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그랩: 내 정보를 훔치는 빅테크 기업들>을 읽고서
요즘의 나는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한 편인데, 언제부터 생긴 습성일까 되짚어보니 수능을 보고 나서다. 수시를 지원하지 않아 논술을 제대로 준비한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수능이 끝나고 속성으로 한티역에 있는 '초암'이라는 학원을 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회학 등의 수업을 듣고 원고지에 글을 쓰고, 첨삭을 받는 식으로 운영됐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이 무렵 온갖 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으며 '전체주의'니, '감시'니 하는 사회적 이슈를 처음으로 생각해 본 듯싶다. 물론, 심도 있는 고민 따위는 아니고, 그저 이 많은 원고지 칸을 무슨 내용으로 채워야 하지? 하는 정도의 얄팍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때 습득한 지식의 영향은 실재했다. 대학교 신입생으로 온라인 등록을 할 때, 제출 버튼을 누르니 "~~에 개인정보 제공을 동의하느냐"는 팝업이 떴고, 나는 '내 정보는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새로운 유형어 의무감에 사로잡혀 당당하게 "아니요"를 택했다. 알고 보니 "~~"는 내가 속한 학부의 학생회였고, 내가 입학했다는 정보가 학생회로 넘어가지 않아 반 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마터면 입학 첫날부터 대강당 무대에 올라 '경매'에 처해질 뻔했으나, 같은 학부에 입학한 중학교 동창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 아이의 반으로 향했다. 그 무대 위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건 다행이지만, 그 친구네 반 분위기가 최악이었는 점에서 불행이었다.
그보다 훨씬 어렸을 때의 나는 개인 정보를 만천하에 떠벌리고 다니는 타입이었다. 이메일 주소가 핸드폰 번호였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 논술 학원에서 개인 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느꼈다면서도, 중학생 때 만든 그 메일 주소를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까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중학생 때 만든 메일 주소야, 친구들끼리 메일을 주고받는 용도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는 것이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달랐다. 온라인에서 만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말할 때면 뭔가 께름칙했다. 하지만 010으로 넘어가면서 번호가 일부 바뀌어 이 딜레마는 자연스레 해소됐다.
나는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소셜미디어의 헤비유저였다. 그전에 존재한 프리챌, 개인 홈페이지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누군가와 계속 연결돼 있기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런 내가 페이스북을 탈퇴한 것은 정말 큰 변화다. 빅테크 플랫폼에 저항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삭제했으나, 해외 생활을 하면서 일기 개념으로 계정을 만들었지만, 어지간하면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계정을 알려주더라도 나는 절대 팔로우하지 않는다. 그리고 PC로만 인스타그램에 접속하고 핸드폰에는 앱을 깔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서 일종의 타협을 봤다.
가장 최근 저항은 핸드폰에서 네이버를 삭제한 일이다. 네이버 추천 알고리즘에 진절머리가 나 모바일에서 지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할 일이 없을 때 네이버에 들어가 무의미한 알고리즘 추천 영상, 글 따위를 소비하며 자야할 에너지를 낭비하는 내가 한심했는데 거기서 '팔이피플'로 변신한 고등학교 동창을 보고 기겁해 삭제를 단행했다. 알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을 알게 하는 불쾌감을 나를 위한다는 알고리즘으로 포장된 네이버에서 마주칠 줄이야. 전화번호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의 생일을 강제로 알게 만드는 카카오톡 또한 지우고 싶지만, 아직은 업무 연관성이 높아 참고 있다. 퇴사 후 제거 대상 1순위가 카카오톡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을 읽은 계기는, 대학원 지원이었다. 희망하는 대학의 교수가 공동 저자인데, 읽다 보니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다. 대학원 지원서를 제출한 지 오늘로 꼭 8주를 채운다. 그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할 일이 많다는 핑계였다. 에세이를 준비하느라, 추천서를 부탁하느라, 영어 면접을 준비하느라 등등. 어쩌면 오늘 밤~내일 새벽 사이에 결과가 나올 듯한데 그 결과에 따라 이 글이 사장될 수도 있으니 일단 발행 버튼을 눌러본다.
"이런 데이터 영토의 특징은 기술적인 부분으로 보이지만, 사회적 관계를 수정하거나 적어도 데이터 영토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들을 수정한다. 그런 영토에서 우리는 겉보기에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일련의 불균형한 권력관계로 들어간다. 이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핵심에 신식민주의의 현실이 있다. 극소수의 통제와 이익을 위한 대규모 사회적 영토의 획득이 그것이다."
"편의란 명목으로 플랫폼들은 사회를 운용하는 시스템이 되려고 한다. 우리가 더 정기적으로, 더 집중적으로 이용하면 플랫폼의 광고 수입이 생긴다. 우리 삶에서 플랫폼의 권력이 커지면서, 플랫폼은 자초한 문제들의 편리한 해답을 제공하는 지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구글의 추적을 제한하고 싶다고? '철두철미하고 안전한', '개인정보보호로 설계된' 구글 픽셀폰을 구입하면 된다."
"우리가 연결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꼭 이런 방식일 필요는 없다. 연결은 비즈니스 모델들이 결정한 제한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다. 연결이 이익을 이해 데이터를 더 추출하고, 기기를 계속 감시해서 그 정보를 이용해 쓰레기를 더 파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에서 소위 진실은 토의나 토론, 정치적 협상이 아닌 콘텐츠에 대한 입소문으로 생겨난다."
"댄 맥퀼란은 AI를 데이터 추출에 기반해, 이미 존재하는 사회 불평등을 반영하는 정밀한 통계 예측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본다. 물론 대단히 정교한 기술적 속임수가 내부와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통계적 최적화 형태가 과거 식민주의처럼 차별을 깊어지게 하는 데 무분별하게 이용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 문제의 마법 같은 새 해답으로 제시되는 게 문제다."
"대형 AI는 온라인에 등록된 인류의 생산물 전체를 입력해야 한다. 여기서 인간에게 돌려줄 만한 가치 있는 지식을 생성하려 한다. 이 과정에는 대단한 연산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연산 능력은 최대 빅테크만 소유한다. 세부 내용이 어떻든 처음부터 인류 문화를 무료인 것처럼 AI 처리 과정에 입력하는 것은 또 다른 식민주의 수탈 행위다."
"데이터 식민지 특권층을 제외한 전 세계 시민들을 지속적인 데이터 추출 관계로 몰아간다. 거기서 시민들은 통제권을 갖지 못한다. 문명화의 논리들은 이게 좋은 것이라고 설득해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래로 목적을 이룬다. 데이터 추출이 편리한 삶, 효율적인 삶, 연결된 삶, 풍요로운 삶을 확보할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연결해, 안 하면 큰일 나', '약관에 동의해, 아니면 큰일 나' 중 어느 쪽이든 발전을 수용하지 않으면 퇴장당한다."
"때로 국가가 인터넷 정책의 궁극적인 중재자라는 국가 주권 개념은 감시와 속박의 새 도구를 만들어 정치적 이익을 취한다고 인식된다. 외부 식민자 대신 내부 식민자를 선택한다고 해서 피식민자의 고통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소유권이 아닌 목적의 문제다. 주인의 도구를 용도 변경해서 시스템에 대한 저항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요'의 시작을 뜻한다. 규제 없는 데이터 추출이 허용해도 되는 정상적인 일이라는 문명화의 논리를 거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