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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솜사탕 Oct 20. 2023

덕질을 멈춘다고 좋아하는 마음까지 멈추진 않습니다



아마도 이 글은 내 덕질 에세이에서 가장 마음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글일 것이다. 사실 이 주제를 어떻게 써야하나 하는 고민은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만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글이다. 혹시 나와 같은 god 팬들에게는 약간은 생각하기 싫은 어떤 시점을 떠오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나 좋자고 하는 덕질에 안 좋았던 생각까지 끄집어 내고 싶지 않다면 이 편은 패스하기를 바란다.




감사하게도 이 미천한 에세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봐주신 분이 계시다면, god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god를 향한 덕심은 12살이라는, 무언가에 자극받기 쉬운 어린 나이에 시작한 너무나 강렬하게 체험한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많은 대상과 사람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느끼곤 했지만, 그 강렬함의 정도가 god를 따라오기란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번 느낀 것이었다. 살면서 내가 무언가를 가장 열렬하게 좋아한 대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god였다.


그런 나의 '좋아하는 마음'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이 생겼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엔 내가 어른이 되면 나와 결혼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계상 오빠, 윤계상이 god를 탈퇴한다고 했다. 처음 덕질을 시작하던 때보다는 열정의 온도가 살짝 식어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팬지오디'로서 내가 가진 정체성은 굳건했다. god를 향한 팬으로서의 신뢰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런데 탈퇴를 한다고 했다. 이제 god에는 윤계상이 없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처음으로 느낀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감정이란 원래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법이다. 나도 왜 그렇게까지 배신감을 크게 느꼈는지 지금도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god 멤버도 아니고, god 소속사 직원도 아니고, 어떤 지인도 아니다. 그냥 팬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god를 탈퇴하겠다는 윤계상의 결정을 접하며,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온 마음을 다해서 좋아했는데'.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몇년 간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표현해 온 좋아하는 마음, 그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열렬하게 좋아했어도 마음을 쏟아부을 대상은 이렇게 허무하고도 어이없게 무너지는구나. 나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god, 누군가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도 있는 거구나. 탈퇴를 선언한 윤계상에 대한 배신감은 god라는 그룹 전체에 대한 허망함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끝이다.'


'탈덕'이라는 조어가 없던 시절, 나는 그렇게 god를 탈덕한다. 다시는 내 인생에서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나는 남은 학창시절 동안 연예인 덕질을 하지 않았다.




윤계상이 빠진 god는 4인 체제로 활동을 이어갔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되게 냉정할 때가 가끔 있는데, 실제로 4인 체제의 god에 나는 관심을 일절 주지 않았다. 대상 없는 누군가에게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인생에서 god를 좋아했다는 기억 자체가 헛되게 느껴졌다. 윤계상이 god를 탈퇴한 이듬해인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5년, 4인 체제의 god는 정규 7집에서 '하늘속으로'라는 노래를 낸다. 사실 god에 대한 모든 소식을 접하지 않을 순 없었기 때문에 어쨌든 나도 그 제목을 봤다. 그리고 제목을 보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 눈물은 굳이 따지자면 슬픔이라기보단 빡침에 가까웠다. 왜 화가 났는지 역시나 명쾌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난 화가 났다. 그래서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실제로 이 노래를 들은 건 이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다). 이들과 난 서정적인 가삿말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케이팝에만 반응하는 귀가 어디 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케이팝 암흑기라 칭하는 2000년대 중반기가 지나간 이후 후 대학생이 된 나는 다시 이런저런 아이돌그룹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험기간 도서관에서 남몰래 샤이니의 '사계한'을 들으며 시도때도 없이 벅차올랐고, 과 동기들과 2PM의 예능 컨텐츠 와일드바니를 돌려보며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수다를 이어갔다.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 대학교 3학년 땐 갑자기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에 꽂혀서 낯선 이국 땅에서 매일 소녀시대 영상을 찾아봤다. 덕질은 아니지만 케이팝 애호가로서의 잔잔한 호기심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god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끊어졌다. god를 탈덕한 지 5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god와 윤계상에 대한 악에 받친 감정은 누그러졌다. '아, 저 예전에 god 좋아했었어요' 정도를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은 흐른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윤계상에 대한, god에 대한 배신감과 그로 인한 상처는 은은하게 내 멘탈 어딘가에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나는 사회부 기자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갓 수습을 뗀 나는 경찰팀에 속하게 됐는데, 경찰팀은 말 그대로 서울 시내 경찰서를 취재하는 일을 한다. 경찰들이 담당하는 수많은 사건사고가 곧 경찰팀의 취재거리였다. 그리고 사건은 내가 수습 딱지를 뗀지 한 달도 안 됐을 때 터졌다.


