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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Oct 03. 2021

경로의존성과 혁신의 어려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TV 강의나 토론, 학생들의 에세이, 논문 등에서 너무 자주 사용되어서 또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설명하면....


"어떤 이유로 한 번 경로가 정해지만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

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고 사례를 좀 들어보면.... 쿼티(Qwerty) 자판과 드로락(Dvorak) 자판도 인용되지만, 대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극적인 효과와 관심을 끄는데 이만한 게 없습니다.


“20세기에 우주탐사를 위해 발사된 로켓의 크기는 로마시대 전차의 크기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리고 설명이 이어집니다.


"로켓의 구성품은 철도를 이용해서 발사장으로 옮겨졌는데, 그 철도는 중간중간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터널을 새로 만들지는 못했으므로 로켓의 크기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철로의 크기는 어떻게 정해졌을까요?


이건 증기기관이 만들어진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웨건(Wagon)의 트랙폭(1,435mm)에 맞추어 증기기관차의 폭을 정했습니다. 그 웨건은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표준 궤간을 따랐습니다.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의 폭입니다. 말 두 마리의 궁둥이 크기였죠. 결국 "20세기의 첨단 과학기술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경로에서 제약을 받았다", 이런 스토리가 됩니다.


이 이야길 왜 하느냐 하면 우리 농업 역시 이 경로의존성에서 강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산업일수록 더한 경향이 있습니다.


“외국은 저러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밖에 못합니까? 저렇게 합시다.” 이런 주장을 현장에서 많이 맞닥뜨립니다. 그런데 경험상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죠. 이 둘 중에 뭐가 더 어려울 것 같습니까?


“1)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일, 2) 제스프리처럼 작동하는 품목별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


둘 다 쉬운 일은 아니죠.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일은 어찌 보면 곧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의 제스프리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곧 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사실 우리 농업을 돌아보면 농민이 국민의 80~90%가 넘던 시절에 만들어진 인식이 그대로 지배하는 듯합니다. 지금은 5%가 채 안 됩니다. 앞으로 다른 선진국들처럼 2% 이하로 줄어들지도 모르죠. 그 시절에는 유효한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조건인 데도 그 당시에 유효한 주장을 요즘에도 자주 마주칩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역사가 짧아서 대부분의 산업이 이제부터 경로의존성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경로의존성을 탈피할 수 있는 파괴적 혁신은 말처럼 쉬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농업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과거의 경로로부터 자유롭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강한 “경자유전”의 원칙이 그렇죠. 요즘은 “농지농용”이라는 원칙을 제안하기도 합니다만, 토지의 소유 구조는 농업의 모든 구조를 결정하는 인자라는 데 별다른 이견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농민”이라는 정의 역시 비슷합니다. 돼지 1 만두를 키우는 농업법인 대표도 농민이고, 5백 평의 밭을 가진 촌로도 농민입니다. 그런데 이 둘을 경제적인 목적에서 같은 그룹으로 묶는 게 별로 타당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농업은 분화했는데, 우리의 개념은 여전히 과거의 경로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6차산업이나 치유농업으로 옮겨가면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해집니다. 요즘은 유통을 겸하거나, 수직계열화 농장, 영농조합법인, 농업법인, 국내법인 또는 외국법인의 계약재배농장 등으로 더 복잡해졌죠.


그럼 경로의존성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과거의 역사는 혁신에 어려움을 초래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 말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발간한 한 논문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헬스케어 시스템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국의 NHS는 굼뜨기로 유명하죠.


“때때로 우리는 큰 변화를 관찰합니다. 왜일까요?  연결된 구조의 상호작용을 발전시킴으로써 경로의존성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큰 혁신이 이루어지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논문의 초록에 있는 한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사실 이게 무슨 말인지 어렵기는 합니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결된 구조”와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개 벤치마크를 통한 현상의 복제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면 OO자조금 같은 것이죠. 이게 제스프리의 개념도 참고를 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다르게 운영됩니다. 이외에도 많죠. OOOO, OOOOOO 등등.


현상의 복제보다는 경로의존성을 벗어나기 위한 연결된 구조와 상호작용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이 현장에서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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