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는 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ep1. 비엔나 한 달 살기

by 양탕국
I'm traveliving


"Are you a traveler?" (여행하는 중이야?)

"Kind of. I'm actually traveliving" (그런 셈이야. 사실은 살아보는 여행 중이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체류한 지 2주가 되었다. 여행자가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대체로 짧게든 길게든 비엔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늘 그 자리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이민자가 아니라 하면 여행자로 규정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현재 비엔나를 여행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비엔나에 살고 있다.


체감상으론 지난 2~3년 전쯤부터 선풍적으로 인기를 끄는 일명 '한 달 살기'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traveling과 living을 합쳐 'traveliving'이라 표현하기로 했다.


비엔나의 낭만에 대하여


"What brought you to Vienna?" (왜 비엔나로 오게 되었어?)


비엔나에 한 달을 머물 계획이라고 이야기하면, 그 다음 질문은 대개 "왜?"로 이어진다. “왜 비엔나인가?”에 대해서라면 이 도시만의 낭만을 빼놓을 수 없다.


나에게 ‘유럽’의 이미지는 비엔나의 풍경으로 대표된다. 대학 2학년 때 생애 처음 온 유럽 여행의 시작이 바로 이 도시였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은행 건물을 보고 “이게 유럽인가봐!”라며 친구와 탄성을 내지른 기억이 난다. 잔뜩 흥분한 채로 눈에 담았던 오래된 건물, 골목길 풍경, 노천 카페의 사람들, 기차 밖으로 펼쳐진 자연. 이 도시의 너무나 평범한 풍경들이 내게 ‘유럽의 모습’으로 박혀버린 것이다.


‘비엔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비엔나는 낭만의 도시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고전음악가부터 현대음악가까지, 클래식 음악에서 비엔나를 빼놓을 순 없다. 오죽하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로 대표되는 빈 고전파와,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로 대표되는 신 빈 악파가 따로 있을까.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을 통틀어 빈 악파로 한데 묶기도 하는데, 위 두 그룹에 거론되지 않는 유명 음악가만 해도 말러, 브루크너, 요한 슈트라우스 등이 있다. 비엔나 시내에만 해도 이 음악가들이 머무른 흔적을 보존한 공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슈베르트 생가, 모차르트 생가, 하이든 하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관 등) 여름 시즌을 제외하면 세계 Top3에 드는 빈 필의 공연을 볼 수 있고, 수준급의 오페라 공연이 매일 같이 열린다. 공연을 쉬는 여름엔 시청사에서 두 달 내내 클래식 공연 영상을 틀어주니 (가끔은 팝이나 재즈도 상영함) 명실공히 클래식 음악의 성지라 할 만하다.

미술로도 할 말이 많은 건 마찬가지. 세상에서 제일 많은 복제품을 양산한 명화, 클림트의 ‘키스’의 도시가 바로 이곳, 비엔나다. 관광객 밀집 지역인 슈테판플라츠를 걷다 보면 클림트의 이름을 크게 내건 전문 기념품점이 있을 정도. 아마 오스트리아에선 모차르트와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예술가일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28살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클림트와 더불어 생전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에곤 쉴레, 표현주의 미술로 대표되는 오스카 코코슈카, 클림트와 빈 분리파 운동을 함께했던 실용 건축가 오토 바그너 등이 비엔나가 사랑하는 미술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만 여러 곳인 데다,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경우엔 올해만 해도 레오폴드 미술관의 특별전과 응용 미술관의 기획전이 열리는 중. 게다가 현대미술로도 아쉽지 않은 쿤스트할레 빈, 무모크 미술관까지, 미술로도 충만한 도시가 바로 비엔나다.


쿤스트할레 빈, 무모크 미술관이 있는 뮤지엄콰르티에 / 알베르티나 미술관


그리고 하나 더! 비엔나는 매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하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자리를 두고 호주 멜버른에 근소한 차로 늘 2위에 꼽힌 이력이 있다. (2018년엔 1위) 이쯤되면 비엔나, 한 번쯤 길게 머물러 보고 싶은 도시론 차고 넘치잖아!


비엔나 한 달 살기의 현실적인 문제


사실 한 달 살기를 하기로 결심한 후 곧바로 비엔나행을 결정한 건 아니었다. 문화적 인프라, 교통과 편의 시설, 근교 여행지의 매력 여부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유럽 내에서 내게 좋은 인상을 주는 도시, 그리고 동시에 어떤 나쁜 인상도 주지 않은 도시를 꼽아보니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비엔나였다. 그리고 지난해 보름 간 머무르며 문화, 교통, 근교여행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확인했지만, 인종차별이나 캣콜링 등에 의해 언짢은 기억도 있던 런던도 일단 정보를 알아볼 요량으로 리스트에 올렸다. 하지만 단지 내가 좋고 싫고만으로 결정할 순 없는 일. 내게 닥친 현실은 '일을 그만두고 떠나는 것이고, 그건 꼬박꼬박 들어오던 급여가 더 이상 꽂히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있는 돈으로 버텨야' 한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도시가 부다페스트였다.


