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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Oct 01. 2020

명절 아침에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feat. 내 안의 가부장제와 싸우기

아침 일찍

꿈별이 이유식을 먹이고

남편과 아이들을 시가에 보냈다.

나는 오후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냥 지금 같이 가면 되지, 왜 따로 와?"

"차례 지내기 싫어서."



커피 한 잔의 여유. 울림 사진




결혼 10년 차,

얼마 전 만 9년이 지났다.

낳지 말라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고

1년 간 발길을 끊은 걸 제외하면

그 전의 8년을

요즘 여자답지 않게,

배운 여자답지 않게!

며느리 도리라고들 여겨지는 그것들,

다 하면서 살았다.



남편이 해외 발령으로 한국에 없을 때도

명절, 제사, 시가 경조사

아이 데리고 가서 전부 참석하고 챙겼으며

별 일이 없어도

아이와 시가에서 하루씩 자고 오고 그랬다.




신혼 때 맞벌이 시절

제삿날 반차까지 내고 낮에 시가 가서 전 부쳤는데

남편은 퇴근하고 느지막이 왔다.

내 조상 아니고

남편 조상인데

왜 나는 미리 회사 일 다 해놓느라고 밤을 새우고

반차 내고 택시 타고 가서도

늦어서 죄송하다며 허리 꼬부라지게 전을 부치고

남편은 당당하게 일 다 마치고

지하철 타고 천천히 자기 본가에 오는 거지?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이유로 휴가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나는 첫째 임신 후 일을 그만뒀고,

결국 제사에도 명절에도 일찍 가서 일을 했다.



첫째 임신 중기에 추석을 맞았다.

하루 종일 전 부치느라 허리가 아파서

밤새 한숨도 못 잤는데

남편은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잘 잤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나서

평소엔 남자 어른들만 가던 선산을

다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장손 며느리가 임신을 했으니

인사를 가야 된다는 해괴한 논리였다.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잠을 못 잤다고 했지만

남편은 차에서 자라고 했다.

차 여러 대 굴릴 필요 뭐 있냐며

시부모님과 같은 차를 타고 선산으로 갔고

나는 차 안에서도 한숨도 못 잤다.



배가 나온 채로 얼굴도 모르는 남의 조상 묘에 절을 하고

처음 보는 남편의 먼 친척 어른들을 위해 커피를 타다가

손에 화상을 입었다.

어른들은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내가 손을 데었다고 해도 자리를 접지 않았다.

보온병에 딸린 컵에 물을 받아 화기를 식히면서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차에 타자 시부모님은 응급실에 사람 많을 텐데

약국에 들러 연고나 사서 바르라고 하셨다.

임신부라 연고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우겨서 응급실에 갔다.



임신 중에 진통제도 못 먹는데 아파서 어떡하냐고

내 손을 처치해주던 인턴인지, 전공의인지는

눈물을 글썽였다.

생판 남도 이렇게 안쓰러워하는데

이 집안에서 나는 뭐길래

아파도 바로 병원에도 못 가는 걸까,

현타가 왔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이를 낳고

제사고 명절이고 꼬박꼬박 챙겼다.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도 아니다.

너무 싫고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장손으로 자란 남편이 바라는 일이니까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싫어도, 옳지 않아도

참고 8년을 해왔다.




이제 나는 그런 거 안 하겠다고

제사, 차례 지내고 싶으면

네가 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오후에 가족들 다 같이 모여

같이 시간 보내고 밥 먹을 때는

가겠다고 말했다.

남편 네가 원하는 게

내가 가서 일을 하는 건지,

(지금 발목 부상 때문에 일도 못한다)

나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물었다.







어제는 우리 부모님이 기차 타고 올라오셔서

식당에서 만나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바로 또 기차를 타고 내려가셨다.

그리 멀지도 않지만

차 막히는데 아이들이랑 오가기 힘들다고

오지 말라시더니

엄마 아빠가 올라오셨다.

남편은 그 자리에 참석해서 밥만 먹어도

환대를 받고 감사 인사를 받는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처가에 가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손님 대접을 받는다.



나도 이제 손님 할 거다.

가서 환대받으며 밥만 먹고

즐겁게 이야기하다 집에 올 거다.

환대해주지 않으면

안 갈 참이다.

나야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

땡큐베리머치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내 선택이 옳다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가부장제가 자꾸 속삭이기 때문이다.

"너만 불편하면 모두가 편해."라고.

그 목소리 때문에 8년을 참았다.

나로서는 대단한 인내와 희생이었지만

남편과 시가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하려고 한다.



때로는 심리적 불편감이 너무 커
그냥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 시절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면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갈등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236쪽


너무나 공감이 갔던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를 다시 펼쳐보며

내 안의 가부장제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한다.



변화는 갈등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가진 자는 평화롭게 이미 쥔 것을 나누지 않는다.

명절 아침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갈등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나는 종노릇, 며느리 도리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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