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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공유업체의 비극

대가를 지불하는 나를 평가하는 불편함

by 글쓰기C쁠
2024년 12월의 어느날 서울

에어비앤비는 나에게 비극이었다. 호스트에게 게스트가 기물을 파손했다고 주장하며 배상을 청구할 권한을 주고, 게스트가 이랬다, 저랬다 평가하는 시스템이 그 근원이다. 이 제도에 분명 장점은 있지만, 에어비앤비 등장 이전에는 몰랐던 불안함과 불쾌감을 안고 여행을 하게 만든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마치고 숙소를 떠날 때 호스트가 어떤 신박한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까 두려워 사진과 동영상으로 증거를 남겨놔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호스트가 후기로 나에 대한 어떤 험담을 늘어놓을까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 번은 냉장고를 망가뜨렸다며 호스트에게 수백만원 청구를 받은 적이 있다. 얼음을 얼리기 위해 냉동실에서 트레이를 꺼내던 중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트레이를 고정하는 곳의 조각이었고, 떨어진 조각은 주변이 누렇게 착색이 돼있었다. 과거에 떨어진 조각을 누군가 다시 본드로 붙여놓은 것이었다. 원래 부러졌던 거구나 싶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체크아웃을 했다. 이후 호스트는 냉장고 전체를 바꿔야 한다며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을 청구하는 뻔뻔함을 선보였다. 알고 보니 호스트의 불만은 다른 데서 기원했다. 전날 밤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놀았고,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놓고 병을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나치게 시끄러웠고,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그날 밤 숙소로 와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으면 됐다. 메시지를 보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런 경고도 없었다. 참고로 산속에 있는 숙소라 주변 이웃은 없었고, 주인이 근방에 살고 있었다. 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 우린 모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었고 분리수거를 할 수 있도록 병도 가지런히 세워놨다. 무엇보다 청소를 해놓고 떠나야 한다는 안내를 애초에 받은 적이 없다. 만약 쓰레기를 어디다가 배출해야 한다고 사전에 고지했다면 당연히 그에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언질도 없이 숙소를 더럽게 쓴다고 주장한다고? 결국 몇만원 쥐어주는 걸로 합의를 봤다.


이 여행을 계기로 에어비앤비를 기피하게 됐다. 다른 대안이 없을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숙소를 소극적으로 사용하고, 떠날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청소를 했다. 청소비가 숙박 비용에 포함이 된 건데 내가 왜 이딴 짓을 해야 하는 거지? 싶었다. 한 번은 혼자 여행을 갔을 때 관광지에서 제법 거리가 먼, 저렴한 숙소를 잡은 적이 있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길 옆에 집이 있었고, 주변에는 전등조차 없었다. 야경을 보고 돌아올 길이 무서워 방에 불을 켜놓고 외출했다. 옆 건물에 사는 호스트가 밤새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외출할 때 불을 끄지 않는다"는 후기를 남겼다. 저기요, 전기세까지 숙박비에 포함된 거 아닌가요?


급하게 출장이 잡혀 호텔 예약이 불가능할 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호스트가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좋게 평가하면 기분이 좋고, 나쁘게 평가하면 기분이 나빴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내 돈 내고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왜 내가 평가를 받아야 하지? 그러다 사고가 터졌다. 깨끗하게 숙소를 치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지나치게 청소를 하다가 오히려 숙소를 망가뜨린 것이다. 차라리 그냥 그대로 체크아웃했더라면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나 보다. 왜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럴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공유경제를 표방하며 출범해 큰 성공을 거둔 에어비앤비는 명실공히 숙박업을 하고 있다. 집에서 쓰지 않는 공간을 잠잘 곳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소정의 돈을 받고 빌려줬던 시절에야 공유경제 신화가 통했을테다. 그러나 부동산을 사들여 그럴싸하게 꾸며놓고 청소와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까지 따로 두며 청소비까지 별도 청구하는 이 작태를 어찌 공유경제라 부를 수 있을까. 공유경제 정신은 사라지고 지독한 자본주의만 남다는 게 현실아닐까.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이 비극에 마침표를 찍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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