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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13. 2016

이스터 섬에는 정말 나무가 사라져 버렸을까?

라파누이

라파누이, 이스터 섬이라고 불리는 이 섬을 다녀온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라오스에 있는 동안 둘씩이나 내 가까이 있었다. 라파누이는 가기도 힘들지만 다녀온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오지 중 오지이다.


칠레령인 라파누이는 칠레로부터 3,500킬로미터, 가장 가까운 유인도와는 2,000킬로미터 떨어진 절애의 고도이다. UNESCO는 1995년 이 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스터섬의 전경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지금까지 이 섬을 다녀온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좁은 라오스 사회에서 이스터 섬을 다녀온 한국인을 둘씩이나 만났다. 그중 한 사람은 나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화공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화학공정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그 후로 주~욱 프로그래머로 살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7개월 간 세계여행을 했고 그 와중에 이스터섬을 방문했다. 칠레-이스터섬-호주로 이어지는 여행 코스였다.


내가 그를 보는 것이 신기했던 만큼 그 역시 이스터 섬에서 조정 연습을 하는 프랑스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 놀랐다. 이 외딴섬을 매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프랑스 조정 선수들을 본다는 게 어찌 놀랍지 않을까. 누구는 일생일대의 여행으로 겨우 찾은 곳이지만, 누구에게는 그냥 매년 찾아오는 하계 훈련지에 불과했다.


그는 그 후 OO화학에서 프로그래머로 일 하다 또다시 길을 떠났다. 라오스에 봉사단원으로 온 것이다. 이전 직장 사람들은 그가 왜 떠나는지를 수도 없이 물었다. 봉사활동을 위해 떠난다는 그를 붙잡고 묻고 또 물었다. 그들은 과연 이해했을까. 대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 것도 없는 야생으로 떠나는 것을 이해했을까.


나는 지난 여행을 그와 함께 했다. 그리고 그의 특이한 경력이 지금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변화를 언제 인식할 수 있을까?


이스터 섬은 모아이 상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총, 균, 쇠>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이스터 섬의 멸망을 재촉한 사라진 숲의 마지막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로 인해 이스터 섬은 더 유명해졌다. 서구 사회에 이스터 섬 원주민들은 생각 없는 사람들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질문처럼 이스터 섬에는 나무 한그루 남아 있지 않다(*최근 들어 방풍림이 심어졌다). 하랄드 벨처는 <기후전쟁>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질문은 의미 없는 넋두리라며 힐난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당 시대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모든 일은 사후에 평가될 뿐이다.  


우리는 변화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 변했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하랄드 벨처는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변화를 언제 인식할 수 있을까?


이스터섬의 운명은 나무를 베어 모아이 상을 세우기로 했을 때 결정되었다. 마지막 나무를 베던 사람은 어제 벴던 나무를 오늘도 베었을 뿐이다.


나무가 사라졌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물고기를 잡을 뗏목도 만들지 못했고 교역을 위한 항해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조상들은  수천 킬로미터 망망대해를 거슬러 이곳까지 온 타고난 항해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양조차 잊었다.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토양은 사라졌고, 더 이상 신전을 지을 나무도 가족을 부양할 식량도 구할 수 없었다.


거대한 모아이를 만들었던 문명은 몰락했고, 모아이 상도 폐허로 버려졌다. 이스터 섬은 닫힌생태계에서 자원 남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증명하는 사례로 남았다.


가끔은 '왜'라고 물어보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떠났어요? 취직하기도 어렵다는 데, 좋은 직장인데 말이죠."

그는 대답했다.


행복하지 않아서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가슴 한편에 쌓아 둔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는 것을. 모든 게 부족하고 불편한 라오스의 삶이 우리나라에서의 삶보다 편할리 없지만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라는 물음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모아이 상을 세우기로 했고, 나무를 베어 돌을 나르며 우리들만의 신전을 짓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청춘들은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는 무엇이 변했나, 라는 질문을 또다시 던진다. 이미 변해버린 것들에 대해 언제 변할 지를 묻는다.



이스터섬 Ahu Tongariki에 있는 15개의 모아이상, 1990년에 발굴되었다.


나와 함께 사무실을 섰던 여의사 선생님은 지금 남극 탐사선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화공과를 나온 프로그래머는 여전히 세계를 여행 중이다.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들과 에콰도르 미녀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이스터 섬,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섬을 보면서 거대한 나무가 울창했던 숲을 그려보고 싶어서다. 그곳에서는 우리 삶을 되돌아 보며 '왜'라고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 사진출처 :  Wikipedia - Easter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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