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견제를 넘어선 역전 드라마
2019년 일본이 반도체 원료에 대해 수출 금지했을 때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큰 타격이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비교적 잘 극복을 했다. 이 비슷한 일이 농업에도 있었다. 딸기 품종 전쟁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일본에서 육성된 품종이 거의 90%를 넘었다. 그 중심에는 ‘레드펄(육보)’과 ‘아키히메(장희)’가 있었다. 한때는 두 품종만 우리나라 딸기 재배 품종의 거의 80%에 달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산 품종 점유율이 96%에 달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딸기는 원래 봄에 출하되는 작물이었다. 노지 딸기가 재배되던 시기를 지나 논산에서 하우스 딸기가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품종이 함께 들어왔다. 하우스 딸기는 휴면을 깨는 촉성재배 기술이 필요한데 일본 품종이 이런 목적에 적합했다. 일본 품종의 도입과 함께 봄 딸기는 겨울딸기로 철이 바뀌었다. 일본 육종가에 의해 개발된 ‘레드펄’과 ‘아키히메'가 우리나라 딸기시장을 지배했다. 이 시대는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UPOV(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의 등장이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UPOV에 가입하면서 우리 농가가 사용하는 딸기 모종에 대한 로열티를 지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는 농가에서 재배되는 딸기의 65% 정도가 무단으로 증식되어 사용될 때였다. 일본 정부의 요청이 관철되면 농가가 부담할 로열티는 36억 원에 달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딸기 개체당 5~10원의 로열티를 요구했는데,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수백억 원의 로열티를 매년 일본에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농촌진흥청과 지방의 농업연구기관들은 본격적으로 딸기 품종 개발에 나서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농업연구소에서는 로열티를 얼마를 내야 하니 빨리 품종을 개발하자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연구비를 받기도 좋았다.
2005년 <설향>이라는 품종이 충남농업기술원(논산딸기시험장 김태일 박사)에서 개발되었다. 그와 함께 역전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쏘아졌다. 그 바탕에는 뛰어난 맛과 우수한 생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한 기사에는 설향이라는 품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현지에서 시식을 했을 때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가 좋았다. 딸기의 씨알이 굵고 과즙이 풍부했다. 솔직히 맛있었다. 이 품종의 부모세대인 아키히메(章姫)와 레드펄의 좋은 모습만 빼어닮은 딸기 품종이다. 생산 측면에서도 설향은 질병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다. 따라서 농민들로부터 "일본 품종보다 수익성이 높다"라고 호평받으면서 딸기 농가들에게 순식간에 보급됐다.
김태일 박사는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 이후 수많은 딸기 품종이 계속 개발되었지만 설향의 인기는 여전하다. 이 설향이라는 품종은 그 당시 농가에서 대부분 재배되고 있던 아키히메와 레드펄을 교배해서 만들어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의 품종을 가져가서 만들었다고 비난("일본 딸기 × 일본 딸기 = 한국 딸기")을 한다. 하지만 이게 딱히 법적인 문제는 없고 원래 품종 개발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2010년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되면서 조금은 달라졌다. (이 부분은 조금 복잡한데 여기서 설명할 건 아니고...)
2005년 대부분 일본 품종이 재배되던 딸기는 설향이 개발된 후 불과 5년 만에 국산 품종이 61%까지 점유한다. 그리고 2019년에는 96%까지 늘어났다. 싼타, 죽향, 베리스타, 킹스베리, 아리향 등 수많은 품종이 연이어서 개발되면서 국내 딸기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 논산딸기시험장은 1994년에 지역특화작목시험장의 하나로 출범했다. 당시 WTO에 가입하면서 지역 특산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특화작목시험장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매년 몇백 명씩 연구 및 지도직을 공채하던 황금기이기도 했다.
2018년에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다. 동계올림픽 컬링 종목에 참여한 일본 대표단은 동메달을 획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의성군 출신 "영미"팀이 선전을 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던 시기이다. 그때 일본 선수는 컬링 게임 중 휴식시간에 딸기를 맛있게 먹는 게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딸기가 놀랄 만큼 맛있다"는 말을 했다.
