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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16. 2016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독이다

위해성은 독성이 아니라 양의 문제이다.

대학교 3학년, 군에서 제대하고 막 복학을 했을 때 "효소학"이라는 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그 당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을 읽고 감명을 받은 때여서 생화학자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할 때였다. 강의 첫날, 담당 교수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독이다.


이런, 오늘 아침에도 독을 먹었는데 어떻게 지금 이 강의를 듣고 있다는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교수님의 말씀이니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이 말을 이해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당시에는 몸에 좋다고 이것저것 함부로 먹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했다. "밥과 같이 익숙한 것은 좀 쉽게 소화하고 기능성 식품은 좀 더 어려운 해독 과정을 거쳐야 할 뿐이다." 효소학 선생님 다운 설명이었다.


우리가 동물이든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같은 분자구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생명은 같은 DNA 구조, 같은 아미노산 구조, 같은 탄수화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벽돌을 사용하여 집을 지은 것이다. 그러니 다리가 둘이든 넷이든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먹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벽돌을 그대로 흡수할 수는 없다. 모두 잘게 부수어 모래로 만든 후 재사용한다. 그 뿐만 아니다. 어떤 생물도 우리가 먹기 좋게 스스로를 내어줄 의도로 진화하지는 않았다.


결국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먹이에 알맞게 스스로 진화하거나, 그 먹이를 인간에게 맞게 개량하는 수밖에 없다. 생물은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스스로를 방어하는 기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수억 년의 진화에서 살아남은 이유이다.  


미생물학을 배우면서는 또 다른 가르침을 얻었다.


발효와 부패는 근본적으로 같다. 단지 인간에게 이로우면 발효이고, 해로우면 부패이다.


같은 반응에 대해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서로 다른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퇴비를 만들 때 고약한 냄새가 나도 우린 "퇴비 발효"라고 부르지 "퇴비 부패"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도하는 제품을 만드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화학물질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작물에 사용되면 농약이고, 사람에게 사용되면 의약품이 된다. 이런 용어들은 비전공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이후 환경독성학을 공부하면서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도하지 않는 반응이나 기대하지 못한 변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통계적 유의성에서 변이를 걸러내고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공룡을 만드는 꿈을 포기하고 좀 더 쉽게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화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환경독성학을 한동안 연구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물질의 위해성은 정량(quantity)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걸 정성(quality)의 문제로 인식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단언컨대, 정량의 문제를 정성의 문제로 오인하게 하는 사람들은 사이비이거나 악의를 가진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지간한 문제는 정성의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양의 문제를 존재론의 문제로 치환한다. 이게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소금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필수 영양소지만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항생제는 조금만 과하게 먹으면 생명을 위협하지만, 적당한 농도에서는 병원균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구한다. 별로 대단한 원리도 아니다. 우리 몸은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어 항생제의 공격에서 병원균보다 좀 더 오래 살아남는다.

설탕을 비만의 원흉으로 지적하지만, 어릴 때 몸이 아플 때 흑설탕을 끓여 먹었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요즈음은 몸이 허약해지면 포도당 주사를 맞는다. 포도당이란 게 설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류이다. 비만의 원인이 되느냐 아니면 몸의 에너지가 되느냐는 결국 양의 문제이다. 설탕이 좋은냐 나쁘냐라는 관점은 지극히 인간적인 편견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어떨까.


이 역시 과학적으로는 환경독성을 다루는 정량의 문제이다. 정량의 문제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것은 공기와 물이다. 가장 많이 섭취하는 매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두 가지는 매우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환경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도 물과 공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 인자는 노출되는 시간의 문제이다. 짧은 시간 동안의 노출은 독성이 크지 않을 경우 거의 영향이 없다. 쉽게 회복된다. 그런데 독성이 낮더라도 장기간 노출되면 대부분은 문제가 발생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물질은 독성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만 우리 몸이 적응할 수 있다. 하물며 다른 생물을 죽이는 살균제나 살충제는 인간에게도 상대적으로 강한 독성을 나타낼 것이란 건 자명하다. 독성이 없는 물질은 없기 때문이다. 일부 물질이 상대적으로 독성이 더 적을 뿐이다. 모든 물질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견딜만하다.


모든 생물은 같은 벽돌로 만들어진 서로 다른 집과 같다. 다른 생물이 살기 어려우면 인간도 살기 어렵다.

