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누군가 가장 생생한 어린 시절의 장면은? 이라는 질문을 해서, 어릴 땐 늘 심심하다고 느낄때가 많았다고 아사부사 넘어갔다.
1994년 가을
동네 오빠와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 놀러 다닌 기억이 난다. 아파트 단지 뒤쪽 화단에서, 잠자리들이 잡힐 듯 안 잡히며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투명한 날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집에 늦게 돌아간 것 같다. 멀리까지 뛰어갔으니까.
그날 엄마는 같은 아파트 아줌마들과 원으로 앉아 날 중간에 앉혀놓고 취조를 시작했다. 그들이 걱정한 건 도대체 뭐였을까? 당시 난 의혹과 의심의 눈초리, 무엇이라도 말을 기다리는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왜인지 상당히 창피하고 처음으로 (단어의 뜻은 모르지만)수치스럽다고 느꼈다.
모두가 적잖이 유난을 떨고 돌아간 뒤, 엄마는 또 나를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때리고, 난 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 망아지처럼 엉엉 울기만 했다.
저녁에, 동네 아줌마가 다시 올라와 엄마랑 수다를 떨고있었다.
나는 방문에 매달린 어린이용 그네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그 모습을 보고있다가, '죽고싶다'고 말했다. 4살이.
그 순간 엄마는 날 번쩍 안아 들어올려 바로 베란다에 날 반쯤 밖으로 내민 채 "죽어봐!어디 죽어봐!" 소리를 지르며 한참 그렇게 날 흔들어댔다. 눈물맺힌 내 눈으로는 까만 밤과 빨간 자동차 불빛, 끝이 안보이는 검은 바닥이 엄마가 날 잡고 흔들때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는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나중에도 물어보진 않았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어둠과 빛 속에서 날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날 죽이려는 사람이라니.
그 나이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마저 날 죽일 수 있다는 공포를, 그렇게 어느 때라도 내가 어딘가 반쯤 매달려서 조금만 삐끗하면 언제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한참을 그러고 나를 내려놓았고, 다시 한 잡도리가 이어지고, 아줌마의 적당히 하라는 애 잡겠다는 말이 들렸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항상 난간에 매달려있는 것 같다.
엄마는 없지만, 그냥 반쯤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날은 어느정도 발이 닿아있고, 안 좋은 날은 상체가 점점 앞으로 쏠리곤 한다.
가장 생생한 장면은, 빙빙 돌아가는 아스팔트와 자동차 불빛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