건물이 세워진 이래 고레섬은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각축장이었습니다. 1677년 프랑스가 침략하여 점령한 후 1960년 세네갈이 독립할 때까지 고레섬은 프랑스의 영토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게 이 섬을 빼앗기는 걸 무척 두려워했나 봅니다. 섬 곳곳에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수많은 벙커와 대포들이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설치한 섬 방어용 대포. 길이가 15미터나 된다.


고레섬 정상에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포대도 있습니다. 군함에 쓰이는 함포를 떼다 설치해 놓았는데 어떻게 설치했을까,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합니다. 포신은 15미터에 달하고 군함의 포대처럼 회전이 가능합니다. 세네갈이 독립을 하자 프랑스는 바다를 향해 있던 이 거대한 대포를 다카르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포구를 박살 내어 더 이상 쓸 수 없게 만듭니다. 프랑스는 쓸만한 아무것도 이 나라에 남겨두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래섬 선착장을 나오면 보이는 마실 입구(좌), 중세풍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우)


세네갈 인들이 프랑스를 얼마나 선망하는지 알았다면 그랬을까, 아마 선물로 주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알고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힘을 가지면 오히려 경외심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고래섬 파출소 주변의 거리


그렇지만 프랑스인들이 만들어 놓은 거리는 아름답고 고풍스럽습니다. 1960년 이후 보수를 거의 하지 않은 건물 치고는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마을 광장에 면해 있는 건물과 바오밥나무


처음 섬에 들어선 후 광장 방면으로 나가면 왼편으로 작은 파출소가 보입니다. 15세기 포르투갈 인들이 정착하면서 만든 최초의 건물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이 건물을 시초로 주변에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거리를 형성합니다. 여기에 아프리카 색감이 더해지면서 중세 유럽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고풍스런 거리


그렇지만 수많은 유럽인들은 다른 이유 때문에 이 섬을 찾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깊숙한 곳에서 붙잡힌 흑인들이 그들이 살던 대륙을 떠나야만 했던 마지막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유럽으로 나가던 땅콩과 가죽 등 상품이 모이던 이 섬은 그 후 아프리카 인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장소도 겸하게 됩니다. 이 섬에 들어온 노예들은 "Slave house(노예의 집)"의 창도 없는 작은 감방에 머무르면서 쇠사슬에 묶인 체 다음 배가 오기를 기다렸겠죠. 그리고 바다로 나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바로 배로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떠난 그들은 다시는 고향땅을 밟을 수는 없었습니다.


말굽모양의 계단을 한 노예하우스(좌), 밖에서 본 노예하우스(우)


프랑스풍 말굽 계단이 멋들어진 2층 건물은 노예의 보관과 이송에 최적화되어 설계되었습니다. 1층에는 창도 없는 작은 방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남자, 여자, 아이들, 그리고 징벌방이 있고, 바다로 향하는 작은 문이 나 있습니다. 2층의 전망 좋은 방에는 노예상들이 묵으면서 비즈니스를 했겠죠. 섬 중앙에 있는 성당에서 주일마다 기도 했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쇠사슬에 묶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그 아프리카 인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인간은 얼마만큼 잔인할 수 있는 걸까요?


노예의 집(Slave house)과 1층에 있는 아프리카 인들이 묵었던 감옥 같은 방


이 노예의 집은 넬슨 만델라부터 빌 클린턴까지 세계의 지도자들이 아프리카를 방문할 때 들르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노예의 집에 딸린 작은 기념품 가게에는 이들 사진이 벽에 빛바랜 체 붙어 있습니다. 저는 건물 입구에 붙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글귀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자유란 단지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다른 이들로부터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살 수 있어야 한다. "

해방된 노예상. 노예하우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


"For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노예하우스 기념품 점(좌)과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빛바랜 사진들(우)


이 섬을 떠날 때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한 명만 겨우 탈 수 있는 작은 보트에 앉아 파도와 싸우며 노를 저어 망망대해로 나가는 수많은 어부들을 봅니다. 그들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겠죠. 작은 엔진이나마 달려 있는 걸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건 이방인의 간사함 때문이겠죠. 그 어부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 나라는 완전한 독립을 이룬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섬 정상에 자리잡은 예술가(좌), 칼러풀한 거리(우)


선진국들은 수많은 ODA 사업을 통해 이 가난한 나라를 지원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들이 이루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 인들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보단,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기억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연생태계를 아프리카 인들이 가진 부자의 꿈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게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넬슨 만델라의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였습니다.


고레섬 인근에서 낚시하는 어부들



이 섬에 들어가려면...


이 섬에 들어가려면 오토넘 다카르 항에서 페리를 타야만 합니다. 외국인들은 뱃삯으로 5,200 세파(약 1만 1천 원)를 내야 합니다. 아프리카 인은 2,700 세파, 세네갈 인은 1,500 세파입니다. 그 외에도 섬 입장료 500 세파, "노예의 집" 입장료 1,000 세파입니다. 이렇게 작게나마 이 섬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고마운 일이겠죠.

 

다카르 항구 선착장에서 배에 물건을 싣기 위해 기다는 사람들과 다카르-고레 페리 시간표


세네갈 다카르, 사실 관광지는 아닙니다. 이 나라를 관광으로 방문할 것을 제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카르에 가게 된다면 고레섬은 한번 들러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15세기부터 아프리카 역사가 만들어 온 과정을 되짚어 보고, 넬슨 만델라 등 한 시대를 만들어 갔던 유명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니 말입니다.


고레섬에 있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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