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로 산다는 것
과학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늦은 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밤 10시, 11시가 넘어 아무도 없는 연구소 문을 나설 때 마시던 시원하던 밤공기의 마력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오늘도 뭔가를 해냈다는 나 스스로의 위안을 원기 삼아 늦은 밤길을 재촉한다. 그리고 내일이 밝아 오길 밤새워 기다리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과학의 길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립다. 과학자로 산다는 것, 오늘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리부리 박사라는 어린이 프로가 있었다. 사실 제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부리부리 박사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흰가운에 아인슈타인 같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고 어린이 주인공에 비해 약간 더 순진해 보였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과학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또 하나의 어린이 프로는 마징가 Z 였다. 거기에 등장하는 김박사- 나중에야 이게 일본 만화라는 것을 알았지만 - 는 광자력 연구소의 대장으로 마징가 Z라는 거대한 로봇을 고치고 개조한다. 어렸을 적에는 모든 과학자들이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과학자 되고 싶었다.
결국 나는 과학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내가 과학자가 맞기는 했는지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내가 어릴 적 상상하던 과학자(부리부리 박사)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자로서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1. 과학자는 청소부이다. 과학자가 된 이후 나는 매일 같이 실험실 청소와 초자기구를 닦는 사람이었다. 하루의 일과는 실험실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좋은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만 했다. 나는 날마다 청소를 했고, 청소의 달인이 되었다. 성격까지도 까탈스럽고 쫀쫀하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2.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들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매일 새로운 일을 할 것이라는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흙의 무게를 다는 일만 일주일 내내 하다 보면 나중에는 달인 프로에 나갈 정도의 수준이 된다. 한 스푼을 떠서 1g의 무게에서 1/100 수준까지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가끔은 내가 초능력자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당시에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었다면 출연했을지도 모르겠다.
3, 과학자는 수도승이다. 과학자가 어려운 점은 이런 일들을 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육체노동이면 그나마 쉽지만 계속 새로운 정보를 찾고 분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밤에 일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일찍 퇴근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런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수도승이 되는 수밖에 없다. 다른 것에 관심을 꺼야만 이런 삶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과학자 치고 '월화수목금금금'이 아닌 과학자가 얼마나 있을까?
4. 과학자는 피곤한 직업이다. 기능이 필요한 직업은 시간이 지나 숙련되면 쉬워지지만 과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탐구해야만 한다. 연구과제는 계속 변해간다. 숙련이란 존재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분야를 찾고 공부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힘에 부치는 걸 느낀다.
5. 어느 정도 고참이 되어가면 젊은 사무관들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 과학보다 더 중요하단 걸 깨닫기 시작한다. 과학 수 십 년 해 봐야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연구비를 따기 위해 제안서를 쓰고, 사업예산을 담당하는 사무관들에게 찾아가 설명하는 일들이 반복된다. 도대체 과학은 과학자가 하는 건지 행정가가 하는 건지 헷갈린다.
이런 삶을 살다 보면 과학자란 작업에 회의가 든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내가 결코 부리부리 박사처럼 되지는 못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생활인이 되어있다. 이제는 후배들과 연구비를 다투는 경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노안이 온 눈을 가늘게 뜨고 안경을 벗으며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데 이게 예전처럼 재밌지도 신나지도 않는다. 과학에 회의가 몰려온다. 팔을 뻗어 눈을 찌푸리며 책과 논문과 씨름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전 세계의 연구 동향을 파악해야만 한다. 그런 과학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정말 고단한 인생이다. 평온하지만 치열한 인생이다. 한겨레의 기사처럼 자부심으로 시작했지만 한계를 느끼며 좌절한다.
과학자도 그저 생활인 일뿐이다. '월화수목금금금'하면서 일해야만 하는. 고상한 성직자도 진리를 탐구하는 철인도 아니고. 연구비를 따기 위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좋은 학회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노력하는, 그저 과학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길을 떠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비즈니스맨이 세상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많은 어린이들은 부리부리 박사의 꿈을 꾼다. 그렇지만 많은 새내기 과학자들은 비정규직이나 면해보는 게 꿈이다. 언젠가는 좋은 논문을 쓸 거야라는 꿈을 가지고, 현실에서는 총잡이라 불리며 자동 피펫을 열심히 펌프질하고 있을 것이다. NSC에 논문이라도 하나 실어 대학에 자리라도 잡기를 꿈꾸면서, 과학자의 길을 떠나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몸부림친다. 오늘도 고속도로엔 행정가들에게 고개를 숙이면 연구비를 따기 위해 길을 떠나는 고참 과학자들의 차량 행렬이 있을 것이다. 제비 새끼처럼 많고 많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왜 과학을 하느냐는 물음에 한 젊은 과학자는 "저는 거기서 자유를 발견했으니까요.”라는 답을 했다. 나는 과학에서 자유를 발견했었던가? 아마도 내가 밤늦은 귀가 시간에 느꼈던 그 시원한 바람이 바로 그 자유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도로서 계속 삶을 이어가는 사람은 아마 이 대답을 한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딱히 정해진 게 없고 진짜 제가 하고 싶어서, 그냥 이유가 없고 그냥 진짜 뭐 왜 하는지라고 이유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네 그냥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거고요.” 과학자는 똑똑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너무 똑똑하면 과학자로 남아 있기 힘들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때가 좋았다 싶을 때도 있다. 그때의 삶이 좀 비루하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자유로웠다. 젊은 과학도이던 동안은 최소한 그랬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의 "열정과 밥벌이 사이…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25795.html)를 읽다가 예전에 과학자로 살아갈 때를 회상하며 쓴 넋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