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를 읽으며 떠오른 단어의 힘
시대마다 어떤 단어가 가지는 힘이 있습니다. 도덕 시험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어느 게 답인지 지문만으로도 답을 알 수 있는, 그런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관념을 의미하는 단어 말입니다.
분절화는 나쁜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일원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걸 살짝 비슷한 단어로 바꾸면 분절화=전문화, 일원화=획일화, 이렇게 볼 수도 있겠죠. 주로 개발원조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원조 분절화가 문제일까요? 아니면 원조 전문화가 더 타당할까요? 이 둘을 같이 놓고 보면 잘 모르면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럼 획일화와 다양화는 어떻습니까? 단어의 첫 느낌이 어떤 가요?
개별 농산물은 규격화되고 획일화되어야 합니다. 이게 안돼서 엄청난 비용이 낭비됩니다. 하지만 생태계는 독불장군보다는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획일화되면 폭군이 되니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용어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쓰는 용어만 봐도 그 사람의 입장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지방분권에 대한 어떤 고정된 관념도 있습니다. 제가 농촌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 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권력의 집중보다는 분산이 동시대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부를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의 공정한 분배가 더 가치 있는 더 가치 있게 여겨지기도 하고요. 어쨌든 분권은 좋은 것이라는 절대 명제에 토를 달 수는 없습니다. 그 지방마다 고유한 방식을 찾아 각자도생을 잘 해야하는 건 분명하니까요.
지방의 문제에 대해 제가 답답해하던 것을 풀어낸 책이 나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주문을 했습니다. 마강래 교수의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http://www.yes24.com/24/Goods/67079311?)입니다. 요즘은 뉴스 기사들처럼 책 제목도 좀 과한 느낌은 듭니다. 유튜브에 밀려 책이 먼저 소멸될지도 모를 위기감을 출판사들이 느끼고 있는 탓이겠죠. 저자는 이미 이전에 <지방도시 살생부>라는 책을 출간하여 소멸해가는 지방도시를 조명한 바 있습니다.
저자는 분권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행정 단위를 그대로 두고 분권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대안으로 압축도시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제가 미래농업에 대한 이야길 자주 하고 다닙니다. 글을 쓰기도 하고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농업기술이 변하는 걸 보면 미래농업이 어떻게 바뀔지, 우리 농촌과 농민은 또 어떻게 바뀔지가 완연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기술변화가 결국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를 열심히 그려냅니다. 물론 미래는 현재와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유토피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도 아닙니다. 단지 생산 수단의 변화에 맞게 최적화된 재배치 구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전에 개도국의 호당 경지면적이 1 헥타르 내외라는 걸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친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매일 보던 통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건 땅이 좁아서가 아니라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이었다고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하다 느꼈습니다. 그러니 기술이 바뀌면 당연히 경작면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촌마을 배치는 따라서 바뀌어야만 하고요. 영국을 한번 살펴보면.....
영국(잉글랜드)은 우리보다 농경지는 다섯 배 더 많지만 농가수는 열 배 더 작습니다. 42%의 소농은 단지 농업 GDP의 2%만 생산합니다. 7%의 대농이 농업 GDP의 55%를 생산합니다. 극단적인 대농과 소농의 조합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본 영국 농촌이 황량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영국의 행정 단위인 shire는 우리나라 도보단 작고 군보단 확실히 더 큽니다. 영국도 예전부터 이렇진 않았을 겁니다.
사실 이건 선진국이면 대개 다 비슷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불 정도 되지 당연히 우리 농업도 비슷하게 변해갈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환경이 같지 않으니 차이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영국을 보면 우리 농촌은 어떻게 바뀌는 게 맞을까? 이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제 고향마을도 이젠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까지 변해가고 있습니다. 마을은 노인들만 있고, 애 울음소리가 끊어진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10년 후에도 마을이 유지될 수 있을까 들를 때마다 걱정만 쌓여갑니다. 귀촌 인구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게 추세를 바꿀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건 노력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요.
이미 지방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산촌 마을은 사라져 가고 있고 자연스럽게 면 소재지로부터 가까운 곳으로 모여듭니다. 지방 중소도시로 계속 이동합니다. 멀지 않은 시점에 거점 마을을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우리가 익숙하던 농촌의 모습과는 작별할 수밖에 없는 분기점에 서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논의는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꺼내기 부담스러운 주제입니다.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킬 수 없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면서 미래를 위해 써야 할 자원을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우려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지방소멸로 가는 길은 지방분권으로 포장되어 있다."
마강래 교수는 이야기합니다. "지방소멸로 가는 길은 지방분권으로 포장되어 있다"라고 말입니다. 절대부정 할 수 없는 용어가 우리의 토론을 막고 있지는 않는가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지방분권은 지방간 불평등을 더 심화시켜 한계상황에 처한 지자체의 소멸을 촉진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마강래 교수는 대안으로 지방 대도시권을 살리고, 대도시권과 중소도시연합체를 연결하고, 다시 중소도시와 농·산·어촌을 압축하는 방법을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도시에 계신 분들은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지방을 자주 찾는 제게 지방소멸의 위기감은 너무 크게 와 닿습니다.
우리는 익숙했던 예전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미래 세대가 현대의 기술 수준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된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분권이 지방 분절화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어가 주는 마력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지방분권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어젠다이니 말입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 세대가 익숙했던 관념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도도한 흐름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그 농촌의 풍경을 기억 속에 담아 두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