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쥬, 산발이 되다

by 새벽달

1995 가을


난 세상의 아빠들은 다 우리 아빠같은 줄 알았다.

집에오면 말 한마디 없었고, 한번도 두번 이상 오가는 대화를 한 적도 없다.

사랑한다는 말도 안하고, 안아주지도 않고, 전형적인 '남자는 밖에서 돈 벌고 여자는 육아와 집안일'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아저씨. 내가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밖에서 뭘 하고다니든 아빠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엄마와 싸울 때도 아빠는 '아이, 알아서 한다니까' 한마디 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서 가뜩이나 성미급한 엄마를 꼭지까지 돌게 만들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아빠와 지겹게 많이 싸웠고, 집에 못들어오게 하고, 나보고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으르렁거렸다. 물론 결국 본인이 열어줬으니 아직 같이 살겠지.

난 아빠가 오면 달려나가 반갑게 맞이한 적도 없고, 반가웠던 적도 없다.


아빠는 살면서 딱 두 번 내게 손찌검을 했는데, 그 이후로 어떤 일이건 간에 아빠와는 좋을 일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어딜 갔다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해서 난 잠을 깼다.

안아달라고 했나 업어달라고 했나,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줄 리는 없었고 잔뜩 칭얼칭얼거리면서 집에 돌아오는데 엄마가 뭐 때문인지 집에 먼저 올라갔다. 아빠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나는 엄마는 어디있냐, 엄마는 왜 먼저 간거냐 하면서 칭얼칭얼을 멈추지 않고 울며 아빠 다리를 팔랑팔랑 때렸다.


내가 그렇게 폭력적으로 자라나면 금쪽이가 될까봐 그랬을까.

집에 가자마자 아빠는 '어디 아빠를 때리냐'면서 나를 방으로 던져놓고 방문을 걸어잠갔다.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나는 엄마를 찾으며 방을 나가려고 했지만 엄마는 답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아빠에에게 푸닥거리를 당하게 되는데.


가만 보면 부부는 다 고만고만하게 닮았거나 서로 닮아가나보다. 이렇게 유난스럽게 애를 잡는 건 둘이 왜 그렇게 똑같았나 싶다. 엄마한테 봐온 게 그런 거라 아빠 본인도 그렇게 했나. 평소에 내가 물구나무를 하고 걸어다녀도 쳐다도 안 볼 양반이 그 때는 뭐가 그렇게 열받았는지, 엄마처럼 온갖 물건으로 나를 때렸다. 주도구는 내 쥬쥬인형이었는데, 인형이 불쌍한지 내가 불쌍한지, 하도 온몸을 때리는 통에 쥬쥬인형은 산발을 하고 미소를 띈 미친 쥬쥬가 되어갔다. 나중엔 목도 돌아갔다. 마침 쥬쥬가 옷을 안입고 있던 통에 그 고무 재질은 지금 생각해도 착착 몸에 감기며 엄청난 타격감이 있었고, 정말 아팠다.ㅎㅎ


나는 아빠한테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게 빌고 또 맞고, 문에 매달려 송아지처럼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절규했지만 1시간 넘게 이어진 쥬쥬와의 타격전이 끝나서 내가 풀려날 때까지 엄만 한번도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엄마가 샤워를 시켜주면서 몸에 시뻘건 자국들을 보고 '아니 뭘 이렇게 세게 때렸대' 하고 알량한 불쌍함을 표했을 때 난 또 서러워서 엉엉 울었고, 그 뒤엔 숙면을 취했던 것 같다. 산발이 된 쥬쥬는 그대로 산발로 지내다가 버려졌고, 나도 쥬쥬는 보기만해도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인형놀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서 증오하는 아이가 되었다.


요새 보면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훈육을 하면 안된다면서 부모도 자식에게 사과를 하고 이러던데 그 달달함에 난 배알이 뒤틀린다. 난 엄마가 샤워를 시켜줄 만큼 어린 애였고 아빠에게 파운딩을 날린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열받아서 그렇게 인형이 산발이 되도록 애를 죽도록 팼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더 얄미운 건 말리지도 않는 시누이 같은 엄마였다. 자기가 하니까 아빠가 해도 된다는 건가. 도대체 이 부부는 누구 하나 애가 애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놓고 나에게는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아빠가 퇴근하면 넌 반갑게 인사하는 적이 없다고 또 엄마는 푸닥거리를 하고. 둘이 서로 반가워하지 않는데 왜 나는 반가워야 하는지 대체 모르겠었지만, 그렇게 혼난 날은 또 영화에서 본 것 처럼 아빠~~오셨어요~~하고 반가워하며 뛰어갔다가 다음날 그렇게 오바하지는 말고 인사나 똑바로 하라고 또 푸닥거리를 하고.


지금 보니 둘이 그렇게 죽네사네 이혼을 하네 마네 해도 여적 잘 살고 있는 이유가 있다.

간헐적 싸이코패스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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