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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an 18. 2020

누가 사업기획에 참여해야 하는가?

농업 ODA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


자주는 아니지만 해외 농업 ODA 사업 형성 조사에 가끔 참여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분야에서도 다른 분야처럼 가능성과 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업무 이야기는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서 최대한 건조하게 정리합니다.


1. 농업 사업은 소득향상이라는 목표가 대부분 따라붙게 됩니다. 보건, 교육, 공공분야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즉 돈을 잘 쓰는 것에 더해서 벌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Agri-Business가 필수적이라는 말이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2. 그런데 사업을 기획하는 전문가들 중 Agri-Business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가는 흔치 않습니다. 농업기술과 비즈니스, 둘다를 경험한 전문가 그룹이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있기는 하지만 전문가라는 그룹에게 요구하는 스펙이 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경험에서 머물지 않고 그 경험을 제대로 문서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3. 현장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분들이 연구 또는 교육기관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대개 퇴직 전 몇 년 동안은 관리자 또는 대부분의 시간을 교육자로 일했던 분들이라 것일 겁니다. 현업에서 떨어져서 상당기간을 보내다 보니 이때쯤이면 추상적인 개념을 문서화하는 능력이 약화됩니다. (우아한 표현이네요.) 창의적이기보다는 지적하는 데 역량이 개발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요.


4. 다음으로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농업분야로 참여하게 됩니다. 비즈니스를 아시는 분들이면 농업전문가들과 잘 팀을 이루어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죠. 인력풀의 한계로 느껴졌습니다.


나쁜 케이스는 스스로 농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농업사업 몇 번 참여해본 경우에 해당하겠죠. 선수들은 몇 마디만 들으면 금방 견적이 나오는 데, 안타까운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래서 겸손이 가장 강력한 생존 도구라는 말이 많이 와 닿습니다. (제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고요.)


5. 때로는 전문성이 독이 되기도 합니다. 몇 가지 케이스가 있을 수 있겠죠. 하나는 이론과 현실과의 괴리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같은 게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입니다. 경운기 한대로 50ha의 논을 갈 수 있다고 매뉴얼에 기술되어 있다고 필요한 농기계 수를 50ha 당 한대로 설정하자고 주장을 합니다. 이게 타당하게 느껴지시는 분 혹시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예는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케이스입니다. 가끔 평가를 가면 "저 사업이 여기에 왜 들어왔지?" 이런 게 있습니다. 사실 자주 있습니다. 들어보면 그 분야 농업전문가가 사업기획에 참여한 케이스죠. 그래서 자기가 아는 분야를 넣습니다. 대부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난 조직배양이 사업에 들어가면, 그걸 하기 위해서는 조직배양 전문가, 난 배양시설, 교육 등이 따라가야 합니다. 주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효과적으로 제대로 수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들어갑니다.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겠죠.


6. 현장에 따라 가장 적합한 농업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항상 자기 분야를 중심으로 넣습니다. 종자를 하시는 분들이 가면 종자가 주력이 되고, 채소 전문가 가면 원예사업이 만들어집니다. 현지 시장과 농업여건을 고려할 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라기 보다는 말이죠.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죠. 그러니 누구를 선발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연결되는 데 이건 주제를 넘어가니 패스하겠습니다.


7. 그럼 대안이 뭘까? 결국 사업기획과 agri-business에 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농업분야에서 은퇴를 몇 년 앞둔 분들을 위해 관련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꾸준히 교육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그런 일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미 계셔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장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청년들을 교육해서 미래의 해외농업개발 인재로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접근방법이겠죠. 좋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면 해외 ODA 사업들이 의미 있게 추진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농업분야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하겠죠.


8.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해외농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일본의 JIRCAS 같은)을 만들자는 주장을 가끔 하는데요, 이게 왜 필요한가 하면, 1) 그 나라 농업 전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수준 높은 농업/농촌개발사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게 하나고요, 2) 다른 하나는 우리가 어차피 약 70% 이상의 식량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합니다. 식량안보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농산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도 하고요.


2조 원이 넘어가는 ODA 사업에 대해 우리 농업분야에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렇게 또 길게 씁니다. 한두 사람의 열정과 관심에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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