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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13. 2016

사람들은 라오스에서 무엇을 보는가

카페 노마드

약간 길을 돌아가더라도 노마드(nomad)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잔 하고 가는 것을 좋아했다. 특색 없는 라오 커피를 어떻게 블렌딩 해야 하고 어떻게 볶아야 하는지를 아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도였던 청년은 라오스에서 봉사단원으로 시작해서 코이카의 관리원, 그리고 지금은 카페 주인으로 이곳 라오스에 자리 잡았다. 한국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도 있는 나름 유명 인사다. 가끔은 한국에서 온 출장단이 주최하는 회의에서 마주칠 때도 있다. 어려운 용어나 개념도 건너 띄지 않고 라오스적인 언어로 잘 전달하는 통역사이기도 하다. 때로는 라오스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그 뜻을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적인 개념과 라오스적인 언어가 만들어 내는 문명의 충돌 같은 느낌이었다.


아메리카노를 사러 가서 가끔 실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다 듣기에는 적당치 않은 뜬금없는 소리다.

라오스의 삶이 행복하세요? 왜 라오스에 정착하기로 했죠?


순간 황당한 표정이 왼쪽 입꼬리에서 오른쪽 입꼬리로 스쳐 지나가면서 당황스러운 미소가 얼굴에 드러난다. 이내 기분 좋은 웃음으로 답한다. 

커피 뭐 드시겠어요?  


노마드 카페는 아침 7:30분에 문을 연다. 따뜻한 바게트, 계란 두 개를 납작한 프라이팬에 가득 차도록 고르게 편 프라이, 버터 한 조각과 찐한 아메리카노, 그리고 컵에 물기가 방울방울 맺혀 있는 시원한 오렌지 주스로 하루를 시작할 때면 여기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찍 문을 닫는다. 평일은 오후 7시, 주말은 6시. 왜 그렇게 일찍 문을 닫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가 하루 종일 일하며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라오스에 있지 않는다는 것은 알기 때문이다.



"K 팝스타"에서 정승환이 부른 노랫말 중에 “너는 아직도 정말~ 행복하니”라는 부분을 자주 되뇌었다. 혼자 살게 된 중년의 궁상이지만, 가끔은 사는 게 뭔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라오스에 사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는 약간 느릿한 말투로 대답한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죽자 살자 하지 않아서 좋다. 없으면 없는 데로 있으면 있는 데로 행복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도 예전엔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바로 엊그제 같은 데....  그게 다랭이 마을에는 있을지, 한드미 마을에는 있을지, 청산도에는 있을지. 요즈음 뉴스를 보면 이미 사라져버린 샹그릴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라오스에 왔을 때는 더운 날씨가 싫었고, 느긋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싫었고, 밋밋한 풍경이 싫었고, 짝퉁 개선문 싫었고, 쉐다곤 파고다에 비해 너무나 왜소한 탓 루앙이 싫었고, 이런 것들을 보고 “라오스가 너무 좋아요”라는 한국 관광객들이 싫었다. 조정래의 <정글만리>에서 중국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뇌까리는 “런꿔다오다이”, 크라잉넛이 울부짖는 “사람이 너무 많은 차이나”처럼 관광지를 지나갈 때마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아, 여기가 라오스야 한국이야”라며 불평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는 그 사람들이 라오스에서 무엇을 보고 갔는지 알 것 같다. 노마드 카페의 정상현 사장이 보았던 것이었을 테고, 아마도 공지영 작가가 지리산에서 보았던 것 일 테고,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으면서 내가 그렸던 삶이었을게다. 그 삶이 겨우 보이기 시작했을 때, 라오스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라오스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엄청난 부자다. 가진 게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런데 행복의 시간은 라오스에만 멈춰있는 것 같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가진 삶에 대한 불안감은 더 가진다고 해소되진 않을 텐데... 우리도 라오스 사람들처럼 느린 시간을 살 수도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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