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 법칙
공무원일 때 외부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뭐 하냐고 그렇게 바쁜냐?"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바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로 상부, 즉 윗선에 뭔가를 보고해야 할 게 있을 때 가장 부리나케 바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공공조직을 좀 아는 외부인들은 공무원들은 "자기들끼리 문서를 주고받는다고 바쁘다"라는 비판을 한다. 공공조직 내에서 의사소통과 합의를 도출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우리가 일을 정당하게 했다는 걸 증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한다.
사실 바빠서, 너무 바빠서 다른 일을 못할 정도로 바빠서 인력을 충원한다. 주로 기획실 등 기관장을 보좌하거나 업무조정을 하는 담당부서의 규모가 가장 빨리 늘어난다. 옛 기관에서 기획실이 기획과가 되었지만, 더 의미 있는 방향성을 설정한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아마도 상급기관이 커지면서 요청하는 업무가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게 증원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업 담당부서의 업무가 그에 따라 더 늘어난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현업부서의 기획담당도 따라서 증가한다. 아래로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현업 직원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기획실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생산하기 위해 보내야 한다. 실제 수행해야 할 일상적인 업무를 할 시간이 점점 부족해진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윗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듯했다. 자신들에게 오는 보고자료에는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올라오기 때문이다. 자료의 성찬이 벌어진다. 한 기관이 이런 게 발전하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기관도 따라서 변해간다. 더 나쁜 것은 현업부서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이 모두 기획부서로 옮겨가는 현상이 생겨난다. 그곳에서 근무해야 승진이 빨리되기 때문이다. 현업부서는 업무역량이 크게 줄어들지만 더 그럴싸한 보고자료는 끊임없이 생산된다.
나만 이런 걸 느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영국의 노스코트 파킨슨 (C. N. Parkinson)은 해군 공무원 조직이 끊임없이 비대해지는 것을 보고 조직이 비대해지는 것과 업무량 증가와는 상관이 없음을 밝혔다. 파킨슨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의 해군 조직은 업무량과는 관계없이 인원은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인력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업무량도 계속 늘어났다. 기대와는 달리 사람을 늘린다고 업무량이 줄어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라고 한다.
조직은 생물과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조직이 태어나면 성장하고 몸집을 키워 간다. 특히나 공공조직은 주변의 환경 변화와 관련 없이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부나 처음 들어설 때 공언과는 달리 결국은 공공조직을 키워놓고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공공조직이 늘어난다고 공공서비스가 더 좋아진다는 걸 체감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일들은 내부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결국에는 조직이 커질수록 본연의 기능은 점점 쇠퇴한다. 우수한 인력은 본연의 업무 이외로 배치되기 십상이고, 기존의 말단 조직은 점점 더 행정업무에 얽매이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태로 변해간다. 효율적인 조직에서 점점 더 관료적인 조직으로 변해간다. 수장의 전문성이 떨어질수록 이런 과정이 촉진되는 경향이 있다.
파킨슨의 법칙과 관련된 "corollaries" 몇 개를 소개하면....
If you wait until the last minute, it only takes a minute to do.
마지막 1분까지 기다린다면 그걸 하는데 1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Work contracts to fit in the time we give it.
계약된 일은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서 완성된다.
Data expands to fill the space available for storage.
데이터는 주어진 저장공간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늘어난다.
Storage requirements will increase to meet storage capacity.
필요한 저장공간은 주어진 저장용량을 충족할 만큼 증가한다.
이 모든 게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아무리 넓은 공간이 있어도 결코 넓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다. 아무리 넓은 집도 결국은 좁다고 느끼게 된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일을 하는 것은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이다. 부서의 인원을 늘려도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점점 더 비 효율적이 될 뿐이다.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해질수록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은 점점 더 떨어진다. 그런데 해결책은 조직을 더 늘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파킨슨의 법칙은 우리에게 왜 벼락치기 공부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 공무원 조직은 비대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준다. 조직을 키워도 왜 위기는 반복되는지를 말해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한 상상력이지 넓은 공간, 비대한 조직이 아니다. 그렇지만 관료적인 조직은 이 상상력만 빼고는 다 있다. 특히 비효율, 자기 생산 및 보고가 가장 번성한다.
지지 않던 해가 저물어 가던 시대에도 영국 해군 조직은 계속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