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아파트
2000년 겨울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걸스카우트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외국에서는 걸스카우트들이 귀엽게 쿠키도 팔고 하던데,
내가 본 우리 학교의 걸스카우트는 지금 생각하면 가소롭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 쪼그만 위계 사회에서 나름 잘나가는 5, 6학년 언니들이 속한 Chill한 그룹이었다. 존재의 목적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작은 사회에 속하기 위해 나는 자랑스럽게 걸스카우트가 되었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제복'을 사러 갔고, 몇 번의 걸스카우트 캠프를 갔다.
여자들만 모인 조직은 애나 어른이나 비슷해서 누가 널 찍었네, 그 언니가 너랑 친하니, 하는 숨막히는 신경전이 활동의 전부였지만 난 뒤를 봐주는(?) 6학년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무난히 지낼 수 있었다. 소소한 일화들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20년 뒤에도 어엿한 성인들이 모인 회사라는 집단에서는 그때와 똑같이 비슷한 대화가 여전히 오가는 것을 보면 가소로운 건 어쩌면 어른들이 더하면 더했지, 심지어 악랄하기까지 하니까.
아무튼 난 11살이었고 당시 우리 집 분위기는 늘상 그렇듯이 개판이었고, 엄마는 그무렵 나를 이유없이 증오하고 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지금 어떻게 표현하자면,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요구하지만 차마 자르진 못해 사무실을 빼버려 텅빈 책상을 놓고 복도에 앉아 버티는, 친했던 동료 상사 후배들도 차마 도와주진 못하고 슬슬 피해만 다니고 나에 대해 수군수군거리는, 그런 비슷한 기분이랄까.
그때 우리집은 원래 살던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하필 이사날이 내 캠프 일정과 겹쳤다. 떠날 땐 옛날 집이었는데, 돌아오면 새 집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 평범한 부모였다면 '도착할 때쯤 마중나가 있을테니...'라던가 '새 주소는 이것이니 일단 잊지 말고..' 이런 당부를 했을 텐데, 우리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난 그냥 팔랑팔랑 캠프를 떠나버렸다. 아 당시엔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이 집집마다 유선전화기나 한대씩 있을 시절이었고, 공중전화로 수신자부담전화를 거는 것도 조금 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며칠간 폭설이 내렸고, 캠프에서 단체 버스를 타고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3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눈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그런데 버스에서 내린 순간, 난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눈 쌓인 운동장엔 날 기다리는 그 누구 하나가 없었다.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조금 서있자니 눈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다들 떠나버린 운동장엔 나만 덩그러니 서있었고, 선생님들도 (외근에 얼마나 지쳤을까)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누군가 내가 오늘 도착한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내가 새 집에 대해 아는 것은, 단지에 동이 3개뿐인 아파트였고 주변은 꽤 휑했으며 그래도 청소하러 가본 적이 있어서 동 위치와 호수는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호수를 기억해낸 것도 조금 흐린 포토그래픽 메모리같은 것이어서, 확실히 믿을 수는 없었다. 별 수가 없으니 일단 내가 아는 유일한 길로, 과거의 우리집 쪽으로, 내가 출발한 그 곳으로 향했다. 눈은 종아리 반까지 푹푹 들어갈 정도로 쌓이고 눈바람은 어찌나 거센지, 난 남극의 심난한 탐험가가 된 것 같았고 전에 읽은 마젤란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참 걸어가다가, 당시 동전이 있어서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번호가 바뀌었던가 그대로였던가 아무튼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람은 해결할 수 없는 위기를 맞으면 비상한 감각을 동원하여 집에 가려는 귀소본능이 있는 것 같다. 도착지가 어딘진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아니면 바다로 떠나는 새끼연어처럼(맞나?) 나는 처음으로 혼자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정류장에서 대략 어느 방향인지 파악해서 옳은 버스를 타기까지 그런 본능적인 지능이 반짝 작동했을 것이다. 어쩌면 회사에서 유일하게 칭찬받는 점인 나의 문제 해결 능력은 어렸을 때부터 본능으로 각인된 것일지도.
버스가 운행하는 동안 눈보라는 거세졌고 난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모든 신경이 흐린 풍경에서 동이 3개 있는 아파트를 찾는 것에 집중되어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저깄다!!!!!" 익숙한 세 동이 보이고, 난 바로 벨을 누르고 주인 만난 강아지마냥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다시 눈보라 속으로 들어갔다. 신기루를 향하듯 종아리까지 퍽퍽 묻히는 눈 속을 걸어갔는데 분명 가까워보이던 집이 계속 멀어만지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파트 형상만 보고 약 3-4 정류장 앞에 먼저 내린 것인데, 2박3일 간의 생필품이 그득한 배낭을 매고 어린 탐험가는 힘겹게 오르막을 올랐다. 이상하게 춥다는 느낌도 없었고, 발이 시리지도 않았고, 배낭이 무겁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아드레날린이 폭발해서였는지, 왜 아무도 날 찾지 않는거지, 운동장에 남아 기다렸으면 누군가 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계속 발을 부지런히 옮겼다.
어찌어찌 근 45분은 눈밭을 걸어 흐린 기억을 더듬어 우리집 벨을 눌렀다. 다행히 집에는 엄마가 있었고, 엄마는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는데 반은 설인이 되어 2박 3일만에 돌아온 나를 보고 "어 왔어," 한 마디를 하고 다시 청소를 했다. 난 뭐라고 할 지를 몰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어머, 너 오는 걸 깜빡 잊었네, 어떻게 온거야, 세상에, 이런 반응일 줄 알았고, 만약 그랬다면
왜 아무도 나 찾으러 안 왔어? 왜 버스 타라고 안 알려줬어? 나 혼자 밖에서 2시간은 헤맸어, 알아?
이렇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어 왔어"라니 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안 올 줄 알았던 건가.
"어 (그걸 또 기어이)왔어?" 이런 건가. 뭔가 잔뜩 억울한 마음이 되어 방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또 뭐에 화가 나 있었다. '내 방'이라는 곳에 못 보던 후진 책상이 있길래 이건 뭐야? 했더니 누가 버리려는 걸 가져왔다고 했다. 집에 오는 데에 거의 2시간 가량이 걸렸으니 방은 약간 어두웠고 책상은 방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고, 누가 버리려는 책상은 가져오고 나는 버리려던 걸 알아서 다시 돌아왔나 싶었다.
엄마는 그러고 뭔가 짜증을 또 궁시렁거렸는데, 뭐 나는 그래서 큰 소리 한번 칠 기회도 못가져보았다.
이 얘기는 내가 몇 차례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적도 있는데, 늘 궁금했다. 왜 아무도 없었고, 유달리 할아버지도 안 계셨고(아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 오셨겠지), 그냥 모든 게 그렇게 당연하게 된 거지?
요새 보니 초등학생들은 엄마나 할머니가 꼭 등하굣길에도 같이 다니던데, 물론 세상이 흉흉해서 그렇긴 하지만, 라떼는 그랬는데 싶어서 최근에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그때 내가 그랬잖아, 하고.
엄마는 언제 그랬냐며,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고 했다.
이 조그만 탐험 이야기는 그래서 찝찝한 의문만을 남기고 그냥 이렇게 끝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