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낭만에 대하여...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노래 가삿말 때문에 유명해진 도라지 위스키에는 도라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단 한 방울도!
그런데 왜 도라지 위스키가 되었을까?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 미군이 들고 온 위스키는 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삼시세끼 먹기도 힘든 시절에 위스키가 웬 말인가? 양조장에서는 주정(酒精)에 향료와 색소를 섞어 위스키(?)를 만들었다.
그때 (가짜) 위스키(기타 주류에 해당)를 만들었던 양조장에서는 그 명칭을 그 당시 유행하던 일본 선토리(Suntory) 사의 토리스(Torys)로 지었다. 선토리는 교토에서 멀지 않은 야마자키라 지역에 아주 큰 증류주 제조공장과 오크통 저장고를 가진 유명한 위스키 제조 회사이다. 아무래도 베끼기가 너무 노골적이었는지, 항의를 좀 받았던 모양이었다. 이름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고민했다. 그때 비슷한 모양의 스펠링으로 바꾸었는데, 그게 도라지(Torage)였다. 제일 왼쪽의 상표와 비교를 해보면 얼마나 유사한지 알 수 있다.
도라지 위스키는 1956년 부산 국제양조장에서 처음 만들었다. 알코올 함량은 45도로 위스키처럼 독했다. 병을 제조할 기술은 없어서 소주병을 그냥 사용했다. 그러나 위스키라 불렀지만 위스키 근처에도 못 갔던 술이었다. 그 아류가 여럿 만들어졌는데, 나이아가라, 세븐 쓰리, 쓰리 펜, 쌍마, 삼성, …
지금 도라지 위스키는 서귀포에 있는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딱 한병 보관하고 있다. 민간 수집가들은 더러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지금은 세종시 다른 기관에 임대되어 전시되고 있어서 직접 보지는 못하고 도감에서 사진으로만 봤다.
그런데 도라지 위스키는 왜 옛날식 다방에 앉아서 마셨을까?
위티, 위스키 티(tea)가 1960년대에는 유행이었다고 한다. 다방에서 팔았는 데, 홍차에 위스키 한 방울을 넣어서 상큼한 맛을 내는 음료였다. 값이 홍차보다 비샀으니 다방에서는 마담이 판촉에 열심이었을 테고, 손님들은 폼 잡기 좋았던 음료였다고 한다.
옛날식 다방들은 약간 꼼수를 부려 홍차에 타던 위스키가 위스키에 홍차를 타는 식으로 또 발전하지 않았을까?
이 사진을 SNS에 올리자 여러 선배들이 위티의 추억을 떠올렸다. 최백호 선생님 역시 위티를 마신 마지막 세대였다고... 지금 이 시절에 도라지 위스키를 떠올리는 건, 아마도 그 술맛보다는 젊었던 시절의 추억이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청춘의 낭만이 아니었을까!
* 주정 : 발효주를 증류하여 알코올(ethanol) 농도가 95%로 만든 제품. 희석식 소주는 이 주정을 희석하여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