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마음이 아프다.
심장이 썩어들어가는 느낌에 물리적 고통이 몰려온다.
나는 오후 5시부터 술을 마시던 참이었다.
물이 없었지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의지도, 용기도 없었다.
이 도시의 모든 곳은 나를 아프게만 한다.
작년 이맘때, 이렇게 있다가 혼자 목을 매단 친구가 떠오른다.
내가 아무 위로가 안되었었다니. 또는 내가 그만큼은 버틸 수 있게 해준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1년 넘게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족들에게는 그냥 잘 지낸다, 웃어넘겼고..
그냥 내 편인 사람 하나 없는 인생, 이렇게 살고싶지 않은데.
술은 자꾸만 들어간다. 몇잔 째지..담배와 술은 여기서 날 살게하지만, 언젠가 천천히 목을 조여올테지.
이 곳이 싫고, 돌아가긴 더 싫다. 찐득한 한국의 여름, 사람으로 꽉찬 지하철과 거리, 그 눈이 아플 지경인 간판들.
나는 늘 떠나고 싶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고, 학교에서도 사라지고 싶었고, 항상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아마 지금 이 곳이 내가 떠나오고 싶었던 종점인 것 같았다. 이제 어디로도 떠날 수 없다.
어떤 장소에서도 마음 붙일 사람 없는 나는, 어쩌면 이제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까.
남은 매일이 고작 이것뿐이라면, 왜 죽기 전까지 늙어가기만 할 시간을 버텨야 할까.
화장실의 샤워부스는 뭔가를 걸어도 튼튼하게 생겼다.
난 항상 허리띠를 거는 내 모습을 생각했다. 약간 아프고나면 편안해지겠지.
내가 읽은 소설책에서 자살한 아버지는 딸에게 "네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게 사랑해야할 의무는 없어" 라고 사랑을 담아 말했다.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외로움에 고독감에 상처에 눈물이 궁상맞게 흐른다. 사실 눈물도 습관이다.
마음이 아픈것도 병이 되고나니 그냥 늘 두통을 앓는 사람마냥 아픈 것이다.
끝내고 싶다. 난 누굴 위해 살아야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외할아버지였다. 외로워서 손주 손녀 아들 딸들 전화를 수시로 걸지만 받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1원도 아끼며 손을 바들바들 떠는 양반이 내가 이곳에 오자 서슴없이 국제전화를 거신다.
행복하게 사실 날 얼마나 남았다고, 겨우 전화나 받는 걸 효도랍시고 하면서 말년을 앞둔 노인의 전화 한번이라도 더 받아야하지 않겠나. 해외여행도 시켜드리고 싶은데.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는데....
또 하나, 2주 뒤 엄마가 친구아주머니를 데리고 놀러온다고 했다.
엄마도 생각해보면 불쌍한 양반이다. 몇년 전 반지하 투룸에서 5명이 빈틈없이 살 때, 엄마는 꽃보다 누나를 보며 '어머나...너무 좋겠다...어머...'를 애처롭게 외쳤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곳쯤, 몇해 전 아빠가 집만 날려먹지 않았어도 패키지 정도로는 갈 수 있었을 곳인데.
덩그러니 하나 있는 침대에 백수인 동생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그 초코파이 하나도 다 먹은 적이 없다는 우아한 언니들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작년 갑상선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돼서 급하게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자신이 너무 억울하게 산 것 같다고 했다. 하고싶었던 걸 다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난 이제 엄마에게 내가 사는 이 더럽게도 크고 아름다운 집을 보여주고,
그 계곡인지 폭포인가까지 편하게 '내 자동차'로 태워다닐 것이다.
엄마친구에게 생색아닌 생색을 내며 엄마는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사실 지금의 내 상태로 아주머니 2명을 케어하고 10일을 보낸다는 건 엄청난 정신무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죽기 전에 엄마한테 이런 거 하나는 해줘야지.
엄마 큰딸이 이렇게 멋진 곳에서 살고, 아무렇지도 않게 국경을 왔다갔다하고,
꽃보다 누나의 그곳, 엄마도 갈 수 있다고. 엄마도 그 외국의 음식들 먹고 김치 찾으라고.
그래, 조금만 참는다. 달력 앱을 키고, 엄마가 다시 한국에 가고 난 이후의 주말 날짜에 난 동그라미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