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말~11월 초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에서 4일을 보내면서 4개의 요가원을 다녀왔다. Radiantly Alive, Ubud Yoga House, Yoga Barn, Alchemy Yoga였고 기재한 순서대로 좋았다. 개인적인 기록을 위해, 또 나와 같이 우붓으로 요가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위해 후기를 남겨본다.
요가 수업은 한 곳 빼고 모두 90분이었다. 확실히 1시간 반동안 요가를 하니 몸의 에너지를 서서히 끓어 올릴 수 있었다. 그 덕에 한국에서는 쉽지 않았던 자세도 덜컥 성공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다니는 요가원이 최근 수업 시간을 60분에서 50분으로 줄여 아쉬웠는데, 긴 수업을 하는 요가원을 찾아봐야겠다.
우붓 북쪽엔 우붓왕궁, 남쪽엔 몽키포레스트가 있다. 요가반은 남쪽에, 나머지 요가원은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또 요가하러 온다면 북쪽에 숙소를 잡는 게 좋을 듯. 이번 숙소는 요가반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RA까지는 10~15분, UYH까지 20~25분, AY까지 30~40분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도착 첫날 3회권(460k·4만원)을 끊어 3일 연속 수련을 했다. 일주일(1,100k·9만7천원), 한달(2,530k·22만3천원) 단위 무제한권도 있으니 길게 머문다면 단연코 이걸 끊겠다. 이곳에는 나 같은 뜨내기 관광객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가를 상당기간 수련한 것으로 보일만큼 면학 분위기가 좋다.
-각각 RA Vinyasa, Ashtanga Inspired, RA Vinyasa를 들었고 선생님은 모두 달랐다. 첫 빈야사 강사는 Lucia Monje, 마지막 빈야사 강사는 Anan Kumar. 후자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핸즈온도 적극적으로 해주셨다. 비수기라 그런지 한 수업당 수강생이 10명 안팎이라 아주 쾌적했다.
- 아쉬탕가 수업을 맡은 Dewi라는 선생님도 완전 내 스타일. 이날 자신의 스승을 대신해서 수업한다고 했는데, 군더더기 없이 동작을 이어나갔다. 우붓에서 유일하게 핀차마유라사나를 해본 수업이기도 했는데, 역시나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은 왜 이렇게 무거울까.
- 화장실에서 탈의 가능. 샤워실은 없음. 공용매트가 구비돼 있다. 마지막날에는 개인매트를 들고 가기 귀찮아서 요가원 매트를 썼는데 냄새도 나지 않고 깔끔했다. 여기는 굳이 매트를 안 들고 와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 중 땀을 닦을 수 있는 작은 수건, 매트 클리너, 모기 기피제가 있다.
- 수업이 많지 않다. 화, 목요일을 제외하면 오전 수업만 3개 있다. 정적인 요가보다는 동적인 요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선택의 폭이 좁아 오전 9시 Nicole의 Dynamic Vinyasa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Nicole과 함께한 수련은 RA의 Kumar 수련과 함께 투탑이었다.
- 우붓의 다른 요가원과 비교했을 때 수련하는 장소가 좁다. 8명이 나란히 서니까 꽉 차는 수준. 탁 트인 정자와 비슷한 공간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라 뷰는 가장 훌륭했다. 서양인이 환장한다는 발리의 논을 눈에 담으면서 호흡할 수 있다는 게 장점. 허나 그만큼 덥고 습하기도 했다.
- 수강생 숫자가 적다 보니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교류하는 시간도 있다. Nicole이 수강생들과 하나하나 교감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onnection이라고 강조. 나이가 있으셨지만 엄청난 파워와 에너지를 보유하신 분.
- 다른 요가원과 달리 이곳에서만 카드로 결제할 때 수수료를 받았다. 현금으로 하면 1회 수련에 165k(1만4천500원)이고 카드로 하면 170k(1만5천원)로 한국돈으로 따지면 500원차이가 난다. 사업 주체가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의 차이로 받아들여졌다.
