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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Oct 25. 2019

실크산업의 명맥을 이은 불량고치

외면받던 쌍고치 덕분에 명맥을 이은 잠업!

잠실에 들어섰을 때 정면에 누에고치를 담은 바구니가 보였습니다. 제 눈에는 그냥 좋은 꼬치와 좀 더 큰 꼬치 정도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쳤을 때 허씨비단직물의 허호 사장의 이야기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그 꼬치로부터 세 시간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영천시 고경면에서 옮겨 온 잠실(누에방)


누에는 혼자서 꼬치를 짓습니다. 그런데 두마리서 한 꼬치를 짓기도 합니다. 이 쌍고치에는 번데기가 두 마리 들어있습니다. 누에가 나방이 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명주실을 뽑을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 꼬이면서 군데군데 마디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상인 누에고치(좌)와 쌍고치(우). 크기는 약간 크고 모양은 조금 불규칙하다.


쌍고치에서 뽑은 실로 직물을 짜면 마디와 꼬임으로 인해 삼베처럼 거칠어집니다. 그러니 쌍고치는 헐값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꿉니다. 이런 불규칙성이 오히려 특별한 디자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단은 매끈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라는 수 천 년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 쌍고치의 실로 비단을 짰습니다.



삼백의 고장 상주에서 쌍고치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격도 삽니다. 부부는 밤새도록 비단 배틀을 밟았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물건이 만들어진 것이죠. 저도 친척분들 한복 중에서 약간 거친 질감의 한복을 보며 이것도 비단인가 신기해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한때는 우리 역사 대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하나였던 실크산업이 경쟁에 밀려 사라져 갔을 때도, 가치없이 여겨지던  쌍고치 덕분에 허씨비단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잠실과 잠원동, 남산의 잠두봉, 요즘 갑자기 (hot)해진 누에다리  우리 생활에 깊은 흔적을 새겼던  잠업의 명맥을 잇게 했습니다.



우리는 농업 하기에 불리한 조건입니다. 그렇지만 관점을 바꾸면 그게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특별함을 알아 줄 세계는 여전히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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