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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n 17. 2018

맛있는 술을 만드는 곰팡이

(2) 맛있는 술을 만든 백국균의 유래

앞 글에서, 우리 막걸리와 (전통) 소주를 만드는데 흩임누룩(백국균)이 사용된다고 기술했다. 백국균른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술 산업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미생물이다. 이글은 이 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이다.


유구국 특산주, 아와모리주의 탄생


백국균(白麴菌), 이 균을 이야기하려면 유구(琉球)의 아와모리 소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또 유구는 또 뭘까? 깊이 있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지리에 간단히 대해 집고 넘어가자.


유구제도의 지리적 위치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유구제도(琉球諸島, 류쿠제도)는 동중국해의 대만과 일본의 가고시마 사이에 펼쳐진 섬들을 일컫는다. 1879년에 일본이 강제로 차지하기 전까지는 동남아, 중국, 조선, 일본 등과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독립왕국 유구국(琉球國)이 있었고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군정이 통치하다가 일본에 반환된 것은 50여 년 전인 1972년이다. 현재는 일본 오키나와 현에 포함되어 있지만 유구제도가 일본 영토인 기간은 채 100년에 불과하다.


유구국의 특산품인 아와모리주(砲盛酒)는 유구에서 쌀에 검은누룩(黑麴)을 넣어 발효하고 1차 증류한 증류주(소주)이다. 유구국은 14세기에 태국으로부터 술 증류기술을 들여오는데 여기에 유구 기후에 최적인 검은누룩곰팡이(黑麴菌, 흑국균)를 더해 고유의 소주를 만들었다.


유구국은 이 특산 소주를 명나라, 조선, 일본 등에 진상하였는데 조선왕조 실록에 '1460년에 유구국은 세조에게 천축주(天竺酒)를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478년에 조선 백성이 표류하다가 유구국에 도착하였는데 유구 사람들이 남만주(南蛮酒)라는 술을 마셨는데 그 맛이 조선 소주와 유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소주는 유구주(琉球酒), 소주(燒酎) 등으로 불렸는데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에 이 유구산 소주를 진상하면서 일본에서는 기존 가고시마산 소주와 구분하기 위하여 아와모리주(泡盛酒)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즉, 아와모리주는 유구산 소주에 대한 별칭이다. 보통명사인 소주가 아니라 대명사인 아와모리주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이 소주를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와모리주를 만드는 곰팡이, 흑국균


1879년 유구제도가 일본에 합병된 후 일본 학자들은 유구 특산 소주인 아와모리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01년에 동경대학교 대학원생인 이누이(乾環)는 오키나와의 아와모리주를 만드는 특유의 흑색누룩(黑麴)으로부터 한 곰팡이(KACC 46772*)를 분리하고 Aspergillus luchuensis (유구산 아스퍼질러스, luchu는 유구의 영어식 발음)라 이름 지었다(1). 같은 해 일본 우사미(宇佐美) 씨도 아와모리 흑국으로부터 곰팡이를 분리하였는데(NBRC 4314) 흑국의 주요 균은 이누이가 보고한 A. luchuensis라고 기록하였다(2). 참고로 누룩은 하나의 균이 아니라 여러 종의 곰팡이와 세균이 자라고 있는 배양체인데, 이중 우점하고 있는 균이 흑국균이라는 의미이다.

유구 소주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학자들만이 아니었다. 장류(醬類) 양조 가문에서 태어난 가와치(가와치 켄이치로, 河內源一郞 1883-1948) 씨는 가업이 부진하자 1909년 26세의 나이로 가고시마의 양조장 기술지도원으로 입사한다(3). 당시의 양조장 기술지도원은 대장성 공무원이었다.


가고시마는 여름철 기온이 높고 습하다. 이런 기후에서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어떤 산업도 오염을 피하기 어렵다. 가와치 씨가 지도하는 양조장에서도 여름철에는 소주 모로미가 부패하여 소주 제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가와치 씨는 더운 지역인 가고시마에서 소주를 만드는데 한냉지에서 일본주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황국균을 똑같이 넣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자연스럽게 훨씬 남쪽인 오키나와의 아와모리 흑국에 관심을 가졌다.