2018년 여름, 런던 / 2017년 여름, 부다페스트


먼저 한달 집세로 어느 정도까지 낼 수 있는지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머무는 기간이 보통의 여행자보다 조금 더 길 뿐, 거주 비자를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집을 구할 땐 대부분 여행자들이 숙소를 구하는 루트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도시 리스트를 만들 때 꽤 많은 정보를 얻은 ‘노마드 리스트’ (nomadlist.com)에 따르면 대체로 여행자들은 거주자들보다 한 달 집세로 2배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 서울만 해도 보통 원룸 월세가 한 달에 50만원 정도지만,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하면 하루에 대략 3만원, 즉 한 달이면 90만원이다.


6월 말에 출국하는 것으로 맘을 정하고 한 달 살기는 7월 중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3월부터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런던엔 장기 여행 혹은 단기 거주자를 위한 한 달 짜리, 넉 달 짜리 방을 대여해주는 전문 회사도 있었지만, 암스테르담이나 비엔나, 부다페스트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현지인 혹은 장기 거주자들이 집을 구하는 사이트는 있지만, 현지 언어 구사가 되지 않는 점, 집을 보러 갈 수 없는 점, 나나 집주인이나 서로의 신분이나 여러 가지들을 보증할 수 없는 점 때문에 에어비앤비 이용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필수 조건은 1. 너무 외곽에 자리하지 않을 것 2. 슈퍼호스트 3. 세탁기 필수, 주방 공간과 도구에 부족함이 없을 것 4. 원룸형이 아닌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있을 것, 부차적으로는 인테리어 정도였다. 보통 일주일 안팎으로 여행할 때 구하는 숙소보다 더 많은 조건을 따져가며 집을 찾았다.

그러나 여름 초성수기에 유럽에서 위 조건을 충족하는 한 달 짜리 집을 구하려다 보니 집값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한 달 살기 계획을 최소 반년 전에 잡고 집을 찾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다.) 일단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의 경우 한 달 집세가 거의 350만원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과 셰어하는 경우에도 250만원은 족히 줘야했다. 런던의 경우 2존 안쪽으로 위치한 집을 대상으로 찾아보았는데, 한 달 집세는 200만원 가량으로 생각보다 아주 비싼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동네가 외지거나, 가구 등 집안 시설이 낡거나, 좁은 원룸 형식 (침대 맞은편에 바로 세면대가 있거나 하는 식)이었다. 부다페스트는 대체로 저층 아파트 형식이었으며,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깔끔하며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많았다. 도시가 넓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이 중심가에서 멀지 않았다. 한 달 집세도 80만원부터 조금 욕심을 낸다면 130만원 정도 선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비엔나의 경우엔 시내에서 멀지 않은 집도 하루에 11~12만원 정도로 구할 수 있었고, 인테리어가 예쁜 집이 굉장히 많았다. 집 자체만으론 비엔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한 달 집세가 250만원에서 300만원 수준.

고민만 하다가 날을 잡고 위시리스트에 있는 집들을 샅샅이 살피기로 했다. 집세, 인테리어, 교통, 시설 다 봤는데 뭘 더 살피냐고?


무려 47%의 할인 적용! 인테리어가 너무 마음에 드는 비엔나 아파트


바로 호스트가 내건 월 단위 할인 조건을 체크하는 것! 호스트의 재량으로 주 단위 혹은 월 단위 할인 조건을 내세우는 곳들이 있는데, 할인율도 제각각이니 이것을 하나하나 확인한 게 날을 잡고 집중적으로 한 일이다. 그러다 지금 머무는 곳을 발견! 이곳은 슈퍼호스트가 호스팅하는 곳인 데다, 위치는 빈 서역 근처로 중심가이면서 시내는 물론 근교까지 어디든 가기에 편한 위치였다.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기본 가전 외에 식기세척기나 네스프레소 머신 등도 갖추고 있었다. 거기다 월 단위 47%의, 거의 반값에 수렴하는 엄청난 할인 적용! 더 이상 다른 도시는 비교할 게 못 됐지 말입니다.


소확행 느끼게 해주는 아기자기함


왜 이런 집이 비어있었는고 하니, 호스트는 이 집에 2주 이상 머무는 게스트만 받고 있었다. 체크인할 때 들었는데 이웃 아저씨 중 한 명이 자꾸 낯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걸 매우 싫어해서 불평을 몇 번 했단다. 비엔나에서는 에어비앤비가 사실상 불법이라 자꾸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상황인 듯. 이런 것도 다 운인가 보다. 4주 묵는 집세로 150만원 가량을 지불하고, 곧바로 비행기 티켓까지 일사천리로 끊었다.


그래서 비엔나는 어때?


비엔나에 온 지 오늘로 꼭 2주하고 이틀이 지났다. 그래서 비엔나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고? 그건 이어질 연재에서 아페로도 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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