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열무, 이름도 여름같고 아삭하면서 동치미 국물이 씹을때마다 쭉 터져나오는 그것...엄마는 유난히 열무국수를 잘 해줬고, 열무김치도 맛있게 했다. 흰밥에 열무김치를 잘라넣고 고추장에 참기름 한 숟가락 크게 둘러 쓱싹 비벼 먹기도 하고, 계란간장밥에 열무김치를 올려먹으면 김치를 먹느라 밥이 모자라기도 했다. 갓 담근 열무김치가 슴슴하고 얼마나 신선한 맛인지! 연신 집어먹어도 그저 그 아삭한 풀향이 좋은 것이었다.
동생이 꽤나 잘 걷기 시작할 시기였으니 나는 초등학교는 들어갔을 때였을 것이다.
우리는 수시로 수원에 있는 외갓댁에 갔는데, 버스로 3~40분만 가면 지금은 사라진 큰 소방서 앞에 내릴 수 있었다. 마침 열무김치와 밥 한사바리를 먹고 든든하게 나섰는데 마침 비는 주륵주륵 쏟아졌다.
해는 거의 저물어가고, 버스 안에는 습기와 더위, 취객이 뿜는 알코올 냄새, 버스 특유의 그 쿰쿰한 기름냄새, 사람들의 땀냄새가 가득 차있었다. 내가 앉을 자리는 없어 마침 사람들 틈 사이에 꽉 끼어 가는데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멀미가 심했다. 어릴 땐 늘 멀미가 심했다.
내릴 때가 될때까지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로 꾹 참았다. 토하기 전 전조 증상- 침샘에서 자꾸 전기가 올라오듯 저 아래에서부터 비릿한 침이 나오고.. -을 혀 밑에서 나온 침으로 꾹꾹 다시 삼키며 내릴 정거장이 다가왔다.
그러다 갑자기 앞에서 훅하고 들어온 취객의 지독한 입냄새, 정확히 말하면 김치에 깡소주를 한 그 냄새 근데 조금 소화되고 있는, 그 호흡에 난 버스에서 우당탕 내리는 동시에 가로수 앞에 괘애애액 구토를 쏟아놓았다. 토하는 초딩 입장에선 눈에 뵈는 게 없고, 씹다넘긴 열무들은 어떤 카르마처럼 나오다 말다 나오다 말다 하며 토를 멈출 수 없게 했다. 식이섬유의 질김이란. 반정도 씹은 열무가 그대로 밥과 함께 나오고 또 나오는 동안 어떤 아주머니가 내 등을 두드려주셨다. 내 입에선 토와 함께 "엄마!"가 나왔고 그 아주머니는 SNL에 나오는 90년대 말투로 "어머 저기 저거 니 엄마 아니니??어머 아줌마!!!!아줌마!!!애가 토하는데에!!!!!"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엄마를 애타게 불렀지만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동생 손만 잡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
아줌마는 "아니 네 엄마 맞니??애가 이렇게 토하는데 아니..."하면서 계속 등을 두들겨주셨고...
그와중에 난 엄마와 횡단보도를 건너야된다는 생각에 토를 끊고(끊을 수 있다)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엄마에게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 간신히 따라잡았다.
엄마, 엄마 엄마! 나 토했어!
엄마는 내 얼굴도 보지 않는다. 그래? 라고 했던가, 할아버지 집까지 가는동안 더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엄마가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어떤 생각에 빠져있던 건지 모르겠다.
정말 못봤나? 동생 걷는게 위태로워서?
정말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못들었나? 내가 부르는 걸 못 들었나?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왜 토했다고 말해도 다 안다는 듯이 쳐다도 보지 않았을까?
난 그 전과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그냥 그러고 나도 더이상 말하지 않고 걸어갔고, 이후는 뭐 평범했겠지.
어릴 땐 내가 토하는 게 챙피해서 그냥 모른 체 하고 버리고 가고 싶었나?까지도 생각했다.
동생 손만 잡고 가던 엄마 뒷모습이 옆눈으로 비치고, 등을 두드려주는 아주머니의 손은 따뜻했던 한편 수치스러웠고, 난 엄마가 날 버리고 갈까봐 무서웠다. 비오는 저녁에 그 사람많은 큰 거리에 버리면 얘가 과연 할아버지 집을 찾아올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등을 돌린 순간 만큼은.
엄마는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열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맛있는 건 아는데, 먹고싶지 않은. 쇠는 씹어먹어도 열무는 씹어 넘기기가 힘든 어른이 되었다.
비오는 날 따끈한 밥에 열무랑 고추장이랑 삭삭 비비면 얼마나 맛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