독성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일일 섭취한계량(TDI)이다. 같은 물질이라도 물에서의 허용기준과 후춧가루에서의 허용기준이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가 먹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물이나 공기에서 유해물질의 농도는 훨씬 더 낮아야 한다. 물질의 독성 자체도 중요하지만 노출되는 양에 따라 허용기준이 달라진다.  그러니 화학물질의 용도가 달라지면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독성을 평가하는 전제가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독성이 낮은 물질일 경우 특수한 작업환경에서 단기간의 노출은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출은 낮은 독성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미세한 석탄가루는 그 자체로는 독성이 거의 없다. 약간은 먹거나 마셔도 건강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갔을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광부들에게 만성적인 직업병인 진폐증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물질은 독성의 세기와 무관하게 노출시간과 노출부위에 따라 전혀 다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위(stomach)는 원래가 외부 물질을 소화하기 위한 기관으로 내성이 크고, 피부는 우주복처럼 방어력이 뛰어나지만 폐는 그렇지 않다. 미세먼지처럼 그 자체로는 독성이 없는 물질도 호흡기로 들어가면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


제약회사가 만든 약품은 독성이 강하므로 약사가 관리한다. 그걸 밥에 타서 끼니때마다 먹으면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와 유사한 오용에 해당한다. 뭐가 잘못됐을까?


첫 번째는 정부의 관리 책임이다. 아마도 그 당시의 제도는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가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균제를 물에 타서 증기로 뿌린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제도의 틈을 비집고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화학물질의 용도가 달라지면 독성평가를 다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습기 살균제에 농약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농약(요즘은 작물보호제라고 불린다)은 농작물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농약이 위험한가? 위험한 물질이다. 농약을 사용한 농작물은 위험한가? 그렇지 않다. 엄격하게 관리되는 농약의 사용은 위험하지 않다. 사용했냐의 여부를 따지는 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작물에 남아 있느냐는 정량의 문제이다. 그렇더라도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있다. 이건 위해성보다는 선택의 문제이다.
둘째는 이 제품을 만든 사람들이다. 화학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니 환경독성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옥시 이후에도 여러 기업들이 만들었다는데, 이것도 놀랍다. 내부에서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셋째는 문제를 발견하고도 해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기에 이상 증상이 있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 충분히 의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부분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1년 이후의 해결 과정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충분히 의심할만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행한 시도를 보면 도덕적 해이가 엿보인다.


효소학을 가르친 교수님은 샴푸를 쓰지 않고 비누를 사용한다고 했다. 비누의 계면활성제가 좀 더 인간의 피부를 구성하는 조직의 구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고기는 먹지만 한두 점 이상 과하게 드시지 않으셨다. 단백질을 소화하는 데 드는 품이 탄수화물보다 더 크다는 게 이유였다. 분자 수준에서 해독 메커니즘이 좀 더 복잡하다. 물론 나는 그렇게까지 절제하며 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몇 가지 유의하는 것은 있다. 자동차에 향기가 나는 방향제를 쓰지 않고, 향초도 싫어한다. 3일 치 약을 받아도 증상이 나아지면 그냥 버린다. 무슨 물질이든 지속적인 노출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쪽 분야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지식 중 하나는 나무를 취사연료로 사용하는 주부들- 인도 등 개도국에 살고 있는 - 은 폐암에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나무 연기에 포함된 극미량의 탄화수소 화합물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폐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위기관리 능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라는 회의가 들었다. 정해진 매뉴얼을 벗어나는 문제에 대한 대처는 특히나 아쉬웠다. 희생이 컸던 만큼 최소한 몇 가지는 다시 집고 넘어갔으면 한다.

1. 우리가 가진 안전성 평가 시스템이 모든 것을 커버하지 못한다.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2. 위해성은 양의 문제이다. 이름이 뭐라고 불리던 섭취하는 양에 따라 약이 되고 독이 된다.
3. 물과 공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이든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
4.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을 가지고 있다. 화학물질의 용도를 변경할 때는 새로운 물질처럼 독성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5. 기본적인 과학의 원리를 중요하게 다루어야한다. 기본이 부족하면 엉뚱한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 일일섭취한계량(Tolerable Daily Intake, TDI) : 인체에 평생 노출되어도 유해영향을 나타내지 않는 1일 최대 허용 노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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