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기들은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 있던 일을 기억한다던데,
나랑은 상관없고.
아 우리 막내는 태어나기 전 그 뱃속에서 자기가 싼 태변을 먹어 위험했었다고 했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렇다고 의사가 말했다.
똥 맛은 어땠는지 애기 때 물어볼걸..
나도 어릴 땐 뭔가 보고 듣고 나름의 기억이 있었겠지만
확실히 나의 태초의 기억은, 그러니까 내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은
이게 영화라면 오프닝 씬이 될 텐데 그래 영화라고 해보자. 내 1인칭 시점으로
태초의 어두움 다음 팍! 엄마 아빠의 구두, 발목이 있다. 종아리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가지마!!!제발 가지마!!!!!!!!나 놓고 가지마!!!!!!!!!!!!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말그대로 리터럴리 엄마 아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내가 오열을 하면 할 수록 빨리 나와, 구두는 성급해지고 아빠는 나를 떼어낸다.
거실 한 귀퉁이 외할머니가 서서 못마땅하게 팔짱을 끼고있고
슬로우 모션처럼 내 손을 떼어내고 왜이렇게 마음이 찢어지는지,
누가 보면 애를 버리고 가는 줄 알았겠다. 그냥 출근이었다. 이 씬은 1분만에 끝.
다음 기억은 아마 그 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쨋든 한바탕 오열을 마치고 이건 햇님달님의 동아줄이라고 커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 이 씬은 3초 컷.
세상에 나온 순간에도 어차피 목이 찢어져라 울었을텐데, 내 역사의 시작은 어쨌거나 찢어지는 오열 그리고 이어지는 권태이다. 나는 신생아때도 자라나면서도 악마의 새끼마냥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우리 이모와 삼촌들은 마치 영웅담처럼 매년 명절마다 본인들의 경험담을 떠들고 나는 멋쩍게 웃지만.
사실 그 울음은 저주처럼 어떤 단단한 씨앗처럼 태초에 이 몸에 심어져있어서 뿌리식물마냥 자꾸만 자라고 뿌리를 내려왔다고, 혈관처럼 아니 애초에 내 몸에 흐르는 액체란 액체는 빨간것은 헤모글로빈이고 사실은 눈물일 수도 있다고, 그 사이에 권태도 그 씨앗을 숙주로 기생하는 벌레처럼 그러다 곤충의 뇌까지 조종한다는 어떤 기생충처럼 무럭무럭 자라와서 좋은 시절 나쁜 시절을 망라하고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누군가 모두의 삶이 하나의 태피스트리라고 말했는데, 내 태피스트리의 씨줄은 슬픔이고 낱줄은 권태가 분명하며 결코 찢기지도 구멍나지도 않을만큼 촘촘히 짜여져서 가끔 불에 활활 태워버리면 어떨까 인생은 어차피 타고있는 초같은 것이니까, 멋쩍지만 이런 생각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