가와치 씨는 오키나와로부터 아와모리 흑국균을 도입하고 여러 시도 끝에 가고시마 소주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다(1910년). 아와모리 흑국균은 기존에 사용하던 황국균에 비해 당화력이 높아 소주 생산량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구연산을 생성하여 세균 오염을 막기 때문에 술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가와치 씨는 인근 양조업자들에게도 흑국균 사용을 적극 권장하였다. 가와치 씨의 기술지도로 가고시마 대부분의 양조업자는 흑국균을 사용하게 된다. 이로써 가고시마 소주 산업도 크게 발전하였다.


흑국균의 진화, 백국균


1911년에 나카자와(中澤 ) 씨는 유구와 대만의 소주 흑국으로부터 곰팡이를 분리(KACC 47234) 했는데, 이누이가 보고한 균주와는 서로 다른 종이라 하여 Aspergillus awamori (아와모리 Aspergillus)라는 이름 붙였다. 이누이가 보고한 균주는 포자를 방출하는 경자가 단층인데 나카자와가 분리한 균주는 복층이라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 관점에서 기존에 분리한 흑국균을 다시 관찰하였는데 모두가 복층의 경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A. awamori라는 이름이 A. luchuensis를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두 균주는 같은 균주였던 것이다. (*이렇듯 과학은 오류를 수정하면 발전한다.)


양조업자인 가와치 씨는 곰팡이 이름보다는 소주를 잘 만드는 곰팡이가 중요했다. 1924년 어느 날 보존되어 있던 흑국균의 일부 포자가 회백색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고 이 회백색 곰팡이를 순수 분리하여 소주 제조에 사용해 보았다. 그 결과 기존 흑국균 대비 종국 제조가 쉬웠고, 특히 고구마 소주 제조에 적합하였다. 무엇보다도 흑색 곰팡이를 이용하였을 때 작업장이 검게 오염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가와치 씨는 이 균을 흑국균에 대비하여 백국균(白麴菌)이라 칭하고 "아와모리 Aspergillus"의 변종이라 하여 Asp. awamori var. kawachii로 학계에 보고하였다. 하지만 일본 학계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양조업자들 또한 흑국균으로 이미 소주 제조가 안정화 단계에 있었으므로 백국균을 곧바로 사용하지는 않았다(3).


여전히 성업 중인 오키나와에 있는 양조장들(출처 : drinkwire)


백국균, 흑국균을 몰아내고 주류업계 주류로 올라서다


가와치 씨는 1931년 공무원을 그만두고 가와치겐이치로 상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종국의 개발과 판매에 뛰어든다. 열성적으로 백국균에 대하여 홍보하고 기술지도를 한 덕분에 백국균은 북구주의 소주 제조에  차츰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조선, 만주 및 일본으로 점차 사용 지역을 넓혀갔다. 경도대학교의 기타하라(北原) 교수는 백국균에 주목하고 연구를 시작한다. 기타하리 교수는 그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백국균을 아와모리 아스퍼질러스(아와모리 Aspergillus) 변종에서 새로운 종인 Aspergillus kawachii로 격상시킨다. 가와치 씨가 작고한 1년 뒤인 1949년의 일이다. 개인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었겠지만, 그는 살아 생전에는 그가 유명해질 것이라는 걸 알지는 못했다.


백국균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기타하라(北原) (1949) 교수의 문헌에 의하면 백국균이 이때 이미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사이의 경위는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1970년대에는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를 제외한 전통 소주 생산에는 대부분 백국균이 사용되었다. 반면에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소주(증류주)가 성행하였는데 이 때는 오히려 우사미, 시로우사미 등의 흑국균이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도종호).


이후 1990년 들어 전통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덩이누룩(餠麴, 병국)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전통누룩 사용이 확대되기도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 소주와 막걸리 생산에서 백국균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높다.


백국균의 원조, 아와모리주의 현황


백국균의 탄생지인 일본 아와모리주의 현황이 궁금했다. 여전히 흑국균이 사용되고 있을까, 아니면 타 지역처럼 백국균이 사용될까? 아와모리주를 소개하고 있는 한 기사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6).


다행스럽게도 아와모리주의 고향 오키나와에서는 흑국균이 여전히 양조에 사용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 지역 역시 일본의 다른 지역처럼 단립종인 자포니카 쌀을 주로 먹지만, 아와모리주 제조에는 장립종인 인디카 쌀이 사용된다. 태국으로부터 소주 제조기술이 도입되던 그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이런 집착이 600년 일본 소주의 원조라는 자부심을 지켜나가는 원동력처럼 느껴졌다.


