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
최종적으로 술을 만드는 것은 효모의 역할이다. 효모(yeast)는 하나의 포도당(glucose)을 먹고 두 분자의 이산화탄소(CO2)와 두 분자의 알코올(C2H5OH)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포도당이 주성분인 포도는 항아리에 담아 으깨 놓기만 해도 기포방울이 생기면서 술이 된다. 효모는 사방에 지천으로 있기 때문이다.
쌀은 효모가 바로 술로 만들지는 못한다. 쌀을 이루고 있는 주성분이 포도당이긴 한데 유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하여 전분이라는 단단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쌀로 술을 만들려면 주성분인 전분을 효모가 먹을 수 있도록 먼저 포도당으로 만들어야 하는데(포도당化, 糖化),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누룩곰팡이다.
곰팡이는 입이 없어서 피부(세포막)로 영양소를 흡수한다. 그런데 전분 분자는 곰팡이가 바로 흡수하기엔 너무 크다. 포도당으로 잘게 부수어야 피부로 흡수할 수 있다. 이때 곰팡이는 효소(enzyme)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이를위해 누룩곰팡이는 쌀 전분을 포도당으로 자르는 효소를 다량 방출하는 데, 이 효소가 전분의 연결고리를 잘라 포도당으로 만들어 곰팡이가 흡수할 수 있게 한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생물은 이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미생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곰팡이가 분비하는 효소는 술 제조(양조)에도 매우 중요하다. 곰팡이가 없으면 쌀은 술이 될 수 없다.
본격적으로 오늘의 주제인 곰팡이 이야기로 다시 들어가 보자.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밀을 이용 하여 덩어리 누룩(甁麴)을 만들었다. 밀을 거칠게 빻아서 물과 함께 뭉쳐 놓으면 곰팡이에겐 먹음직스러운 밥상이 된다. 함께한 초재(짚푸라기 등)나 주변 공기 속 곰팡이들이 밀에서 자라면서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당화 효소를 분비하는데, 이것이 고두밥의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한다. 그런데 곰팡이가 먹기 위해 기껏 차려 놓은 밥상을 효모가 날름 먹어서 내놓는 게 알코올, 즉 술이다.
이렇게 밀을 미끼로 하여 풀이나 공기 중의 곰팡이를 모셔서 당화를 시킬 효소를 만들게 일을 시키는 게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곰팡이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 줘야만 우선적으로 누룩에 자리를 잡아 성실한 일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잘 맞지 않으면 세균이 먼저 자리를 잡아 안방주인 노릇을 하기도 하고, 우리가 원치 않는 곰팡이(당화력이 떨어지는)들이 누룩을 장악하기도 한다. 당연히 술을 망치는 원인이 된다.
우리 술을 이야기할 때 일제강점기를 빼고 지나기가 불가능하다. 이 시기 동안 우리가 전통적으로 만들어 오던 방식에서 큰 변화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술 역시 이 시기를 지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술을 잘 만드는 곰팡이를 골라서 키워 놓은 흩임 누룩(粒麴, 입국)이 들어오게 되는데 전통방식의 누룩인 곡자(麯子)에 비해 술을 만들기도 쉽고 술맛을 버릴 가능성도 낮아 우리나라 술 제조장에서 앞다투어 도입하게 된다. 요즈음도 전통주 논쟁에 들어가면 일본에서 들여온 입국과 우리 전통방식의 곡자 간 치열한 설전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다음 이야기는 현재 우리나라 소주와 막걸리 만드는 데 주로 이용되는 입국 중 하나인 백국균(白麴菌)의 유래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전문가의 글로 넘어간다.
다음글 : (2) 맛있는 술을 만든 백국균의 유래
(1) Why Yeast is Important to Scientific Discovery
(2) 백국균은 어디에서 왔을까? (원글)
이 글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 홍승범 박사의 글을 바탕으로 (본인의 허락을 구하고) 일반 독자가 읽기 쉽게 재작성하였습니다. 홍승범 박사는 평생 곰팡이 연구에만 매진해 온 연구자로 곰팡이 분류학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글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홍승범 박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