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이라 함은, 통상 주식투자를 할 때 주가가 곤두박질 칠 것이라 예상하고 어느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적당한 시점에 끊어낸다는 뜻이다. 주식을 2024년에서야 시작한 초보이지만, 손절이라는 용어만큼은 그 누구보다 많이 써왔던 듯하다. 약간의 날티를 선망하던 질풍노도의 중고등학생, 한두 살의 나이차에 끔뻑 죽는 선후배 관계에 얽매였던 대학생을 지나 직장인 생활을 5년 정도하고 나니 어렸을 때 형성한 인간관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이후부터다.
그때부터는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나면 시절 인연에 마침표를 찍었다. 절교라고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연락을 하지 않고, 싸이월드에서 시작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당대의 핫한 SNS를 에서 내 흔적을 지워버리면서 아주 약한 연결고리마저 끊어내는 나름의 방식으로 손절을 단행했다. 그 사람이 그걸 알아차렸는지 여부는 알 수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더는 당신을 내 삶의 반경 안에 들이지 않겠소, 마음먹으며 정신 승리 또는 자기 위로를 하는 것일 뿐.
중학생 때 학원에서 만나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도 한참을 만났던 친구가 있다. 이사를 자주 다녀 동네 친구가 거의 없던 나에게 몇 안 되는 동네 친구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힘들다는 고3 시절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였기 때문인지 나는 이 친구를 참 좋아했다. 반기에 한 번꼴로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예쁜 카페를 가곤 했는데, 어느 시점부턴가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그 친구에게서 들리는 소식이 없다는 게 마음 한편으로 서운했던 것 같다.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만나면 지나간 이야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테이블 위에 무수히 올려놓고 하나씩 꺼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이 관계는 내가 손을 놓으면 그만인 관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싹텄고, 이런저런 핑계로 먼저 연락을 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어느덧 30대의 문턱을 넘어서니 우리는 연락하고 지낸 기간보다 연락하지 않은 기간이 더 긴 사이가 됐다.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한국에서 저장한 휴대전화 번호를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이 친구의 번호도 지웠다. 하지만 이 친구의 번호는 외우기가 아주 쉬워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한 번은 그 번호를 다시 저장해서 카카오톡에 뜨는 사진 본 적이 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더군. 사진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먼저 연락하려다, 어느덧 견고해진 세월의 벽을 내가 뚫을 수 있을까 싶어 번호를 다시 지우고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서도 삭제했다. 우리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나 보다.
전술한 내 나름의 손절 방식이 있듯, 그 친구의 성향으로 치부했던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게 어쩌면 그 친구만의 손절방식이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여럿 손절을 당했을 텐데, 너랑 이제 절교야!라는 말을 직접 듣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어째 쓸쓸해진다. 설, 추석 연휴마다 윗사람이니 친구니 연신 메시지를 보내가며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다만, 나는 여전히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