어느 언론사나 경찰팀은 팀원들이 서울시내의 경찰서를 '라인'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별로 네다섯개씩 묶고 이 라인을 한명씩 담당하게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복 하나는 남부럽지 않않던 나는 영등포와 관악 두 개의 라인을 맡고 있었다. 특정 라인에서 조금 규모가 크거나 관심도가 몰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다른 라인을 맡고 있더라도 해당 건의 취재를 지원한다. 라인끼리 위치가 가까우면 지원해야 할 확률이 더 높았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리고 사건은, 내가 담당한 라인에서 다리만 건너면 되는 용산경찰서에서 발생한다.


우리 팀의 업무는 LINE 메신저에서 이뤄졌다. 매일 아침 캡(경찰팀의 팀장)이 각 라인에서 올라온 보고 내용을 종합해서 취재 해야 할 사안을 지시해주면, 그 메신저에서 그날의 취재 현황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기사 작성 후 보고하는 형태였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나라는 인간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던 시절, 그날도 여전히 나는 영혼 없이 LINE 메신저를 살펴보다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god 멤버 손호영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는 굳이 그 사안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진 않다. god에 대한 관심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나조차 그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이 땅으로 고공낙하하는 것 같다고만 해두겠다. 유명 연예인의 충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은 당연히 단독 경쟁이 붙었고, 우리 팀 역시 다른 라인을 담당하더라도 일부 해당 사안 취재 지원이 들어가게 됐다. 처음 신입 기자로 캡을 만났을 때 '예전에 제가 god를 되게 오래 좋아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캡이 그걸 기억하시고선 나는 이 취재에선 빠지라고 했다. 이건 지금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그렇게 LINE 메시지에선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와중, 팀원 누군가 '연예인들은 이렇게 멘탈이 약해서 문제다' 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노파심에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런 말은 안타깝게도 셀럽의 가십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문제는, 그 말을 보자마자 내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 내가 받은 충격 때문일 수도 있고, 그 말에 내가 어떤 서운함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건 이런 거였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이, 왜 이런 말을 듣고 있는거야.


나는 그때 알았다. 덕질을 멈춘다고 해서, '탈덕'을 선언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까지 멈추는 건 아니라는 걸. 좋아하는 마음은 나의 생각보다도 훨씬 오래 간다는 걸. 탈덕한다고 좋아하는 마음과 기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수많은 감정이 눈물과 함께 쏟아졌다. 그리고 뒤이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보란듯이 극복해주기를,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다시 우리 앞에 서주기를. 이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 놀랐다. 몰랐는데, 나는 아직도 이 사람을 응원하고 있었다. 역시 몰랐는데, 나는 아직도 이 사람과 이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기억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취재지로 이동하던 택시 안에서 눈물 콧물 다 빼가며 사연 있는 여자가 되어버린 그 날을 잊기란 정말 어렵다.




모두가 알다시피 god는 2023년 10월 현재, 너무나 근사하게 5인 완전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무려 공영방송에서 명절 특집 대국민 콘서트를 열어줄 정도다. 윤계상에 대한 감정도 생각보다 쉽게 사라졌는데, god가 재결합하기 직전 윤계상과 멤버들이 만난 한 케이블 프로그램을 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그 당시 윤계상은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당시의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좀 더 어렸다. 윤계상 역시 자신의 남은 앞길에 대해 수도 없는 고민과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보통사람이었다. 그걸 비슷한 나이, 혹은 조금 더 나이가 많아지고 나서야 자연스럽게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god가 재결합한다는 기자회견을 한 날, 나는 사무실 한 구석에서 눈물을 꾹 참으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놀랍게도 다시 예전 그대로 재생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복한 덕질을 이어가는 중이다. 내 인터파크 어플에 자리잡고 있는 다음달 god 서울 콘서트 티켓이 이걸 증명한다.




덕질의 세계에는 불문율처럼 통하는 어떤 말이 있다. 휴덕(덕질 쉬어가기)은 있어도 탈덕(탈 덕질)은 없다는 말이다(당연히 덕질 대상이 범죄를 저지른 케이스는 여기서 제외한다). 덕후의 DNA란 생각보다 지독해서 계속 새로운 덕질 대상을 찾아간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말 자체는 사실 우리의 '좋아하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깊고 오래 가더라는 수많은 덕후들의 간증에 가까운 경험과 체험이 쌓아올린 말이 아닐까 싶다.


자의든, 타의든 정말 오만가지의 이유로 덕질에는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역여 올라간 수많은 기억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덕질로 생겨난 기억은 강렬하다는 걸 체험했다. 언젠가 우리의 덕질은 멈추겠지만, 이 덕질로 인해 울고 웃었던 수많은 기억은 멈추지 않는다.


결론. 그래서 나는 더욱 후회 없이 좋아하고, 표현하고, 경험하는 덕질을 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기본 재료로 한 덕질의 감정이 넓혀주는 시야가 기대된다. 그리고 그 업그레이든 시야를 장착해서, 이 혼란한 세상을 조금 더 다채롭게 이해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우울한 감정이 주가 되는 덕질 에세이는 쓰지않겠다. 쓰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내 덕질은 진짜로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해피하게 진행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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