- 요가 수련 전 대기하는 1층 공간에서 따뜻한 차와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물도 있는데, 아마도 라임을 띄워놓은 물이라 그런지 색이 혼탁하고 맛이 시큼해서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고양이가 요가원에 상주한다. Dogs and cats own the staffs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 사흘 연속 요가를 하다 보니 이곳저곳이 쑤셨다. 수업을 제끼고 잠이나 더 자다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선생님을 검색해 보니 미국에서 유명한 분이라길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오전 8시 30분 Byron de Marsé의 Power Yoga를 들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아주 훌륭했다.
- 요가반에는 요가를 수련하는 곳뿐만아니라 식당, 카페, 마사지를 받는 건물이 여러 채 모여있어서 마치 하나의 작은 왕국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를 좁게 만들어놓고,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놔서 그런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 눈으로 대충 계산해도 50명이 넘게 이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점은 기괴했다. 나와 같은 아시아인도 거의 없었다. 요가 강사와 수강생은 외지인,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은 현지인이라는 점은 우붓의 요가원을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테일다. 이 부분 또 따로 글을 써보고 싶다.
- 선생님의 용어 사용이 재밌어서 몇 번이나 피식거렸다. 요가는 한 발로 중심 잡는 시퀀스를 끝내면 다른 발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특징이다. 몇몇 수강생이 지시와 반대 방향으로 동작할 때가 있는데, 자신이 처음 했던 동작의 반대로 하면 된다는 취지에서 Be diplomatic이라고 하더라.
-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제각각 다르다. 같은 동작에 성공을 하더라도 도달한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해진 정답은 없다. 내 몸이 갈 수 있는 곳에서 멈추고 호흡을 하면 된다. 그래서 요가를 수련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practice를 하다 보면 present에 다다를 것이라고.
- 내가 좋아하는 요가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경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겼다, 졌다는 사실에 집착할 필요 없이 땀을 내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오롯이 매트 위의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자세를 잡는 것 자체로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사람의 자세가 어떤지 볼 틈이 없다.
- 발리로 떠나기 전 요가원 사진을 보고 여기는 꼭 가야겠다 결심하고 찾아간 곳이다. 새로 지은 곳으로 보이는데 예쁘게 잘 꾸며놨지만, 수업 자체는 잘 모르겠다. 사진 찍기에 좋은 인스타그램용으로 만들었다는 느낌? 그래도 공간 자체가 주는 아우라가 있어서 가봄직하다.
- 우붓 시내에서는 좀 떨어져 있다는 게 단점. 팬시해보이는 리조트촌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숙소에서 걸어가니 30분 정도 걸렸는데, 오토바이만 조심하면 충분히 걸어갈만하다. 물론 우붓의 모든 곳이 그러하듯 도로, 인도 사정은 열악하니 그건 감안해야 할 듯.
- 홈페이지에 수업 제목이 EARTH, WATER, FIRE, AIR, ETHER, KRAMA, YIN, FLOW 이런 식으로 나와있어서 그다지 직관적이지 않다. 물론 밑에 스탠딩, 플로어, 숨, 명상, 강도 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표기해 놨지만 처음에는 도대체 뭘 들어야 할지 갸우뚱했다.
- 난도가 높은 요가는 60분, 명상 위주의 난도가 낮은 요가는 90분인 점도 아쉬웠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요가도 90분짜리 수업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업시간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있다. 60분짜리는 165k(1만4천500원), 90분(1만7천600원)짜리는 200k. 다른 요가원보다 비싼 편.
- 그나마 빡세 보이는 FLOW를 듣고 싶었지만 다른 요가원 수업과 시간대가 겹쳐서 요가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시퀀스를 선보인다는 KRAMA를 들었다. 선생님은 좋았지만 수준은 체감상 초급~중급 사이. 내가 원한 건 중급~고급이었으니,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 이곳을 찾는 수강생은 요가 수련을 꾸준히 한 사람들이기보다는, 발리로 여행온 김에 요가를 하러 왔고 예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려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수업 전후에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걸 보니 의심이 증폭됐다.
- 아, 다른 요가원과 달리 샤워실이 있다는 게 눈에 띄었다. 옷 갈아입을 곳을 찾다가 화장실 옆에 있는 부스를 발견. 모든 인테리어가 돌로 돼 있어서 이색적인 분위기가 난다. 햇살을 맞으며 야외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장점. 하지만 수건을 따로 제공하지는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