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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콜레스테롤' 관리기 #1

by 글쓰기C쁠

나는 한평생 말라본 적이 없다. 외모에 관심 갖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다이어트는 그림자처럼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한순간만이라도 말라봤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살 찌지만 말자, 이 몸무게만 유지하자는 주의가 됐다. 그러나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돌발 변수가 튀어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콜레스테롤.


통상적으로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130~199, 저밀도 콜레스테롤(LDL)은 129 이하여야 정상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나의 경우 중성지방은 정상 범주를 유지하고 있고, 대부분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논외로 치고 소위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고밀도 콜레스레롤(HDL)도 높은 편이라는 내과 의사의 평가에 따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나의 주적, LDL 수치를 살펴보면 2013년 127에서 2014년 149로 올랐다가 2015년 119로 떨어졌다. 문제는 2016년 147로 오른 뒤 2017년 162, 2019년 189 치솟았다 것. (2018년과 2020년에는 다른 곳에서 건강검진을 받아 기록이 없다.) 2019년에 처음으로 재검을 받았고,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두 번째 검사에서 수치가 낮아져 약을 먹지는 않았다.


2020년 프랑스에 갔다가 2022년 중간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이때 수치가 153으로 떨어졌다. 물론 이 수치도 여전히 정상보다 높은 것이다. 그럼에도 LDL이 줄어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그것은 안일함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분명 정상 범주를 벗어난 것인데도, 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하면서 관리를 소홀히 했던 것.


2023년 귀국해 다시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LDL은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189로 돌아갔고, 2024년 196으로 정점을 찍었다. 결과가 처음 나왔을 때는 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총콜레스테롤이 288에서 289로 1포인트만 상승했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건 나에게 뉴스가 아니다 보니, 한 차례 인상을 찌푸렸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 넘어갔다.


새해 들어 일과 시간에 건강검진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검사는 한 달 전에 했고, 결과지도 진작 받아봤는데 왜 전화가 왔지? 하고 귀찮아서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카카오톡으로 '결과 상담을 위해 연락드렸다'는 메시지가 와서 콜백을 했다. 알고 보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데 내과에 가봤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순간 심각성을 깨닫고 퇴근하자마자 회사 근처 내과로 향했다.


접수할 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왔다고 말했는데, 의사가 '마른 콜레스테롤이시네요'라며 를 맞았다. 이어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이 많지 않아 올해 안에 약을 먹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작년 건강검진결과에 나오는 2019~2024년 수치를 보여주고 어지간하면 약을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의사는 그럼 관리를 해보고 두 달 뒤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딱 두 가지만 지켜보자고 했다. 물론 이게 콜레스테롤을 드라마틱하게 낮춰줄 수는 없겠지만 일단 도전해 보자고. 하나는 밀가루 끊기. 밀가루와 튀김은 내 몸에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이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내 몸이 그 음식을 치우는 게 힘들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그럼 간이 콜레스테롤을 열심히 뿜어내는 거라고.


어렸을 때 아토피가 심해져 찾아간 한의원에서 밀가루를 끊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의사 앞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그 당시의 나는 라면을 무척 좋아했는데, 앞으로 라면을 못 먹는다는 게 너무 슬펐었나 보다. 지금은 라면을 찾는 날이 거의 없지만, 문제는 나는 지독한 빵순이라는 것. 국내든 국외든 여행을 가면 동네 빵집에는 꼭 가봐 할 정도. 그만큼 나에게 밀가루 끊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일단 섭취를 줄여보기로 했다. 식사 장소를 정할 때 어지간하면 피자, 라면 등 밀가루 음식을 파는 곳은 최대한 피해보려 한다. 눈에서도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밀가루가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 빵집을 지나갈 때면 빵을 안 사도 꼭 한 번 들어가는데, 이거 안 먹으면 오늘 밤에 잠이 안 오겠다 싶은 빵만 사고 내가 아는 맛의 빵은 사지 않아 보기로.


의사가 내놓은 두 번째 지시는 야식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야식을 먹지 않으니 이건 패스. 이 말을 듣고 나니 야식을 안 먹는데도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것은 정말 문제 아닌가 싶어 무력감을 느꼈다. 운동을 하면 좋다길래, 사실 저는 운동을 진짜 열심히 하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너무 좌절스럽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위로를 들었다.


상담을 하면서 그간 내간 품었던 의문을 와다다 쏟아냈고, 의사는 그런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줬다. 그 내용을 복기해 보면 콜레스테롤은 음주, 수면의 질, 정신적 스트레스와 연관이 높다고 한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잠을 많이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콜레스테롤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약간 무슨 이런 예민보스가 다 있어 싶은 놈이다. 다시 말해 절주, 숙면, 스트레스 최소화도 중요.

내가 좋아하는 재료 다 때려넣은 샐러드. 단가는 높을 수 있음.


회사에서는 술을 잘 마시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괴랄한 분위기가 있었고, 나는 그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고 헤실헤실 거리며 놀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해야 하나. 태생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편인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화장실에 가서 한 번 게워내고 또 마시기를 몇 년을 반복했다. 이제는 모든 게 다 부질없음을 깨닫고 토할 만큼 마시는 날이 손에 꼽힌다.


피검사가 두 달 앞이다. 콜레스테롤 수치 개선을 위해 계획을 짜봤다. 사실 이건 콜레스테롤 관리와 무관한 계획이었지만 일단 달리기에 목메던 유산소 일변도의 루틴을 유산소+근력 운동으로 변화를 줬다. 예전에는 평일에 헬스장을 가면 냅다 러닝머신만 달렸는데 이제는 3일은 달리기, 2일은 근력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근력은 상체 위주로. 특히 등, 어깨, 팔에 집중하고 있다.


또 하나는 식단 관리. 솔직히 나는 수없이 많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식단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먹고 뛰자는 게 나의 신념. 심지어 출국 전에 넉 달 동안 개인 PT를 받았을 때도 '먹는 것과 술은 포기 못하니까 몸무게와 같은 숫자에 집착하고 싶지 않다'라고 공언했을 정도. 그랬는데도 인바디 결과에서 체지방은 줄고, 근력은 늘어서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더랬지. 뿌듯!


하지만 나이 앞에 장사가 없는 걸까. 아무리 운동을 꾸준히, 열심히 해도 살이 빠지는 속도가 정말 정말 느려졌다. 결국 식단에 손을 대지 않고서는 목표한 바의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먹는 음식을 최대한 조절하려고 한다. 인위적으로 약속을 줄이진 않겠지만 약속은 하루에 점심이든 저녁이든 하나만 잡기로 노력하고 혼자 저녁을 먹을 때는 집에서 만든 샐러드를 먹는 것으로.


이와 함께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아침으로 챙겨 어보려 한다. 그동안 오트밀이 내 입맛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가까이한 적이 없었는데, 귀리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탁월하다고 하여 마음을 바꿨다. 아침 공복 달리기를 마치고나서 <오트밀+우유+딸기청+딸기+블루베리+그래뇰라>를 넣어 만든 '오나오'를 처음 먹어봤는데 예상을 깨고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앞으로 콜레스테롤을 관리하기 위해 쏟는 노력과 그 결과에 관해 기록을 하려 한다. 희망하건대 3월로 예정된 검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져 브런치에 글을 더 쓸 일이 없어지길.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노화를 받아들여야지.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없지만 기왕 살 거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고한 노력이 수반겠지. 빠샤!

생전 처음 만들어 먹어본 오트밀. 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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