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발효가 만든 세기의 히트작
미국에는 “화이트 진판델”이란 유명한 와인이 있다. 이 와인은 진판델(Zinfandel)이라는 적포도를 압착하여 그 즙을 발효시켜서 만든다. 이 포도주는 분홍빛의 달착한 맛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포도주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실패한 발효가 포도주의 역사를 새로섰다.
캘리포니아의 한 양조장에서 진판델이라는 로제 와인을 만드는 중 포도당이 완전히 알코올로 전환되기 전에 발효조건이 맞지 않아 발효가 중단되었다. 이를 스턱 현상(stuck fermentation)이라고 하는데, 와이너리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여기에서 화이트 진판델의 얘기는 시작된다.
진판델이라는 포도가 1869년에 엘 피날 와이너리에서 처음으로 로제 와인으로 만들어 졌다. 이후 캘리포니아의 여러 와이너리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진판젤로 만든 로제 와인은 곧 캘리포니아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1975년 셔터홈즈(Sutter Home's)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진판델에서 스턱 현상이 일어났다. 당이 다 소모되기 전에 효모가 죽어버린 것이다. 양조장마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었다. 와이너리 주인은 실패한 와인을 버리지 못하고 옆에 치워 놓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갔다.
미련을 버리고 이 와인을 폐기하려고 살펴보던 중 와인 제조자가 마지막으로 맛을 보았다. 스턱현상으로 발효가 중단된 와인은 당이 알코올로 바뀌지 않아 달착지근한 맛이 났다. 분홍빛깔이 나는 버린 와인은 기존의 진판델과는 당연히 다른 맛이었다.
양조자는 와인이 되려다 만 와인을 시험 삼아 주변에 돌렸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달착지근한 단맛은 와인의 씁쓸한 맛에 익숙치 않던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것이 오늘날 화이트 진판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도수가 낮고 달착한 핑크빛 와인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이다. 이 와인은 초기에는 까베르네 블랑 (Cabernet Blanc) 또는 화이트 까베르네(White Cabernet)로 불렸다.
Sutter Home 와이너리는 이 실패한 제품이 더 많이 팔리자 점차로 생산량을 늘려 나갔고,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매년 4백만 상자 이상의 화이트 진판델을 판매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성공해도 너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란 말이 여기보다 잘 어울리는 곳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실패한 발효로부터 탄생한 “화이트 진판델”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주의 하나로 등극하게 되었다.
진판델(Zinfandel)은 적포도 품종으로 캘리포니아 포도밭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포도 품종은 19세기 중반에 미국으로 도입되었는데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최근 최첨단 과학기술인 DNA 지문 분석법으로 분석한 결과 로아티아 포도인 Crljenak Kaštelanski와 유사하다고 하고, 또한 이탈리아의 푸글리아에서 자라는 전통 품종과도 유사성이 깊다고 한다.
그 유래가 어떠하던 이 품종은 “화이트 진판델”로 인해서 더 유명해졌다. 그리고 약간 단맛이 나는 로제 와인(rosé wine)에 속하는 진판델은 적포도주에 비해 6 배나 많은 양이 생산된다. 당도가 높은 포도로 생산되는 이 포도주는 15%가 넘는 알코올 도수를 나타낸다. 이 적포도주의 맛은 포도가 어느 정도 성숙된 후에 수확되었느냐에 크게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