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May 18. 2016

평행우주론의 시작을 알린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인류는 모두 장님이었다. 케플러에 의해 인류는 처음으로 한 눈을 뜨게 되었고 뉴튼에 의해 인류는 비로소 두 눈을 다 뜨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말이다. 1687년 뉴튼에 의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이름으로 '만유인력 이론'이 발표되고 난 후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과학 지식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단순한 수식으로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데 사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뉴튼 물리학은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주요한 사조로 자리 잡았다.


천체의 운동을 예측하던 공고한 자연법칙은 새롭게 움트기 시작한 양자 영역에서는 별로 유용하지 않았다.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관측자의 관측활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양자의 위치를 계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슈뢰딩거는 양자의 위치를 계산하는 파동 방정식에 확률 모형을 도입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과학적 사고 체계를 도입했다. 간결한 인과법칙은 무너져 내렸고, 우리의 운명을 가르는 법칙은 확률에 맡겨졌다.


하지만 이런 기괴한 상황을 과학자 대부분은 원치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현상을 확률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게 무척이나 괴로웠고, 또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과도 거리가 멀었다. 이에 슈뢰딩거 박사는 확률 모형을 피해가기 위해 다음의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살아있는 고양이인가?

상자 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가 갇혀 있고, 그 상자 안에는 독가스가 들어 있는 병이 있다. 병은 마개로 막혀 있고 병 근처에는 망치가 세팅되어 있다. 이 망치는 가이거 계수기와 연결되어 있어서 가이거 계수기가 작동하면 망치가 병을 내리쳐 독가스가 흘러나와 고양이를 죽인다. 가이거 계수기 옆에는 우라늄 조각이 놓여 있다.


우라늄 조각의 붕괴는 순전히 양자적 사건이므로 언제 붕괴할지 예측할 방법은 없다. 일단, 우라늄 원자가 10초 이내에 붕괴할 확률을 50%라고 가정하자. 우라늄 원자가 붕괴를 일으키면 상자의 작동원리에 따라 고양이는 죽게 된다. 이런 조건 하에서 상자의 뚜껑을 닿아 놓았다면 10초 후의 고양이 상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사고실험 - 상자안의 고양이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상자의 뚜껑을 열기 전에는 고양이의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의 상태를 서술하려면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를 서술하는 파동 함수를 도입하여 "50%는 살아 있고, 50%는 죽어 있는" 기괴한 상태를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이제 상자의 뚜껑을 열어 관측자가 상자 내부를 들여다본다. 즉, 관측이 행해지면 고양이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 함수는 하나로 붕괴되어 살아 있는(또는 죽어 있는) 고양이만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슈뢰딩거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상자를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양이가 살거나 죽은 것은 우리가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인가?


아인슈타인 역시 이런 상황이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인슈타인은 되뇌었다.


신은 주사위로 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이에 닐스 보어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제발 신 타령 좀 그만해라. 우리는 신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뉴튼 역학 시대에서 양자역학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한편이 되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한편이 되어 물리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세기의 과학자들 간 논쟁이었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과학자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사고 실험으로 오랫동안 과학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고양이'의 생존확률을 놓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논쟁은 훗날 우라늄 원자핵의 분열 확률에 대한 논의로 바뀌면서 순수했던 물리학은 세속의 권력 다툼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갔고, 이러한 확률 논쟁은 순간이동과 평행우주 등 수많은 물리이론이 태동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많은 드라마(예: 닥터진, 스타트랙)와 영화(예: 역전에 산다-하지원 주연, 더원-이연걸 주연)의 모티브가 되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2009년 수원에서 체포된 연쇄 살인범의 인터넷 블로그명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어서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 표제부의 사진은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컨퍼런스의 참가자 사진이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등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Wikipedia -quantum mechanic에서 인용.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 물통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