아와모리의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소주들, 여전히 흑국균을 이용해 주조한다 (출처 6)


장립종 쌀과 흑국균을 이용해 만들어진 소주, 즉 아와모리주는 항아리에 담아 서늘한 토굴에서 장기간 보관한다. 이 역시 전통이다. 오래 보관할수록 더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지금은 단지 47개의 양조장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아와모리주는 2020년 동경올림픽과 젊은 층들 사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소주 칵테일 붐과 함께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제 맥주 붐이 수제 위스키 붐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열풍은 아와모리 소주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류가 한국이 아니라 대만에서 시작되었 듯이, 일본 소주 열풍은 미국에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소주는 어떻게 자리메김하는 게 바람직할까? 명맥이 거의 끊어져가고 있는 우리 소주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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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범 박사의 글은 오늘날 우리 술을 형성해 온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 술맛을 형성하고 있는 백국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 장맛과 술맛을 결정해 온 곰팡이 분류와 보존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쌓인 그의 지식을 함께 나누기 위해 그는 이 글을 섰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글의 재가공도 허락했다. 홍승범 박사의 다음 글을 기다린다.


[용어설명]


 *KACC (Korean Agricultural Culture Collection, 농업미생물은행) : 농촌진흥청은 『농수산생명자원의 보존·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에 따라 농업 미생물 유전자원 관리의 책임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운영하는 국립농업과학원 미생물은행(KACC)은 농업 및 식품과 관련된 미생물자원을 확보 관리하고 있으며, 웹(http://genebank.rda.go.kr/)을 통해 미생물 자원 정보를 공개하고 연구용 소재로 분양하고 있다. KACC는 세균, 효모, 사상균, 버섯을 포함하여 총 6,890종 23,692 균주를 보유하고 있다(농촌진흥청 권순우 박사).
KACC의 미생물 저장고. 액체질소 속에 미생물을 급속 동결해서 보관한다.(홍승범 박사 제공)
* 흑국균(黑麴菌): 소주 발효에 이용되는 검은색 Aspergillus 곰팡이. 예전에는 다양한 곰팡이 종이 흑국균으로 불렸으나 최근에 Aspergillus luchuensis, A. tubingensis, A. niger의 3종으로 정리되었다(참고 1. 흑국균의 학명 변화). 이 중 A. luchuensis가 주요 균이므로 좁은 의미의 흑국균은 A. luchuensis 만을 의미한다. 황국균에 비하여 구연산 생성력이 강하여 술 발효 시에 세균 오염이 적고 Glucoamylase 효소를 많이 생성하여 생전분 분해도 가능하다. A. luchuensis와 A. tubingensis는 곰팡이독소, 오크라톡신을 생성하지 않지만 A. niger의 일부 곰팡이는 오크라톡신을 생성할 수 있다.
* 백국균(白麴菌): 흑국균, A. luchuensis의  백색돌연변이주로 이를 흑국균과 구분할 때에는 Aspergillus luchuensis mut. kawachii로 기록한다. 백국균은 다수의 균주들에 대한 그룹이 아니고 KACC 46771의 단일균주에 대한 이름이다. 때로 Aspergillus oryzae의 백색 돌연변이주와 A. niger의 백색돌연변이주인 A. shirousami도 백국균으로 불린다.
* 황국균(黃麴菌): 미소와 청주를 만드는 Aspergillus oryzae, 간장을 만드는 Aspergillus sojae가 황국균에 속한다. 배지에 배양 시에는 실제 황색보다는 연두색에 가깝다.



인용문헌


(1) 乾環. 琉球泡盛酒醱酵菌調査報告 (官報), 工化, 4:1357-61. (1901).
(2) 宇佐美柱一郞. 泡盛酒釀造硏究報告, 工化, 4:1437-61. (1901).
(3) 河内源一郎 - Wikipedia.

(4) Hong SB et al., Aspergillus luchuensis, an industrially important black Aspergillus in East Asia. PLoS One 8, e63769 (2013)
(5) 홍승범 등. 메주에서 분리한 검은 Aspergillus 균주의 동정. 한국균학회지, 41:132-5. (2013)

(6) The Ancient Art of Awamori(2017)

(7) 백국균은 어디에서 왔을까? (원글)


이 글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 홍승범 박사의 글을 바탕으로 (본인의 허락을 구하고) 일반 독자가 읽기 쉽게 재작성하였습니다. 홍승범 박사는 평생 곰팡이 연구에만 매진해 온 연구자로 곰팡이 분류학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글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홍승범 박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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