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사람들에게...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뭔지 아세요? 쌍팔년도에 군생활해본 분들은 잘 알잖습니까!
"FM 대로 해볼까?"
였습니다. 이 말만 나오면 병사들의 표정이 다들 일그러졌습니다. 다들 속으로 한 마디씩 하죠. “X 됐다.”
사실 이 FM이 뭔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규정대로 한다, 정도로 이해했죠. 나중에야 이게 미군들이 쓰던 야전교범, Field Manual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먼지 덮인 규정집이 군기를 잡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한 때는 지하철 공사가 파업을 할 때 준법투쟁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법대로 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또 법대로 하면 처벌하겠다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엄격한 법 적용이라는 게 지하철의 부드러운 운영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시민들 모두가 느낄 수 있었죠.
길거리에서도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나면 꼭 나오는 말이 “법대로 하자”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게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는 겪어본 사람만 알죠. 최소한 며칠은 귀찮아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요. 그러니 법에 호소하기 전에 서로 사과하고 끝내는 게 좋다는 걸 깨닫곤 하죠.
이 이야길 하는 건 기존에 만들어진 절차와 규정이 모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조문이 세세할수록 상상력은 마르고 리더십은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은 경계"에서 일어납니다. 경계의 폭에 비례해 논쟁도 커지고, 경계가 모호할수록 혁신의 가능성도 더 커지게 됩니다. 경계가 직선처럼 깔끔하면 혁신은 범법과 동의어가 되겠죠. 죽은 사회가 되는 겁니다.
모호한 경계를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결국 그 사회의 유연성과 혁신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에 필요한 게 똘레랑스, 즉 관용이고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큰 문제가 아니면 문제 삼지 않는 정도겠죠.
사소한 일탈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경계가 어느 정도 두터운지 서로 인식하게 만드는 게 더 포용적인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선진국일수록 공개적인 토론 문화가 발전한 이유겠죠.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이슈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경계의 두께를 가늠해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듯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이게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되면 미래가 걱정됩니다. 혁신성장과 규제개혁,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우리가 시대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펼쳐질 경계가 포도껍질처럼 얇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복지부동하라고 말하는 듯 우려되기도 합니다.
"옳은 일을 해라! 욕먹더라도 옳은 일을 해라! 세월이 지나야 가치를 발하는 일도 있다."
그런 메시지가 더 필요할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관용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실패를 용인할 수 있어야 하고, 경계의 침범을 비난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계의 두께를 서로 가늠하는 거죠. 그러면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거고요.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갈리겠지만, 경계를 확장해가는 선구자들에게 약간의 따뜻한 시선은 어떨까요?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 미래를 바꾸어가는 혁신가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