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Jun 03. 2019

융복합이 왜 어려울까?

농업과 ICT, 이종 간 만남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

농업과 ICT 분야 사이를 가르는 이해의 간격은 꽤 넓다. 최근 일련의 실패를 겪으면서 막연히 생각하던 그 간격을 확인했다. 새로운 과정은 역시 실패를 통해 경험하고, 실패를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또한 깨닫는다.


농업분야에서는 ICT가 핵심기술은 아니다. 설사 ICT를 중요하게 활용된다 하더라도 그건 ICT 분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수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ICT 기술로 농업 ICT 융복합 사업을 평가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평가절하는 식후에 따라오는 디저트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돼지농장에 설치된 사료 빈(Bins)들


몇 번의 연속된 실패는 주로 타 분야와 접점에서 생겨났다.


에너지 분야와 ICT 분야에 신청한 과제는 경쟁 발표에서 연거푸 떨어졌다. 이런저런 사소한 실패까지 겸하면 타 분야에서 성공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듯 보였다. 반면에 농업분야에서는 그런대로 잘 나갔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왜 농업분야에 별도의 R&D 및 창업지원기관이 있어야 하는지 구구절절 이해가 됐다.


사실 농업 관련기관에서 창업지원 일을 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궁금했다. 굳이 농업분야에서 별도로 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가 든적이 많았다. 물론 지금은 심각히 반성하는 중이다. 농업 관련 기관들이 있어서 무척이나 고맙다.


예전엔 농업 ICT 분야에 투자되는 걸 보면서 엔젤투자자들은 어떤 면을 봤을까라는 의아심이 들었다. 그 의아심은 대개 타당한 결과로 나타났다. 너무 쉽게 본 측면도 있다. 그런데 비로소 이해가 갔다.


이분들은 관점이 많이 다르구나라는 걸.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타 분야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걸.

우리나라는 농업용 드론산업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결국 타 분야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는 건 다시 우리 몫으로 남았다. 농구의 명언 중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농업분야에서 ICT는 거들뿐이다. 농업이라는 본질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더 효과적으로 그 특징을 강화하기 위해 ICT가 필요하다. 물론 아주 많이 필요하다.


농업분야에서 설명할 때는 우리가 ICT 기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가 PT의 방향이 된다. 농업이라는 산업에 대한 이해는 기본으로 깔고 가고, 위원들도 대개는 “딱 보면 압니다”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타 분야, 특히 ICT 분야에 있는 분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았다. 그게 왜 필요한지, 그 분야에서 뭐가 장애물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ICT 기술의 접목이 어떤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려워 보였다.


제한된 시간 동안 타 분야 분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을지, 이걸 찾는 게 시급한 혁신처럼 느껴졌다.

 그 분야의 익숙한 언어를 이해하기 전까지 이런 실패는 불가피해 보였다.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실패와 함께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ICT 분야의 창업가들과 협력하는 걸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축사에는 정밀한 공조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에너지를 줄이고 일교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ICT 제어기술이 필요하다.


실패할지언정 포기하진 않는다.


반대로 농업분야 평가위원 입장에서 ICT 인들이 제안하는 과제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업을 깊이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기술만 들고 나온다는 느낌때문에 안타까움도 들었지만, 이제는 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들을 봤을 때는 이런 느낌이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집에 편자를 팔려 오셨나요?

그들도 그렇게 봤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을 하는 분들 포함해서, 축산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게 돌아가는지 알면 화들짝 놀랄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을 다루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단지 오랫동안 해와서 익숙해 보일 뿐이다.


이래서 융복합이 어렵고, 또 이래서 융복합이 필요하다. 내가 뭘 더 놓치고 있는지 또 알아가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두 분야의 간격을 좁히려면 서로 어울리면 함께 하는 자리가 많아야 할 것 같았다. 이건 역시 농업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혁신은 경계에서 일어나고, 그 자리에 쓰라린 오늘을 경험하고 있는 경계인들이 발을 딛고 서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정용 바이오가스 보급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