이 방송을 본 농림수산성 장관 사이토 겐은 "선수들이 하프타임 때 한국산이 아닌 일본산 딸기를 먹었다면 더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며 언짢아한 게 또 신문에 소개됐다. 이어서 한국의 품종은 모두 일본산 품종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한국이 딸기 품종을 도용해서 매년 400억 원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불평도 내보냈다. (물론 이 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2018년 채소 생산액 중 딸기가 전체 1위에 올라섰다. 겨울딸기를 재배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낮은 온도는 딸기의 생육기간을 길게 했는데 이게 당도를 올리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겨울딸기 설향의 평균 당도는 12.5 브릭스(brix)에 달한다. 딸기의 당도가 올라간 만큼 국내 딸기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2005년 6,457억 원이던 시장은 2010년 1조 원을 넘어섰고, 2018년에는 1조 3천억 원까지 성장했다. 국내 딸기의 우수한 품질과 높은 생산성은 수출로 이어졌다. 세계 26개국에 한국산 딸기가 수출되고 그 규모는 600억 원을 넘어섰다. 설향이 국내용이라면 당도는 좀 떨어지지만 저장성이 좋은 매향이 수출의 선봉에 있다. 홍콩 매장에서 매향은 여전히 싱싱하게 고객을 맡는 반면, 일본산 딸기는 긴 여행에 지친 흔적이 역력했다. 소비자들은 한국산 딸기에 손길이 먼저 갔다.
2015년 3678톤(t)에서 지난 2018년에는 4895톤으로 상승했다. 수출액 역시 신선딸기 수출은 2015년 3197만 1000달러(한화 약 387억 원)에서 지난해 5264만 7000달러(한화 약 637억 원)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현재 한국은 아시아 2위(2018년 기준)의 딸기 수출국이며, 세계 순위 7위(1위는 중국)로 우뚝 섰다. 수출국가는 지난 2015년 19개국에서 지난해 26개국으로 늘었다.(Real Foods)
연도별 딸기 생산 및 수출동향(KATI)
일본산 딸기는 한국산에 비해 가격은 2~3배 비싸지만 시장에서 평가는 호의적이지 달랐다. 한국산 딸기는 가격 경쟁력도 있으면서 맛과 품질도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수출시장에서 강세를 띠고 있다. 딸기의 주 수출시장은 홍콩과 싱가포르이다.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다음을 잇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에서 온 달콤한 딸기향에 빠져들었다.
딸기가 된다면 다른 농산물이라고 안 될 이유가 있을까!
딸기뿐만 아니라 포도에서도 일본 품종이 한국에서 대박을 내는 경우가 생겼다. 바로 샤인머스캣이다. 한국에서는 샤인머스캣이 수출 주력으로 등장했고, 중국 내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은 일본의 40배를 넘어간다. 일본산 와규는 호주에서 개량되어 전 세계로 수출된다. 일본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한국을 연구하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육종가들은 해외 진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을 벤치마크하고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고려하면서 품종을 육종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품종만 제공하기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일본 품종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산업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모두 한국이 쓰던 수출전략이다.
일본의 품종 개발 역량은 여전하기 때문에 언제든 시장에서 역전할 역량은 충분하다. 최근에는 하얀색 딸기가 출하되어 주목을 끌었고, 딸기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적극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종자, 종묘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개정법률안을 최근에 시행( 2021년 4월)하면서 품종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게 왜 그런지는 또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우리가 일본에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중국과 동남아에서 따라 시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좀 더 영리하게 대응하고 있다. 초기단계부터 라이선스를 통해서 현지에서 생산하는데 오히려 적극적이다. 여기에는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품종보호의 취약성을 역으로 한국산 과채류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 품종을 동남아로 가져가면 재배 시기가 서로 달라 출하시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해외 생산전략은 시장에서 한국산 딸기가 마치 오랜 기간 동안 출하되는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오히려 증가하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마트팜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차세대 청년농업인 육성정책이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나라의 딸기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만들 것이다. 딸기가 달콤한 한 한국 딸기의 무림쟁패 스토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참고 및 인용문헌
(1) 国をあげてイチゴを盗む韓国
(2) ‘한국산 딸기, 넌 다 계획이 있구나’…달콤한 두 가지 성장(Real Foods)
(3) 韓国にイチゴ品種を持ち出され日本は220億円損失 種苗法改正を巡る問題
(4) 딸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주요 딸기 품종 총정리 (더농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