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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Nov 04. 2018

카카오에서 본 인식과 이해의 깨달음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다르고,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도 다르다.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차이


카카오가 나무 몸통에 달리는 사진은 여러 번 봤습니다. 그렇지만 인식을 못했습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리는 것이니 그냥 굵은 가지겠거니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당연하거니 생각조차 안 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물리적으로는 봤지만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매일 같이 카카오톡(?)을 쓰면서도 말이죠!!


그러다가 직접 보고는 놀랍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또 많은 분들이 저처럼 놀랍니다.


가나 센트럴 지역에서 찎은 카카오, 가지가 아니라 나무 몸통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또 한 가지 놀란 게 있습니다. 농가의 평균 경지 면적입니다.


우리나라도 대개 1-2 ha/호 수준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녀본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습니다. 선진국 말고 개도국들 말입니다. 1 ha 내외입니다.


우리는 땅이 좁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죠. 땅이 좁아서 가난했다고. 그런데 땅이 넓은 나라를 가도 비슷했습니다. 베트남, 가나, 세네갈.....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


가나의 농촌을 둘러보다 불현듯 깨닫습니다.  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다고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해도 한 가족이 1-2ha를 넘어 경작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당연한 건데 왜 이해하는 데 그렇게 시간이 걸렸을까 싶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지역은 경작 면적을 확대해야 합니다.  1ha에서 굶지 않을 정도만  겨우 생산 가능하니 말입니다. 더 크게 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계가 들어가야 합니다. 농기계가 들어가려면 경지정리가 돼야 하고요.  대부분 건조지대가 많으니 관개시설도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농업은 장치산업입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장치산업입니다. 농업을 포기 한다는 건 수 백년 동안 투자된 엄청난 자산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일본 JICA가 지원한 경지정리 관개지역. 논 주변에 바나나 나무가 멋드러지게 둘러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이만한 농업투자를 감당할 여력이 안됩니다. 해외 원조기관들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한 나라의 농업 인프라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개도국의 농촌이 가난을 벗어나기는 난망해 보입니다.


비와 강물에 의존해 벼 농사를 짓는 지역. 평탄화와 수로정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럼 농업 인프라만 개선하면 되겠지 싶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또 하나 더 큰 문제에 부딪힙니다. 토지 소유 구조입니다. 개도국 농촌 대부분은 특정한 몇 명이 농경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족장 또는 추장으로 불리기도 하고 유지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외부에서 지원이 들어가면 토지소유자가 무조건 이득을 얻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개선되는 면이 있고 모순이 강화되는 측면이 또 발생합니다. 또 옆길로 샜네요.



세상을 움직이는 카카오


우리는 가나 하면 초콜릿을 먼저 떠올립니다. 아이보리 코스트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카카오 생산국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채시라 씨를 먼저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채시라 씨는 그 시대 청년들에게 감미로운 고독을 선물했고, 가나는 우리에게 초콜릿의 나라로 인식됐습니다.


이미연 씨가 등장하는 가나쵸콜릿 광고 (* 광고화면에서 캡쳐)


가나의 농촌을 돌아보면서 결국은 돈이 돌아야 세상이 달라진다는 걸 또다시 느낍니다. 우리의 이상과는 달리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소득입니다. 돈이 있어야 애들 학교도 보내고, 영양가 높은 음식도 먹을 수 있고, 병원도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매.  이 아이들이 더 풍요로운세상에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가나 사람들이 가장 쉽게 돈을 만드는 방법은 카카오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우리 과수원처럼 어디서나 쉽게 마주칩니다. 농민들은 카카오를 수확하고 갈라서 씨를 발라 발 위에 말립니다. 그리고 이를 수매하는 조합이 있어서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수출합니다. 이를 위한 조직과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카카오를 말리고 있는 가나 센트럴주의 한 농가
농가로부터 수매한 카카오를 저장하는 창고. 우리나라 농협창고처럼 훌륭한 시설이다.


우리는 초콜릿을 먹지만 더 이상 가나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이게 채시라 씨가 더 이상 가나초콜릿 광고를 찍지 않아서도 아니고 스마트폰이 감미로운 고독을 빼앗아 가서도 아닐 겁니다. 밸런타인데이를 떠올리고, 고디바와 기라델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자본의 힘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카카오의 생산지가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브랜드만 남고 생산자는 지워졌습니다.



카카오를 팔고 졸로프를 먹는 사람들


초콜릿을 주식으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대개 이 지역 사람들은 옥수수, 얌, 카사바를 먹었습니다. 그러다 쌀 맛에 반합니다. 우리 상상과는 달리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점점 더 쌀을 많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가나에서도 1년에 6-10억 달러 정도의 쌀을 수입합니다. 1년 농업 예산이 1억 달러를 조금 넘어가는 수준의 나라에서는 엄청난 외화 유출입니다.


이곳 가나의 대표음식은 졸로프(Jollof)입니다. 쌀로 만드는 대표적인 요리입니다. 세네갈에서는 쩨부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음식을 두고 나이지리아, 세네갈, 가나가 서로 원조를 주장하면서 온라인에서 다투고 있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2014년에는 제이미 올리버가 졸로프 요리법을 소개했는 데, 서아프리카 사람들의 비난이 대단했습니다. "졸로프는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야!"라고 말이죠.


졸로프, 프라이드 라이스와는 조리법이 다르다.


이렇듯 가나 사람들의 졸로프 사랑과 맞물려 쌀의 짧은 조리시간은 쌀 소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카사바를 식사로 준비하려면 너 댓시간의 준비가 필요하지만 쌀은 길어도 30분이면 되니 말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쌀 소비가 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쌀 재배면적을 늘려야 합니다. 물이 있는 곳이면 논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벼농사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수천 년을 벼농사에 의존해 온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겠지만 여기서는 신기술에 속합니다. 쌀 산업기반도 취약합니다. 도정공장은 너무 빈약해서 싸라기 쌀이 더 많이 나옵니다. 좋은 값을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나 센트럴주의 한 학교. 학생들이 이방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 사람들이 그냥 지금 잘 재배하고 있는 옥수수와 카사바를 먹으면 안 되는 걸까? 그런데 이미 한번 바뀌기 시작한 식습관을 바꿀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쌀 소비도 늘어나겠죠.  카카오 가격이 올라가면 더 많은 쌀이 수입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업 현장을 확인하고 공무원 및 주민들과 토론하고 있다.  11월이지만 숨막히게 더운 날씨 였다.



KOICA의 지원으로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가나의 농촌을 둘러보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쌀 재배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우리가 지원할 농기계의 목록을 정하고 가나의 열정적인 공무원들과 협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면서도 인식하지 못했던, 알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 어린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조금 더 밝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먼 나라의 지원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일도 없겠죠. 진짜 가나산 쵸콜릿을 선물로라도 듬뿍사서 돌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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