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4
엄마아빠의 맞벌이 때문에 수원의 외갓댁에서 유아 시절을 보냈다.
나는 그 시절이 굉장히 길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또 '잠깐'이라고 말한다.
'잠깐'이라고 말하기엔 내 기억이 좀 더 옳을 것 같은 것이,
내가 거기 있는 동안 내가 아주 아기일때 날 돌봐주던 큰삼촌이 전역을 했고,
이모는 어느 큰 학원에서 중국어 강사를 하다가 결혼을 했고,
막내삼촌은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가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난 이불을 차곡차곡 쌓아둔 위에 올라가 몇번이고 뛰어내리며 할머니한테 "엄마는 몇밤 자야 와? 했는데 그게 한참 멀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무튼 외갓집엔 날 위한 놀잇감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애초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놀이는 예쁜 단추 골라내기였다.
할머니는 소싯적 양장점을 하셔서 큰 분유통같은 캔에 쓰고 남은 단추가 한가득이었는데,
난 심심할 때마다 단추를 와르르 쏟아낸 후에 개중 예쁜 단추를 골라냈다.
하얀 진주같은 펄이 들어간 단추, 미키마우스같이 생긴 동글동글한 단추, 색깔이 자개처럼 세련된 납작 단추,
금색 테두리가 들어가 고급져보이는 단추, 그리고 3개나 같은 것이 있던 테두리에 큐빅이 박힌 단추,
투명한 보라색 볼같은 단추...지금도 단추 하나하나의 모양이 생각날 정도다.
당연히 모집단이 같으니 고르는 단추도 항상 똑같았는데, 그 시절 나의 유일한 낙이었달까.
예쁜 단추들이 오늘도 다음날도 있다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금고 속 골드바 갯수를 매일매일 세어보는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단추를 고르느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의 하루는 너무 무료했다.
하루는 너무 길었고, 어쩔땐 마당에 나가 햇빛에 비친 꽈리꽃의 색깔이 아름다워 한참을 봤고,
할머니에게서 겨우겨우 호스를 받아내 물을 뿌리기도 했고,
모르는 동네 언니와 남의집 계단에 앉아 또 단추통을 가지고 놀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단추 고르는 일은 나의 어떤 의식같은 루틴이었는데, 동네 할머니나 누구나 놀러와서 내가 무얼하느냐고 물어보면 "예쁜 단추만 골라내는 거에요"하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구구절절 이야기 하기도 했다.
아마 요즘 영유 준비반 이런 것으로 바쁜 아동들(?)은 이렇게 단추통 하나로 2년을 갖고노는 일은 절대 없을테고, 마땅히 유튜브도 게임도 핸드폰도 없던 그 집에서 난 혼자 하루하루를 무슨 재미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집에 잘 안계셨고, 삼촌들도 저녁에나 집에 들어왔고, 이모는 밤에 들어와 할머니와 싸우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그래서인지, 난 항상 하루가 너무 긴 것 같다. 미친듯이 바쁜 날이 아니라면 늘 무료함과 싸운다. 회사에서도 일이 적은 부서로 가면 시간이 안 가서 힘들다. 이렇게 업무에 미친 자발적 노예를 스카우트해 갈 회사는 없나요.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혼자 있으면 무료하고, 어쩔 땐 일에 미쳐있으면서도 무료하다.
예쁜 단추만 가져와서 마음에 박아버리면 지긋지긋한 무료함이 조금 사라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