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을 보면서 가을의 누런 들판을 떠올리려면 상상력이 좀 필요합니다. 불과 서너 주의 여린 모를 내었을 뿐인데, 어떻게 가을에 그렇게 풍성한 수확으로 돌려줄까!
수 십 년을 봤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합니다.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은 농사를 가장 수지맞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한해 고생하면 50배를 돌려받는 데 어떤 사업이 그만큼 수익성이 높으냐고. 굳이 자본투자와 노동투입을 모두 비교해봤을 때 과연 그럴까라고 따질 필요까지는 없겠죠. (요즘은 100배 정도로 돌아옵니다.)
모내기를 하고 4-5개월을 자라면 수확을 합니다. 다른 여느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벼도 여러 성장단계를 거칩니다. 가장 중요한 식물이다 보니 단계별로 꼼꼼히 분류해놓았습니다.
벼 이앙재배에서 볍씨를 파종하여 모내기 전까지 육묘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볍씨를 직접 논에 뿌리는 직파재배는 묘대기가 없습니다.
모내기 후 처음은 끊어진 뿌리가 무논 속에 자리 잡는 시기입니다. 착근이 되면 바로 분얼이 시작된다.
뿌리가 땅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자라면 바로 성장을 시작합니다. 이와 동시에 벼의 줄기 수도 늘어납니다. 벼의 성장과 분얼은 이삭이 패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이 기간을 벼의 영양생장기라고 부릅니다. 모내기 후 한 달 반 정도가 이 기간에 해당합니다.
작물재배학적으로는 이 분얼기를 또 두 단계로 더 나누기도 합니다. 유효분얼기와 무효분얼기로 말이죠. 유효분얼기는 새로 만들어진 줄기에 벼 이삭이 맺히는 걸 이야기하고, 무효분얼기는 분얼경이라 불리는 줄기는 만들어지지만 너무 늦게 만들어져 이삭을 수확을 하지는 못하는 걸 말합니다. 한마디로 무효분얼은 밥만 축내는 샘이죠. 농업적으로는 이걸 어떻게 조절하느냐도 큰 관심사입니다.
이제 충분히 자랐으면 가장 중요한 일을 할 때입니다. 자손, 즉 이삭을 만들 때입니다.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벼 줄기 속에서 시작됩니다(유수형성기 幼穗形成期). 이삭이 만들어지면 이제는 꽃눈이 만들어지겠죠.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감수분열이 일어나면서 이제 바깥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수잉기 穗孕期).
유수형성기와 수잉기를 합쳐 신장기라고 합니다. 어린이삭이 줄기 속에서 분화되어 이삭이 패기 직전까지의 기간으로 줄기의 마디 사이가 신장, 즉 길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이 한 달 정도 소요됩니다.
이제 이삭이 자라면서 밖으로 드러납니다. 벼는 출수와 거의 동시에 꽃이 피고 또 바로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바람에 의해서 말이죠.
수정이 이루어지면 벼는 더 이상 성장을 멈추고 모든 에너지를 볍씨 속을 채우는 데 사용합니다.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포도당을 이어 붙여서 전분의 형태로 볍씨로 보냅니다. 볍씨 속에는 전분액의 농도가 차츰 짙어지면서 색이 변해가고, 마지막에는 수분이 마르면서 벼가 익습니다. 이 기간이 또 한 달 반 정도 소요됩니다.
결실기를 벼 알의 성숙단계에 따라 유숙기, 호숙기, 황숙기, 완숙 및 고숙기로 구분합니다. 추수는 대개 완숙기에 합니다.
농번기 농부들의 일상은 벼의 성장 주기에 맞추어 물을 대고, 비료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해충을 방제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자격을 부여받게 됩니다. 벼농사가 6천 년 전에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농부들의 일상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까지는 말이죠.
개략적으로 벼의 일생을 소개했습니다만, 제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몇 개 찾아보는데, 이해하기가 꽤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농민의 수는 불과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도시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니 말이죠.
모내기한 파릇한 논이나, 누런 황금색 들판이 달라 보였으면 하고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