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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May 10. 2018

글쓰기



조금은 부끄럽고 낯간지럽고 치기어린 이야기다. 

어렸을 때, 채 스무살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나의 업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아니, 글 쓰는 사람으로 택해지고 싶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흔히 겪는 증상 - 내가 쓴 글이 제일 재미있는 오만한 초기를 거쳐, 그 때의 자신감을 무기로 꾸준히 글을 썼다. 때로는 내 문장과 단어와 구성이 갈가리 뜯겨져 조각조각 단위로 평가를 당했다. 그게 좌절이 되기도 했다가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쓰는게 참 좋았다. 돌아보면 종국엔 다시 쓰게 해주는 힘이 됐던 건 달콤한 칭찬보다 뼈 아픈 쓴 소리였다.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중  


그 땐 가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벅찼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 같은 책을 읽으면 코끝이 찡했다. 한 소설가가 죽음의 순간은 글 쓰던 책상에서 맞고 싶다 한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음이 부러웠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늙어서도 글을 써야지. 글을 쓰는 일을 하다 죽어야지.




열일곱부터 소설을 썼고, 고등학생 3년 시절은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대회를 다니며 수상자 명단에 이름 꽤나 올렸더랬다. 소설가들이 작가의 말 끄트머리에 담는 '20XX년 X월, 뉴질랜드의 한 시골마을에서' 같은 문장을 동경했다.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어디서든 글을 쓰는 삶을 바랐다. 여러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치열하게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스무살 대학생이 되니 더 이상 순수문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니 읽지도 않게 됐다. 순수문학을 피해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발을 들이게 된 방송글 쓰기. 부지런히 막내 생활 2년을 채우고, 스물 일곱에 입봉이라는 걸 해서 대본을 쓰고 돈을 벌게 됐다. 하지만 자존심을 빼고 나면 남은 건 뭐였을까. 순수문학이 아니라 열정이 사그라들었다기엔 그건 같잖은 변명이다. 

이 일도 열심히 했지만 열여덟 열아홉 때만큼은 아니다. 그러니 적당히 열심히 한 셈이다. 그렇게 살아도 사람들은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준다. 후회나 회의는 없다. 반성할 만큼 불성실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이름을 가져보고 싶었던 간절함을 생각하면 나는 더 잘 써야한다. 열심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정말 잘 써야한다.




글쓰기에 대해 10년 만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합평이 그립고 쓴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난 겨울엔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7주 간 A4 한 장 분량의 글을 매주 과제로 써내야 했다.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 후의 결과를 바라지 않고 쓴다는 일 하나만으로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되는대로 열심히 써야겠다 다짐한 날들. 김중혁 작가의 책 제목대로 "무엇이든 쓰게" 될 때까지 말이다.




올해 초, 아주 많이 슬프고 아픈 일이 있었다. 몇날며칠 많이 운 이후 몸도 마음도 공허한 기분이 들던 날,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잡은 건 책이었다. SNS도 했다가 음악도 들었다가 영화도 보았다가 하며 사색 대신 검색을 해대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두던 날들의 반복. 혹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해대며 나를 자꾸 갉아먹었던 날들의 반복. 결국 위로가 되는 건 글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문장을 남긴 사람이 많다니. 고맙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다. 그러니 읽고 쓰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요즘엔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늙어서도 글을 써야지. 글을 쓰는 일을 하다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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